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게 둥글게… 그러니까 어떻게..?
그래 이런 기분이었다. 첫 학기가 시작될 때의 기분, 3월의 마음. 모두가 낯선 가운데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조바심을 내야 했던, 겉으론 웃지만 속으론 혼자 섀도 복싱을 하는 것처럼 숨이 가쁘던 마음. 내 마음에 들어온 친구가 다른 친구와 먼저 친해질까 봐, 나는 누구의 마음에도 들어가지 못할까 봐 초조하던 꽃샘추위 같던 시절.
초, 중, 고 12년 중 3월은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었다. 대학교에 오니 다 큰 어른들이 서로 친해진다면서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요란벅적스러운 행사까지 마련했다. 그때 참여하지 않으면 4년 동안 친구 없이 캠퍼스를 겉돌게 되리라는 불안이 영 내키지 않은 데면데면한 마음을 구슬려 그 커다란 둥근 동그라미에 점처럼 앉아있게 했다. 오티에 오지 않은 친구들은 그래서 아싸가 되었던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오티를 무사히 다녀와 그저 인사이드로 들어가는 통과의례를 통과한 듯 안심했다는 것 외에는. 진짜 마음을 나눈 친구는 오티가 아니라 훗날 수업 중에 만나긴 했지만.
아이가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27개월 만에 첫 사회생활이다. 심지어 아이는 9시 이전에 일어나본 일이 없는데 9시가 등원이다. 어린이집 대기번호는 한참 뒤였는데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규모가 컸던 덕분이다. 그 말은 한 반의 규모도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다.
14명의 아이와 14명의 보호자와 2명의 교사가 함께한 그 첫날, 아이는 얌전히 내 무릎 위에만 있었다. 잠든 채로 옷이 입혀져 로션이 발라진 뒤 유모차에 태워져 어린이집으로 순간 이동한 아이는 이게 무슨 일인지 한참을 관찰했다. 구두로 어린이집에 가게 될 것을 예고하고 공지하긴 했지만 실사로 펼쳐진 세계는 아이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을 것이다. 아이의 경험세계 속에는 나와 아이, 할미와 할비, 놀이터의 언니 오빠들 정도만 존재했으니까.
그 서른 명의 무리 속에서 아이가 이 속에 잘 정착할 수 있을지 이제 갓 네 살이 된 아이들과 좋은 교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선생님에게는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 가늠하는 동안 아이의 동그란 등이 더 작아 보였다. 11월 말에 태어난 아이는 1월에 태어났다는 , 아이의 키보다 한 뼘은 큰 반 아이를 자연스레 언니라고 불렀다. 내가 “친구야”라고 알려줘도 다음날엔 또 “언니다!”라며 반가워했다. 하긴 19년 1월, 친구가 태어났을 때 넌 수정도 되기 전이었구나.
무엇보다 아이의 인상 중 일부는 엄마가 결정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모래주머니 두 개는 단 기분이었다. 내 것 하나, 아이 것 하나.
또래의 엄마들에게는 비슷한 시기의 아이를 키우는 동지애도 느껴졌지만 내 아이가 누구와 친해질 것인가에 따라 미묘한 신경전도 느껴졌다. 어느새 어느 아파트, 어느 동네, 몇 째 엄마인지에 대한 정보도 암암리에 퍼졌다.
나는 어릴 적부터 신나게 노래를 부르다 돌연 호루라기를 불고 4명! 3명! 2명! 부르는 게임이 너무 싫었다. 노래를 불러도 하나도 신나지 않고 오금만 저렸다. 도대체 누군가는 섞이지 못하는, 이 팀 저 팀 떠돌다 떨어져야 하는 이런 외롭고 짓궂은 게임은 누가 만든 것인가. 나는 끝까지 남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그래도 처음에 쓸쓸히 떨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둥글게 둥글게 둥글게 둥글게 … 즐겁게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 뭐든 둥글게 사는 게 최고임을 알려주는 노래였을까.
첫날의 긴장을 겪고 나니 다음날 아이에게 어떤 옷을 입힐지 나는 또 어떤 차림으로 가야 가장 적당한지가 더욱 고민됐다. 너무 튀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신경쓴 정갈한 호감형… 이 되는 건 너무 어려웠다.
이제 3일이 지났을 뿐인데 3년이 지난 것처럼 마음이 고단하다. 아이는 이제 시작이다. 숱한 처음 중 첫 처음. 나는 아이와 함께 다시 시작했다. 그때는 미욱하고 미숙했는데 지금은 뭐랄까. 알아서 더 두렵다. 어른이 되어도 엄마가 되어도 3월은, 3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