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아래 모의>, <해 아래 실행>

by 연아 아트

2021년 6월,

박사논문 「민화 속 ‘거북’ 도상과 상징 연구」를 마치고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논문을 쓰는 동안, 솔직히 많이 피폐해졌다.

도상은 끝이 없고, 자료는 계속 쌓이고,

거북은 점점 상징이 되고, 개념이 되고, 문장이 되었다.


직장에서 퇴근하고 돌아오면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연구자였다.


시간은 모자라고,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있었다.


그때 내게 이상한 위안을 주던 그림이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장생도〉 10폭.


사실 2폭부터 9폭까지는…

말하자면 교과서처럼 질서 정연하다.


해, 달, 구름, 소나무, 십장생의 배치.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재미도 없었다.


그런데 1폭과 10폭은 달랐다.


1폭.

달 아래에서 두 마리 거북이 마주 선다.

한 마리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다른 한 마리는 위를 올려다본다.


어스름한 보름달 아래에서

서기가 오가고,

둘은 무언가를 나누는 듯하다.


“얘네, 지금 무슨 작전 짜는 거 아니야?”


그렇게 보이기 시작했다.

엄숙한 장생도 안에서

이상하게 수상한 분위기.


그 의문은 10폭에서 풀렸다.


밝은 태양 아래,

상서로운 구름이 흐르고,

벼랑 위에는 선도(仙桃)가 달려 있다.


물 아래에는 한 마리 거북이 엎드려 있고,

그 위에 다른 한 마리가 올라타

뒷꿈치를 들고 복숭아를 따려 애쓴다.


팔다리는 짧고,

복숭아는 눈앞에 있지만 닿지 않는다.


서기만 날린다.

열심히.


그리고 그 꼬리.

숱이 많다.

이미 엄청 오래 산 거북이다.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

“하나 먹으면 천 년을 더 산다”는 선도를 따기 위해

몸을 겹치고, 버둥거리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순간 나는 웃었다.


이미 오래 살았는데도

또 오래 살고 싶은 것이다.


논문을 쓰며 상징을 해부하던 나는

이 장면을 보며 이상하게 위안을 받았다.


욕망이 있어서 웃기고,

웃겨서 살아 있는 장면.


그래서 결심했다.


논문을 통과하면

이 그림을 반드시 그리겠다고.


2폭에서 9폭은 건너뛰었다.

솔직히 말하면 재미가 없었으니까.


나는 1폭과 10폭만을 붙잡았다.


달 아래의 모의와

해 아래의 실행.


박사논문 속에서 분석되던 거북은

여기서 처음으로 살아 움직였다.


상징을 해체하며 지쳐 있던 나를

슬쩍 웃게 만든 거북.


이미 오래 살았으면서도

더 오래 살고 싶어 하는 그 욕망은

장수를 상징하는 그림 속에서조차

끝내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염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욕망을 비웃지 않았다.


그저, 그대로 그려주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장생도〉 10폭 중 1·10폭을 바탕으로 재해석)

_min090362(장생도 10폭).jpg <장생도 10폭>, 지본 채색, 142.8*382cm, 국립 민속박물관 소장
월하교신(2021전시).jpg
복을 향한 여정.jpg
<달 아래 모의>, 73*148cm, 옻지, 분채 등, 2021. <해 아래 실행>, 73*148cm, 옻지, 분채 등, 2021

#민화속거북 #거북도상 #박사논문 #민화연구 #장생도 #십장생 #국립민속박물관 #달아래모의 #해아래실행 #민화해학 #전통회화 #민화작가 #이승연 #연우아트센터 #연아아트 #한국민화 #대구민화 #달서구민화 #송현동민화 #KoreanFolkArt #TurtleSymbolism #민화이야기 #예술과연구

작가의 이전글<천년의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