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돌고 도는 캐롯 월드

당근이세요? 보다 핫한 쇼핑(육아)은 없다

by 디카페인라떼

적어도 당근마켓에서는 바깥세상과 다른 물가가 적용된다. 아기 옷이 만원이 넘는다면, 그건 고가의 브랜드이거나 새옷에 가깝다는 뜻이고 장난감이 오만원을 넘는다면 그건 실제 판매되는 가격이 수십만원을 호가한다는 말이다. 당근마켓에서 아기 옷과 장난감을 사고 팔때 적정물가는 5천원에서 1만원 사이다. 무료나눔도 많다. 거기다 아기 엄마끼리는 덤에 덤을 더 얹어준다. 타요버스를 사러 가서도 다른 중장비들을 한바구니 받아오고, 아기 책 시리즈를 사다보면 그 또래가 좋아할만한 다른 소책자도 딸려온다.


당근마켓에서 주고받는 건 아기 용품 뿐 아니라 그 시기의 노하우와 공감이기도 하다. "아기가 한창 자동차를 좋아할 때죠" "이옷도 입히면 따뜻하고 이뻐요. 같이 세트로 입히세요"같은.


우연히 알게 된 한 학원 원장님은 그 동네의 분위기와 시장을 파악하기 위해 새벽마다 '쿠팡맨' 알바를 했다고 한다. 요즘처럼 보안이 철저한 시대에 어느 아파트, 어느 상가의 문앞까지 갈 수 있는 하이패스는 택배이기도 하니까. 그는 동네마다 보안장치와 엘리베이터의 구조, 주차장의 연결망이 다르듯 지역마다 사람들의 리액션도 다르다고 했다. 같은 속도로 같은 물건을 배달해도, 어떤 곳에서는 감사가 어떤 곳에서는 질타가 온다고. 그 리액션이 그 단지에 대한 인상을 만든다고도 했다.


A구에서 B구로 이사 온 지금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것도 같다. 일단 당근마켓 안에서의 물가도 미묘하게 다르다. 올렸을 때 오는 반응도 다르다. A구가 좀 더 사무적이었다면, B구는 좀 더 친밀한 모양새다. 문고리 거래(직접 만나지 않고 현관 문고리에 걸어두는 일)를 선호하는 건 주로 아파트 단지라는 건 비슷하지만 거래가 끝나면 바로 거래완료와 후기가 올라오는 A구와는 달리 B구는 사용상 유의점 등을 채팅창에 꼼꼼하게 남기는 이들이 많다.


얼마 전에는 뽀로로 기차놀이와 아이 전집을 교환했는데, 전집을 들고 나온 분은 이 추운 날씨에 그 책들 뿐 아니라 아이 마스크와 블록까지 챙겨주었다. 기차만 덜렁 들고 나간 게 송구할 정도였다. 교환의 차액도 굳이 받지 않았다. 그걸로 아이 과자 사주시라며 손사레를 치면서 어두운 골목 사이로 사라졌다. 그는 책 군데 군데가 찢어진 부분이 있는데 그건 테이프로 붙였다며 미안해 하기도 했다.


아이와 책을 펼쳐서 읽을 때마다 나는 꼼꼼이 붙여둔 그 분의 테이프를 말끄라미 바라본다. 중고거래는 어쨌든 삶의 흔적을 같이 담아 넘기는 일이고, 어떤 이에게서는 흠이 어떤 이에게서는 정이 묻어온다. 이 마켓을 통해서 우리는 어쩌면 공동육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손도 발도 몸도 금방금방 크는 아이들의 옷과 신발을 돌려 입히면서, 금방 싫증을 내고 마는 장난감을 실시간으로 흘려보내면서. 중고거래가 모두 좋았던 기억만 남긴 건 아니지만, 이 거래 덕분에 아이는 큰 돈 들지 않고 무럭무럭 풍족하게 자랐고 나와 남편은 밤마실을 나갈 명분이 생겼고, 브랜드마다 다른 아파트의 문주와 출입구를 드나들 기회도 얻었다.


아이의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아이의 미끄럼을 오천원에 샀다는 말에, 겨우내 입힌 오리털 패딩을 칠천원에 샀다는 이야기에 '누가 만들었는지 기막힌 세상이다'라며 감탄을 하셨다. 크는 게 아까워서 옷을 늘 크게 샀다가 딱 맞을 때가 되면 옷이 낡아져 아까웠다는, 그 마저도 물려주며 입혔다는 그 시절. 그 분들이 우리를 키울 때는 젖병소독기나 어라운드 위고가 없었던 것처럼 중고거래앱도 없었다. 엄마는 천기저귀를 빨고 삶아 두 아이를 키우면서 겨울 니트와 목도리는 뜨개질을 해서 입혔다. 아빠 것의 실을 풀어 우리 걸 만들기도 하고, 그게 또 작아지면 풀어서 목도리를 만들기도 하면서. 그건 엄마의 손금과 지문이 담긴 중고였다.


나는 그 시절 여인들이 어찌 그리 바지런했는지 지금도 헤아릴 길이 없다. 이 모든 기기기와 어플의 도움을 받아도 늘 허덕이는 하루인데. 아무튼 캐롯 월드에 태어난 아이는 우리 모두의 물건을 잠시씩 빌려쓰고 나눠쓰고 다시 쓰면서 엄마의 매너온도가 담긴 중고로 무럭무럭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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