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면서 크는 아이들, 잊으면서 자라라
아이의 첫 소풍이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4세부터 7세까지 전원이 노란색 중형 버스를 타고, 노란색 단체티를 입고 차로 약 10분 거리에 공원에 간다고 했다. 공지를 받은 몇 주 전부터 긴장했다. 간식을 담을 도시락과 물, 손수건을 준비해달라 해서 어떤 메뉴를 담으면 좋을지 고심하기도 했다. 김밥은 어린이집에서 준비해주신다 했지만 평소 잘 먹지 않는 메뉴라 끼니가 될만한 게 필요했다. 밤이 송송 들어간 빵을 잘라 담고 청포도를 씻어 넣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노란 버스가 어린이집 정문을 빠져나가 도로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아이 눈에 띄지 않도록 나무 뒤에 숨어서 봤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부모 없이 차를 타고 단체 활동을 할 정도로 큰 건가 실감이 났다. 그리고 두 시간 뒤쯤 전화가 왔다. 번호에 '어린이집'이 뜨면 일단 긴장이 된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받아보니 원장 선생님이다. 아이가 그네를 타다가 떨어졌다고 했다. 얼굴로 떨어져 많이 울었고, 입 안에서 피가 좀 났다고 한다.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금방 그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지금은 많이 진정됐고 피도 멎었다'라고 했다.
병원에 가보니 아이가 진찰을 받고 있다. 모자를 쓴 터라 머리카락이 눌리고 땀이 난 이마 아래로 햇빛에 붉어진 뺨과, 바닥에 모질게 긁힌 왼쪽 얼굴이 보였다. 의사 선생님은 흉이 나지 않게 연고를 자주 발라주고, 입 안이 아플지 모르지 자극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음식을 주라고 했다. 나를 보고 달려와 안긴 아이는 "엄마 나 병원 왔는데 안 울었어. 안 무서웠어"라고 말한다. 입술이 부어있고 보라색이 섞인 붉은빛이다. 나는 잘했다고, 대견하다고, 많이 놀랐느냐고 물었다. "그네를 타다가 쾅 떨어졌다"는 아이 뒤로 원장 선생님의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이 보인다.
'엄마랑 집에 갈래, 어린이집으로 갈래?'라고 물으니 아이는 어린이집으로 간단다. 한 손으론 내 손을, 한 손으론 원장 선생님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가는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나보다 선생님이 더 긴장한 기색이다. 나는 마땅한 말을 찾다가 "이만하길 다행이에요."라고 했고, 선생님은 "많이 놀라셨죠."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아이가 그네를 타다가 신이 났는지 손을 놓았다'라고 했다. 평소 겁이 많아 미끄럼도 그네도 혼자 못 타는 아이인데 단체로 놀러 가서 들떴나 싶었다. 저녁 잠자리에서 아이가 놀라 깰까 봐 계속 등을 쓸어주었다. 아이는 "그네를 탔는데 누가 밀었다"라고 한다. 나는 속으로 놀랐지만 그러냐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누구의 말이 맞느냐가 아니라 정황을 살펴본다. 아이의 반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에 간 적이 있는데, 11월 말생인 아이와 달리 1월~3월에 태어난 아이들은 그네를 서서도 타고, 거꾸로도 타고 옆으로도 탔다. 좀 더 크면 저렇게도 타는구나 싶었다. 소풍에 함께 한 선생님들은 4세 아이의 수준을 비슷하게 보았을지 모른다. 아이는 아직 혼자 발구르기도 못하는 수준인데 각자의 편차를 알리 없었을 것이다. 자기 수준보다 높아진 그네에서 아이가 떨어졌을지도. 선생님께 정황을 묻고 싶었지만 '우리 아이는 그네에서 손을 놓을 아이가 아니'라는 말은 그저 '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니'라는 말로 들릴까 봐, 망설여졌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처럼.
아이는 다치면서, 아프면서 자란다. 아이의 얼굴에 연고를 바를 때마다, 나는 진심으로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자라며 겪을 수많은 변수와 내 손을 벗어난 일들을 나는 막을 수 없다. 심지어 나와 함께 있을 때도 아이는 다친다. 욕실에서 넘어져서, 침대에서 떨어져서. 바라기는 이 기억이 나에게만 남는 것이다. 상처가 아물듯, 아이의 커다란 울음과 놀란 가슴도 망각의 페이지 속에 닫히길 바라본다. 이 마음, 이 심정, 이 기억은 내가 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