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낯을 안 가리는 아이

안돼요, 싫어요, 도와주세요

by 디카페인라떼

“아이가 낯을 안 가리나 봐요”


아이를 데리고 나갔을 때 몇 번 들은 말이다. 아빠의 주입식 교육 덕에 아이는 식당이나 마트에서 입 퇴장할 때 배꼽인사를 하고 누가 몇 살이냐고 물으면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이기도 하는데 그러면 응당 낯을 안 가리나 보다 한다. 아이는 낯을 안 가리는가. 배꼽인사를 하고 나면 터져 나오는 환호와 박수, 네 살이라고 말할 때 상대방에게 뿜어져 나오는 기특하고 대견해하는 눈빛을 분명히 의식하는 걸로 보아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낯가림이란 퍽 상대적인 개념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저는 낯가림이 심해서...'라고 말하는 이들을 만나는데, 그가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안전거리를 잘 지켜야겠다 싶으면서도, 낯을 가리지 않는 사람도 있나 생각해본다. 낯선 사람 앞에서 본래의 자신으로 있기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일 테니까. 그렇게 동일한 시작점에서 시간이 쌓이고 교분이 쌓이면 마음을 한 켠씩 내어주고 본래 내 얼굴을 한 땀씩 보여주는 게 당연한 과정 아닐까. 그런데 '저는 낯을 가려서요'라는 말은, 이 과정을 가지 않겠다는 다짐이나 '너와는' 가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혹은 '낯을 가리지 않는 그쪽이' 좀 더 노력하고 수고해달라는 무언의 압박 같기도 하다.


낯을 가리고 가리지 않는 건, 마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노력의 문제 같다. 나는 아이가 '낯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때 아이의 노력이 보인다. 현재 상황이 긴장스럽지만, 엄마 아빠에게 배운 대로 한 번 해보겠다는 용기, 그럴 때 부모가 흐뭇해하면 덩달아 환해지는 마음. 그렇게 아이는 낯선 이들 사이에서도 나름의 애를 쓰고 있다.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하다. 낯을 가리지 않는 게 칭찬받는 일이라는 분위기를 만들다가도, 막상 낯선 사람이 말을 걸거나 사탕이나 장난감으로 유인해 데려가려고 하면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고 가르쳐서다. 어린이집에서는 <납치 안전교육>으로 "안돼요, 싫어요, 도와주세요~"를 가르쳐주기도 해서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안돼요, 싫어요, 도와주세요~"를 한다. 그게 귀여워 우리는 개인기처럼 아이에게 앙코르를 외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로 저 말이 필요할 때가 오면 어쩌나, 그런 순간에 아이는 잘 해낼 수 있을까, 아니 너무 혼란스럽지 않을까 싶다.


낯을 가리면 안 될 것만 같은 분위기와, 낯선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왔을 때의 대응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중간중간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을 때" 낯선 사람이 엄마와 아빠 이야기를 하며 가자고 하면 따라가선 안된다고 부연설명을 해주지만, 그건 너무 많은 경우의 수를 만든다. 엄마와 아빠가 있을 때 만난 낯선 사람은 먼저 배꼽인사를 하고 이름과 나이까지 알려주며 공손히 인사해야 하지만, 엄마 아빠가 없을 때 낯선 사람은 사탕이나 장난감을 주는데도 '안돼요, 싫어요, 도와주세요~!'를 해야 한다고?!


'낯가림'은 어쩌면 생존을 위한 방어기제인지 모르겠다. 그 기제를 언제 약화시키고 언제 강화시켜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도 부모의 몫인지도 모르고. 나는 아이가 낯가림을 넘어 귀한 인연을 알아보고 교분을 쌓을 기회를 갖길 바라지만, '낯 가리지 않는 아이'로 커야 환대받는다는 강박은 갖지 않길 바란다. 우선 일단은 언제 '낯'이라는 방패를 써야 하는지, 그 방패를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강도로 쓸 수 있도록 익숙해질 때까지 옆에 있어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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