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 지방 국립대학의 교원이었다. 국립대학의 교원은 준공무원 신분이었던 것 같다. 한국의 도립 미술관에 해당되는 현립 미술관의 입장이 무료였다. 입장료가 2-3천원이었던 것 같은데, 뭔가 굉장한 특권을 누리는 듯 해서 일부러 미술관을 찾았다. 4년동안 딱 2번 갔다. 스스로 미술관을 찾은 유이(唯二)한 케이스였다.
예술은 종목에 따라, 표현하기 쉬운 감각이 있다. 미술은 시각이고, 음악은 청각이다. 요리는 후각과 미각이다. 글은 다 표현할 수 있는 데 제일 힘들다. 뛰어난 예술가들은 오감을 뛰어넘는다. 피카소는 제자에게 소금과 설탕을 구별해서 그리도록 지도했다고 한다. 제자는, 보았을 때 “짜다”와 “달다”를 느낄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했다. 베토벤의 월광소나타는 달빛을 청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예술가들을 괴롭히고 싶은 마음에 난제(難題)를 낸다면, 소리가 들리는 그림, 맛이 느껴지는 음악, 먹으면 풍경이 보이는 요리를 만들어 보라고 하겠다.
미술은 다른 예술 종목과 달리, 시간의 압축이라는 특징을 갖는 것 같다. 그 어떠한 종목보다 즉시적으로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 한 장의 그림과 영화의 차이는 감상에 필요한 시간이라고 본다. 그림은 몇 초 보고 감상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단편이어도 수십분은 보아야 한다. 음악도 몇 분은 들어야 어떤 지를 말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그림은 영겁(永劫)의 세월도 한 장에 담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현립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목탄(혹은 연필)으로 그린 그림을 보았다. “비명(悲鳴)”이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청각을 표현했기에, 발걸음을 멈추고 보았다. 그림 속 얼굴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것이 느껴졌다. 퍼져 나가는 소리의 진동도 표현했기에, 몇 초간을 압축한 느낌이었다. 그 그림을 보고 전시 테마를 확인했는데, “시간”이었다. 큐레이터가 시간을 표현한 작품으로 “비명”을 선택했던 것 같다.
단 2번 밖에 방문하지 않았던 미술관이었지만, 수 많은 그림 중에 “청각”과 “시간”을 동시에 표현한 그 그림만 기억난다. 명화의 정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그림이라면 그것이 명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