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세상의 모든 딸들

by 디카페인라떼

모래놀이의 핵심은 장난감안에 모래를 꾹꾹 눌러 담아 한번에 뒤집는 것이다. 얼굴 모양, 벽돌 모양, 불가사리 모양이 그대로 찍혀 나와야 성공이다. 아이는 신중하게 모래를 담아 휙-하고 뒤집었는데 타이밍이 어긋났는지 옥토넛 얼굴의 일부가 일그러졌다. 그걸 물끄러미 보던 아이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이게 다아 엄마 때문이야


나? 나 아무것도 안 하고 보고 있었는데?!

아이는 그리곤 모래 삽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푹푹 퍼냈다. 그러면서 계속 외쳤다. 이게 다, 이게 다아아 엄마 때문이야아아


밥 잘 먹고 기분 좋게 방에 들어와 모래놀이를 하다가 이게 무슨 일이지 싶었는데 아이의 기세가 맹렬해 그냥 지켜보았다. 모래를 다 부수고 흘끗 나를 본 아이는


‘엄마 가아 엄마 가라고오오’ 라고 말했다.

내가 주저하자 손으로 나를 밀면서 문을 가리켰다. 엄마 가 저리로 가아아

엉겁결에 문밖으로 밀려난 나는 문틈으로 아이를 지켜봤다. 아이는 입을 앙 다물고 모래 삽으로 모래들을 푹 또 푹푹 찍었다. 그러다 어깨가 좀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게 다아 엄마 때문이야아’ 하고 울기 시작했고 울음의 데시벨은 가속 페달을 밟듯 점점 높아졌다.


‘흑흑 엄마 때문에 흑흑 이거 다 흑 망가졌어어 흑’

하던 아이는 문 앞까지 와서 나를 밀며 ‘엄마 저리가아 저리가아’했다. 아이의 기세에 현관까지 온 나는 급기야 쫓겨났다.


‘엄마 나가 엄마 나가아아아 엉엉’

하는 아이가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라 슬리퍼를 꿰어 신고 문밖으로 나왔다. 현관에 귀를 대니 아이의 울음소리가 여전했다. 명확히 들리진 않았지만 엄마가 어쩌고.. 엉엉하는 것 같았다. 울음과 말이 함께 쏟아져 소리는 자꾸만 뭉개지고 멀어졌다.


문밖에서 망연히 있던 나는 이번 주 아이의 날들을 돌아보았다. 지난 목요일부터 출근을 했으니 출근 5일 차였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등원할 때는 내가, 오후에 하원할 때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함께 했다.


아이는 밤에 잠이 들 때 그저 ‘내일도 할비 할미가 와..?’ 하고 물었다. ‘응 이번 주는 그럴 것 같아’ 하면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엄마 아빠 말로는 아이가 울거나 떼쓰진 않았고 그렇다고 아주 밝거나 잘 놀지도 않았다고 했다.


아이에게 이번 주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나는 일하는 엄마이지만 3주는 재택, 1주는 출근이다. 아이에게 기본값은 엄마가 집에 있는 것인데, 이번 주는 부재와 결핍의 시간을 지난 것이다. 그게 뭔가 마음에 엉키고 응어리져 모래놀이를 하다가 문득 터져 나왔나 보다.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고 아직 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이게 다 엄마 때문’이라는 포효로.


아주 아주 긴 5분 여의 시간을 문밖에 서있던 나는 조심스레 번호키를 누르고 집안에 들어갔다. 아이 얼굴은 눈물 콧물이 범벅이었다.


저기 혹시 엄마가 안아줄까…?라고 물으니

매트 위에 돌아앉아 있던 아이가 현관 쪽으로 다가와 안겼다. 아직 몸에는 울음이 남아 있는지 등이 들썩였다.


이게 다 엄마 때문, 이라는 이슬아 작가가 <나는 울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에 썼듯 딸들의 못난 마음이다. 뜻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사는 게 서운해질 때, 내가 내 맘에 들지 않을 때, 애꿎은 엄마를 소환한다. 엄마가 아침에 안깨워서. 엄마가 집에 밥을 안해놔서. 엄마가 안 와서. 엄마가 와서. 엄마가. 엄마가. 엄마가.


그게 아닌 걸 알면서도 엄마를 탓해본다. 뭐라도 탓하고 싶은데 그 뭐라도에 단골 소환자는 엄마다. 나도 그런 의미로 아이에게 소환됐을 것이다. 모래놀이가 무너진 것도, 내 마음이 이런 것도 다 엄마 때문이라고.


나에게야 유력한 귀책사유가 있지만 나의 엄마는 엉뚱한 일에도 자주 소환됐었다. 뒤늦게 멋쩍게 ‘엄마, 아까는(어제는/그때는) 미안..’ 하면, 엄마는 대체로 ‘ 아니야, 너도 마음 풀 데가 필요하지’ 했었다. 엄마는 그런 데라면서.


나는 화풀이를 하면서도 그 말이 이해가 안 갔다. 엄마는 엄마라 억울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엄마가 되어보니, 맨발로 쫓겨나 보니 그렇게 그게 억울하지는 않다. 그냥 그 어린 마음에 무엇이 그리 맺혔을까 싶다. 엄마를 생각하면 억울하지 않아 다행이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생각이 많아진다. 앞으로도 마음 고단할 일이 많을텐데 그걸 막아줄 수는 없고 그저 이렇게 쏟아내면 받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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