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에 빼앗긴 자유, 그리고 내려놓기

이식 전 마지막 퇴원

by 프림

#1. 새벽 6시 41분의 고백

병실의 고요 속에서 나는 인정한다. 나는 주변의 소음에 민감하고, 남의 감정에 은근히 많이 휘둘리며, 생각보다 여린 면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무리 센 척을 해도 소용없다. 나는 그저 연약한 인간일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당연한 거니까. 인간이니까.

#2. 다인실의 저주

이번 입원 생활은 쉽지 않았다. 다인실의 저주. 혈액암 환자만 있는 병실도 아니었다. 폐렴 환자와 같은 병실을 써야 했다.

옆자리에는 병원에서도 손 쓸 수 없는 환자가 있었고, 수시로 구토를 하셨다. 보호자는 목청이 컸고, 밤낮없이 이야기를 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감정적으로 전이되고 있었다. 남의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 외에도 병실 메이트 운이 좋지 않았다. 섬망이 살짝 온 할머니의 새벽 토크. 마스크도 쓰지 않고 자꾸 다가와 불필요한 도움을 주려던 간병인. 새벽을 가르는 속 깊은 기침 파티. 그렇다.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어쨌든 나도 그냥 평범한 환자다. 배려 없는 사람들에게 피해받는 피해자이기도 하다. 아파서 피해를 주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본인만 생각하고 권리만 주장하는 이기심은 꼴 보기 싫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환경까지 쉼을 방해하는 느낌에 더 서러워졌다. 그리고 역으로, 왜 아파서 이 고생을 하는가 서러워졌다.

#3. 통제할 수 없는 것들

문득 내 안의 이상한 균형을 발견한다. 큰 부분은 빠르게 내려놓아서 담담한데, 정작 내가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부분이 통제되지 않을 때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제 북받쳤던 것도 그래서였다.

금방이라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못 나가게 했다. 그게 서러웠다.

#4. 작은 자유를 요구할 자격

병원에서 나는 버틸 만큼 버텼다. 24시간 마스크를 쓰고 감염을 예방했다. 의료진이 하라는 건 하고,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았다. 입맛이 없어도 밥을 잘 챙겨 먹었다.

같은 병실 사람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직접 말했다. 보호자들이 환자 화장실을 쓰려 할 때 안 된다고 알려줬다. 병실의 감염 예방을 환자가 나서서 해야 하는 상황. 내 몸 하나 챙기느라 부단히 애썼다.

그러니 이 정도는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마음이 있었다. 작은 자유를 요구할 자격쯤은 있다고, 나는 믿었다.

#5. 내려놓기

하지만 결국 깨닫는다. 어차피 내 맘대로 되는 건 없다. 내 맘대로 된다고 해서 더 좋은 결과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나를 너무 괴롭히지 말자. 다 뜻이 있을 것이다. 결국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겠지.

그래도 고백하자면, 병에 빼앗긴 자유에 대한 갈증만큼은 어쩔 수 없다.

이제 나가서 한 달이라도, 그 자유를 제대로 즐겨야지. 이제 병원 졸업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렇게 진절머리가 나는 걸 보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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