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봐(선 안돼) 이게 어른들 싸움이다
‘지금 우리 둘이 나누는 이 이야기를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리라’ 짐작은 부모가 자기 뱃속 편한 대로 생각하는 거다. 이 착각은 아이 앞에서도 사사로운 의견이 충돌하면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날 선 공방을 벌이는 객기로 이어진다. 아이 주변으로 음소거 상태가 되지 않은 한 아이는 그 순간의 험악한 공기를 귀뿐 아니라 온몸으로 흡수한다. 거실 소파에 앉아있든 카시트에 앉아 창밖을 응시하고 있든 마찬가지다. 더구나 말귀가 열린 아이는 두 사람 사이에 심상치 않은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간파한다.
알면서도, 한번 감정의 급행열차가 출발하면 질주는 멈출 줄 모른다. 한마디라도 더하려고 기싸움에 지지 않으려고 서로 핑퐁을 주고받는다. 그 사이 아이는 집안에 있는 가구나 사물처럼 취급된다. 그 순간에도 믿고 있다. 아니 믿고 싶다. 아이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얼마 전 아이 아빠는 빨래를 널고 있었고 나는 저녁 먹은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사소한 의견의 차이가 점점 팽팽해졌고 서로 자기 일을 하며 틈틈이 말로 치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빨랫대 사이에서 꼭꼭 숨어라 놀이를 하던 아이가 옷을 헤치고 나와 빨랫감이 있는 거실과 식탁이 있는 주방 사이에 서더니 양 팔을 벌리고 한 손은 아빠를 향해 또 한 손은 나를 향해 폈다. 그리고 말했다.
“하지 마, 싸우지 마아”
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우리가 잠시 숨을 고르다가 “그것 봐 애가 놀랐잖아” 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자 이번에는 한 사람씩 코 앞까지 찾아가 손을 흔들며 똑같이 말했다.
“사이좋게 지내야지이”
나는 움찔했다. 너도 알고 있었던 거구나. 그래 다 알고 있었겠지. 한 공간에 있었는데 그 공기를 모를 수 없겠지. 가장 가까운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험악한 분위기에 숨을 죽이고 있었겠지. 그리고 말문이 열리니까 지난 24개월 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드디어 할 수 있게 된 것이겠지.
몰랐겠지가 아니라 몰랐으면 좋겠다는 건 일방적인 바람이자 이기적인 오해였다. 아이는 이 팽팽한 공기 위에 외줄을 타듯 서서 이것을 중단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읽는 동화 아이가 보는 애니에는 토라지고 오해하는 장면이 제법 많이 나온다. 이는 이야기의 발단과 전개에 불과하다. 위기에는 투닥투닥 싸운다. 이야기는 결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실수를 한쪽은 어떤 경로로든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는다. 상대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를 파악하고 나면 곧 사과한다. 그전에 꼭 거치는 과정이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공을 혼자서 가지고 놀지 말았어야 했어.
내가 한 말이 너에게 그런 상처가 될지 몰랐어.
다 먹지도 못할 건데 욕심내서 미안해
처럼. 정확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꼭집어 사과한다. 덮어놓고 미안하다며 무마하려고 하지 않는 바른 매너를 이들은 탑재하고 있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그러는 너는 그런 적 없어?
그래그래 다 내 잘못이다.
등의 잘못된 대처로 상황을 보란 듯이 파국으로 만드는 일은 더욱 없었다. 일일드라마만큼이나 사건사고가 많은 <로보카 폴리>의 브룸스 타운이나 <꼬마버스 타요>가 사는 마을이 오늘도 평화로울 수 있는 이유다. 아이와 함께 삶의 매뉴얼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기분이다. 유치원에서 배운 것도 다 실천하지 못하니 이렇게 다시 복습할 기회를 주나 보다 싶다.
아이야. 네가 다 보고 듣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 그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아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어. 친구랑 싸웠을 때는 화해해야 한다는 동화를 읽어주면서도 엄마는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랑 아빠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는 네가 잠들 때까지 기다리거나 따로 둘이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할게. 한 마디 더하고 싶어도 네 앞에선 참을게. 긴장하게 해서 미안. 혹시 속으로 많이 무서웠다면 정말로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