내 평생 전력으로 1분 이상을 달려 본 적이 없다. 학창 시절 체력 측정을 위해 100m를, 힘껏 달려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기껏해야 수십초다. 오래 달리기 한 적도 있지만 전력은 아니었다. 체력 안배 하면서 달렸다. 목표를 위해 내가 낼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장기간 뿜어낸 적이 없는 것 같다. 항상 할 수 있을 만큼만 했던 것 같다.
“성공과 속도”은 사업을 시작하고 1년이 지나서야 접한 개념이었다. 당시 정부로부터 사업지원비를 받고 있었던 나는, 사업 1년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속도를 지적 받았다. 처음에는 왜 그자리에서 “속도”가 나왔는 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어떠한 분야든지, 올바른 방향으로 꾸준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방향만 잘잡고 한걸음 한걸음 고지식하게 걸으면 성공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속도”에 관한 지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왜 1년동안 내게 그 말을 (멘토들이) 아무도 해 주지 않았을까!’ 하는 의아함도 떠올랐고, 1년동안 너무 느리게 걸어왔다는 점을 자인할 수 밖에 없었다.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일정한 수준에 오르기 위해서는 임계점을 넘어야 한다. 물이 끓는 비등점 같은 것이 있다. 어떻게하든지 그 지점을 최대한 빠르게 통과해야 한다. 혹은 상황을 압축시켜서 폭발시켜야 한다.
한 예로, 나는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배웠다. 1주일에 몇 시간을 배웠는 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6년간 꾸준히 배웠다. 대학에 가서도 교양 수업 영어회화를 1주일에 한 번 한 시간, 1년간 배웠다. 그래도 영어로 대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단 열흘이었지만, 미국으로 여행을 가서 온몸으로 영어를 받아내야 했을 때, 나는 영어로 대화했다. 살기 위한 10일간의 투쟁은 내 영어 능력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비슷한 예로 글쓰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매일 100자 글쓰기도 필요하지만, 하루에 1만자를 강제로 써야 하는 상황에 자신을 몰아 넣고, 딱 한달만 해 보면 어떨까? 주말 빼고 쓰면, 20일동안 20만자를 쓸 수 있다. 책 2권이 나올 분량이다. 100자씩 써 몇 년을 해도 도달할 수 없는 성과를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다.
사업에서의 임계점은 누구도 특정할 수 없다. 상황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다. 그렇기에 더욱 속도를 한계까지 올려 그 지점을 통과해야 한다. 창업 동기의 말이 아직까지 기억난다. “사업에 있어서 이 길이 성공의 길인지 아닌 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그 길을 달려 가 봐야 한다. 가 봐서 길이 아니면 방향을 틀어 다른 길을 가면 되고, 맞는 길이면 계속 달리면 된다.”
“자기 속도의 늪”이라는 말은 내가 만든 말이다. 우연히 투자 심사역 출신의 대표님이 해 준 이야기였다. 3자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미속인데(느린데) 사업체 대표(특히 1인 기업 대표)는 너무나도 만족해 하고 보람을 느끼며, 본인이 무척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사업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험을 쌓으면 잘하게 되지만, “자기 속도의 늪”에 빠지면 정해진 기간에 쌓아야할 경험들의 1천분의 1도 쌓지 못하고 자기 만족 속에서 아무런 성장도 없게 된다. 그 대표님이 끝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느낀 뉘앙스로는 버리는 패였다. “자기 속도의 늪”에 빠진 대표가 투자 유치를 신청하면, 신청서는 일말의 검토도 없이 그냥 쓰레기통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사업 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속도를 알 수 없다. 학교에서는 성적이 나오고 석차가 나온다. 객관적으로 자기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창업 1인 기업 대표는 다르다. 객관화가 힘들다. 무작정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나가 언제나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투쟁했던 적이 언제였느냐고 묻는다면, 15년전하고 25년전이라고 말하겠다. 거꾸로 생각하면, 나는 15년 동안 발전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내게 “당신 인생 중에서 가장 뜨거웠던 때가 언제였나요?”라고 묻는다면, “지금”이라고 항상 답하고 싶다. “제일 열심히 달렸을 때는 언제였나요?”라고 물어도 “지금”이라고 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