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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Apr 14. 2017

삼성, 이 정도 밖에 못하나?

2017년 한-베 다문화 아동의 외가 방문 지원 사업

삼성, 이 정도 밖에 못하나?

삼성생명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다문화가정의 이주여성을 위해 '국제결혼 이주여성 모국방문 지원 사업'을 펼쳤다. 2013년부터는 '다문화아동 외갓집 방문 지원 사업'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가족 모두가 함께 엄마 나라를 방문할 수 있도록 혜택을 대폭 확대했다.


사업 주최 측은 "외가방문 및 엄마나라 문화체험을 통해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글로벌 리더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단순한 외가방문을 뛰어 넘어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우리사회의 미래 동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한다"고 밝히고 있다. 올해도 여지없이 '2017년 한-베 다문화 아동의 외가 방문 지원 사업' 공고가 떴다.


기업의 사회공헌사업을 칭찬해야 함이 마땅하나, 나는 이 사업이 여간 못마땅한 게 아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한국여성재단,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삼성생명이 함께 진행하고 있는 이 사업 대상자와 대상 국가, 지원 방법 등의 문제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업이 차별적인데도 불구하고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는 사업자들의 인권감수성을 지적하고자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다.


▶방문지와 그 대상을 보자. '외가' 방문이라고 했으니, 결혼이주여성만이 대상이라는 것이다. 결혼이주남성은 배제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사회 다문화정책이 얼마나 가부장적이며 동화주의에 치우쳐 있는지 말하고 있다. 안 그래도 결혼이주여성 중심의 정책 때문에 힘든 게 한둘이 아닌 결혼이주남성들은 이번 공모를 보며 씁쓸함이 더할 수밖에 없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 중 하나로 제출 서류를 들 수 있다. '여성결혼이민자와 배우자의 최근 3개월 간 납입증명서' 문제다. 이에 따르면 이혼하거나 부득불 한 부모 가정이 된 경우는 신청할 기회조차 없을 수 없다. 사업 주최 측은 한 부모 가정이야말로 경제적으로 더 어렵고 해외로 나갈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걸 깜빡했나 보다.


▶용어 사용을 보면 그 인식을 알 수 있다. 외가를 방문한다는 사업 취지상 ‘엄마 나라’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엄마 나라'는 말은 외국 출신 결혼이주여성은 국적을 따도 여전히 외국인이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 사업 우대 대상 아동이 7~9세라면, 그 엄마들은 이미 대한민국 국적자다. 그들의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결국 엄마 나라라는 말 속에는 가난한 나라 출신의 엄마는 국적을 따도 여전히 외국인이요, 도와줘야 할 대상이라는 편견이 숨겨져 있다. 좀 더 세밀한 표현이 필요하다. 


▶방문국가를 왜 베트남에 한정할까? 물론 사업 주최 측에서 다른 해에 다른 나라를 사업 대상으로 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를 통해 사업을 용이하게 하려고 하는 것은 이해한다. 그래도 매해 특정 국가에 치우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냥 주는 거니까, 주는 내가 갑이다." 뭐 이런 건가? 주최 측이 국적에 따른 차별 소지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게 이상하다. 게다가 그 지역을 하노이와 호치민(인근)으로 한정했다. 정말 사업자 편의 위주다. 베트남은 두 도시 밖에 없다는 건가?


▶사업 방법에 있어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제출 서류 중에 자녀의 출입국사실증명서를 요구하는 것으로 봐서 장기간 만나지 못한 외조부모와 다문화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이주여성과 외조부모의 출입국사실증명서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내 주위에 보면 아이를 낳자마자 본국에 갔다가 몇 년 거주하다 온 이주여성이 제법 된다. 더 나아가 귀국 후 부모를 초청하여 국내에 동거하는 경우는 더 많다. 이번 사업 공고를 보고 공짜로 베트남 갈 수 있다고 장담하며 들떠 있는 이주여성을 보았다. 아마 다문화센터 누군가가 언질을 준 모양이다. 그런데 그 여성의 모친은 한국에 와 있는지 벌써 수년째다. 또한, 그 자녀는 외조모와 함께 입국해서 태어나서 한 번도 한 달 이상 외조모와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다. 정작 결혼하고 아이는 고사하고 본인조차 한 번도 본국에 못 가 본 사람의 기회를 박탈할 수 있는 여지는 최소화하는 게 원칙 아닐까?


공동주관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은 이런 차별적 문제들을 왜 시정하려 들지 않는지 모르겠다. 자신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혜택을 받고 있으니 그만이라는 건가? 이 정도도 감지덕지 뭐 그런 건가? 시민단체는 후원을 받더라도 분명한 소신과 철학을 갖고 사람을 수단화하려는 후원자들로부터 방패막이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정도 철학도 없이 동화주의에 편승해서 이름은 다문화센터요, 진실은 한국문화센터 장사를 하면서도 뭐가 문젠지 모르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신청서 작성 문제다. 신청서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담당자, 사회복지기관 및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등 이주여성 관련 단체 담당자, 자녀 담당 선생님, 주민자치자치센터 ․ 면사무소 등 다문화가족(이주여성) 관련 담당자 등이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다문화가족 관계자의 눈에 든 사람은 추천을 받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국물도 없다 이 말이다. 이런 사업은 사업 관계자들과 친밀한 사람에게 우선권이 주어질 여지가 너무 많다. 그런 면에서 신청서는 당사자가 성명과 국내 체류 기간 등만 간단하게 적도록 하고, 블라인드 처리하여 제비뽑기 등으로 선발한 후에 신청서 작성을 기관에서 돕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접수 방법도 신청자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팩스나 이메일로 신청서 접수는 불가하고, 반드시 거주지 기준 해당 권역 단체에만 접수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철저히 사업자 위주요, 선정 여부의 칼자루를 사업 수행 민간단체에 쥐어주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업 주최 측은 신청대상 자격으로 '프로그램의 취지를 이해하고, 주최 측의 전 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가족'으로 한정하고, 프로그램 참가자는 언론을 통해 홍보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자녀 연령이 7세~9세 (만 5세~7세)인 경우 우대'한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비용을 들여 사회공헌을 하는 기업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나, 한참 자존감에 상처받기 좋을 나이의 아이들을 꼭 대상화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예수님은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푼 것을 굳이 떠벌리더라도 그 대상이 아동일 때는 삼가는 것이 선의를 베푼 자의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는 길이다.


기업 사회공헌활동에 격려를 하고 좋은 소리를 하고 싶다. 이 정도라도 해 주는 기업이 있으니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심함이 부족한 것 같아 작심하고 몇 자 썼다. 하려면 제대로 하는 게 옳다. 하물며 십년이나 해 온 사업이면 그 정도는 검토하는 게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는 길이다.


독하게 쓰지 않고 이 정도로 갈음하니 나 참 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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