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 속에 머무는 힘
말이 많다.
사람의 말도 많고, 세상의 말도 많고,
그림 속에도 말이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그린 말(馬)은 한 마리뿐이었다.
조선 민화 속 말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전쟁과 출세, 속도와 기세, 이동과 출발을 상징한다.
달리는 말은 곧 길을 여는 존재였다.
그 등 위에 앉은 이는 현실을 벗어나고,
말굽은 새로운 시간으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세워 두었다.
달리지 않는 말.
고개를 약간 숙이고,
어디론가 향하기 전 잠시 숨을 고르는 말.
내가 민화를 시작하고 난 뒤,
나는 유난히 “앞으로”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의 방향.
그 말들이
나를 더 바쁘게 했다.
그래서 나는
말을 멈춰 세웠다.
멈춘 말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균형을 잡고 있는 중이다.
민화의 말은 늘 과장되고 평면적이다.
근육은 선으로 단순화되고,
눈은 동그랗게 뜨여 있으며,
움직임은 리듬으로 표현된다.
나는 그 평면성을 그대로 두었다.
속도를 지워버린 말.
기세를 잠시 접어 둔 말.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말이 많을수록
마음은 더 조용해져야 한다는 것을.
말(言)이 많은 세상에서
말(馬)을 그린다는 것은
결국
나의 속도를 조절하는 일이었다.
그림은 달리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림은 기다린다.
그리고 나는
그 기다림 속에서
다음 길을 보았다.
그리고 2026년 병오년, 말띠 해에 이 그림을 다시 꺼내 들었다.
달리라고 재촉받던 그 시절의 말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
많은 말(言) 속에서
나는 속도를 배우려 했고,
그림 속의 말(馬)은
묵묵히 멈춤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제야 그 말의 숨을 이해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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