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원초적 본능을 지지해
아이는 노란색을 좋아한다. 아기 상어 올리가 노란색인 게 발화점인 듯하다. 아기는 노란색, 엄마는 핑크색, 아빠는 파란색, 할아버지 상어는 연두색, 할머니 상어는 주황색..이라 인지가 된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노랑에서 찾았다. 딱 봐도 이 집에서 나는 아기고 그럼 내 시그니처는 노란색이구나라고 정한 듯싶다.
그 후로 “나는 노란색 좋아해”라는 말을 입에 달았다. 사탕을 고를 때도 노란색 레몬 사탕을 장화를 고를 때도 노랑 장화를, 우산도 노란색을 쓴다. 어느 날엔 머리끈부터 양말까지 모두 노랑일 때도 있다. 아이는 노랑을 향한 그의 순정을 숨기지 않고 숨길 마음도 없다.
아이의 사랑엔 연막이 없다. 아이는 나를 사랑해줄 때도 빈틈없이 아껴준다. “나는 엄마가 너무너무 좋아”라고 말로도 행동으로도 표현한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도 내가 너무 보고 싶은 아이는 기어이 이 좁은 밀실로 들어온다. 자고 난 뒤의 눈곱 끼고 까치집 지은 내 모습도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사랑해준다. 양치하지 않은 입에도 뽀뽀를 퍼붓는다. 옷을 빼입지 않아도 로션 하나 바르지 않아도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노랑이 노랑이라는 이유로 사랑받듯 나는 엄마라는 이유로 조건 없고 밀당 없는 사랑을 받는다. 아이의 사랑에는 이렇게 좀 벅찬 면이 있다.
코로나를 앓은 뒤 아이는 엄마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졌다.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것도 전보다 어려워한다. 3월 입학 땐 멋모르고 들어갔지만 4월의 코로나를 겪고는 뭘 안다. 한 번 들어가면 하원할 때까지 엄마가 보고 싶어도 목청껏 울어도 볼 수 없는 시간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음의 준비가 끝나야 들어간다. 오늘 하루, 잘 버틸 수 있을까. 친구들과 풍선놀이를 하며 선생님과 미술교구를 만들며 지날 수 있을까. 그래, 재밌겠다.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 먹어지면 아이는 결심한 듯 “이제 들어가 보자고” 하며 들어간다. 아이가 돌아봤을 때 내가 사라지면 서운할까 봐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는데 마음먹기까지가 힘들지 먹고 나면 뒤돌아보지 않고 들어간다.
나는 아이에게 뒤돌아보지 않는 마음을 배운다. 동시에 좋아하는 마음도 배운다. 좋아하는 건 그런 거다. 눈치 보지 않는 거다. 그냥 쏟아지는 거다.
어린이집에서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비슷한 박력을 가지고 있다. 만2세의 패기랄까. 등원할 때나 하원할 때, 놀이터에서 보는 게 전부이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좋아할 수 있는 용기’가 충만하다. 그중에는 번개맨도 있고 비눗방울 컬렉터도 있다. 이들은 그저 마음의 소리를 따른다. 어른들의 눈을 의식하거나 친구들과 겨루기 전의 그저 자신으로 꽉 찬 마음이다. 자신감이나 자존감과는 다른 원초적인, 시원의 힘이다.
이 마음에 언제 칼집이 생겨 그 팽팽한 바람이 새어 나오고 남을 의식하는 마음 남과 비교하는 마음 타인의 시선에 나를 맞추는 눈치게임이 시작되는 걸까. 이 게임은 곧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제로섬 게임이 된다. 좋아하기보다 보여주기가 우세한.
아이가 이렇게 나를 무람없이 좋아해 줄 시간이, 자기가 좋아하는 노랑으로 쫙 빼입고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알고 있다. 이 구겨지지도 손타지도 않은 마음을, 주눅 들지 않고 꽉 찬 이 원초적 본능의 시간을 맘껏 누리고 힘껏 지지해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