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에 지어진 26평 오래된 우리 집엔 화장실이 하나뿐이다. 네 식구가 모두 바쁜 아침 시간엔, 그 하나뿐인 화장실을 두고 치열한 순간들이 벌어진다. 그날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화장실에 있는 사이, 둘째가 잠에서 깨 화장실에 가고 싶어 했다. 급하게 소변을 볼 수 있는 통을 건넸지만, 아이는 요지부동. 고집이 발동한 것이다. 자고 일어난 뒤 찌뿌둥한 몸 상태에 조절하기 어려운 생리 현상까지 겹치니, 아이는 버티기에 들어갔다. 결국 화장실 앞에서 대놓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예전 어느 날, 아이는 엄마를 ‘기쁨’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 말에 흐뭇함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언젠가는 아이와 맞서는 날도 있겠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날 같았다. 아이의 고집과 나의 단호함이 맞붙은 결전의 날. 사실 이런 대치는 처음이 아니다.
큰아이가 다섯 살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고집을 부리다 울던 자리에서 그대로 소변을 봤다. 나는 그 상황에서 바로 닦아주지 않았다. 아이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아이는 실컷 울고 난 뒤, 스스로 화장실에 가 옷을 벗고, 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본인이 닦을지언정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던, 참 대단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도 키웠는데, 둘째의 고집쯤이야’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아직 둘째와의 대치는 그 정도까지 가진 않았지만, 다섯 살이 된 지금, 어쩌면 한 번쯤은 이런 대치가 필요한 때라는 직감이 왔다. 아이는 화가 나면 어딘가로 달려가는 특징이 있다. 그날도 고집을 피우다 이내 엄마와 최대한 먼 곳으로, 쿵쿵 대며 뛰어갔다. 하지만 엄마가 필요한 다섯 살. 그는 울면서도 외쳤다.
“안아 줘!”
이제 엄마의 기술이 들어갈 차례다.
“그럼 네가 엄마한테 와.”
아이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곧 올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아이가 다가왔다. 바로 안아주진 않는다.
“여기 앉아 봐.”
“싫어. 안 앉을 거야.”
“그래, 그럼 엄마는 갈게.”
자리를 털고 안방으로 향했다. 아이는 울면서 또 나를 따라왔다.
“안아 줘!”
“아니, 일단 침대 위에 앉아.”
“싫어! 바닥에 앉을 거야!”
“그럼 나도 안아주지 않을 거야.”
그 말에 또 화가 난 아이는 쿵쿵거리며 주방 끝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가 보이는 자리였다.
나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엄마가 보이면 ‘엄마는 나를 보는데 왜 안 오지?’라는 원망이 커질 것 같았다. 반대로, 닫힌 문은 엄마를 의지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십여 분쯤 지났을까.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아이가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였다. 그리고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그건 화해의 의지였다.
하지만 곧 안아주지 않았다. 아직은 고집을 꺾을 시간이 필요했다.
“침대 위에 앉아 봐.”
“싫어! 바닥에 앉을 거야!”
“그럼 엄마도 네가 원하는 걸 해줄 수 없어.”
말을 남기고 나는 딸아이 방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방석을 깔아 두었다. 아이가 다시 올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또 시간이 흘러, 아이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 이제 이 의자 위에 앉아.”
아이는 순순히 의자에 앉았다.
속으로 외쳤다.
좋아, 성공!
“한경아,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
그동안 많이 해 온 말을 다시 꺼냈다. 그는 그 말을 따를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꼭 기억에 남게 하고 싶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라고 대답해야지.”
하지만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아니, ‘네’라고. 너의 목소리로 말해야 해.”
또 고개만 끄덕였다.
‘제발, 고집은 오늘 여기서 끝내자…’
내 마음이 그에게 빌었다.
통했다.
아이의 고개가 숙여졌고, 조용히 “네”라고 대답했다.
“이리 와. 이제 엄마가 안아줄게.”
아이는 내 품에 안겨 서러운 목소리로 울었다.
“이제 너는 형님 반이 되었으니까, 참고 기다리는 멋진 형님이 되어야 해.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엄마는 한경이를 정말 많이 사랑해.”
‘사랑’이라는 말에 아이의 울음이 더 커졌다. 아마도 엄마의 사랑을 다시 확인한 순간, 대치했던 두려움이 녹아내린 것이리라.
그리고 아이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엄마 안 사랑해.”
그리고 울음을 이어갔다.
“그래, 알았어. 그래도 엄마는 한경이를 많이 사랑해.”
“나는 엄마 안 사랑해…”
“알았어. 우리 아침으로 밥 먹을까, 빵 먹을까?”
“빵.”
“좋아. 식탁에 앉으면 엄마가 준비할게.”
나는 식탁 의자를 빼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누텔라와 크림치즈를 꺼냈다. 빵을 굽는 동안엔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조금 주었다. 치즈를 발라 먹게 하고, 누텔라를 듬뿍 얹은 빵도 건넸다.
그리고 슬쩍 물었다.
“한경아, 엄마 사랑해? 안 사랑해?”
“엄마, 사랑해. 많이 사랑해.”
“그래, 고마워. 엄마도 한경이 많이 사랑해.”
매운맛 뒤에 오는 달콤함은 극적이다.
누텔라의 힘은 강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