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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Apr 22. 2017

그녀는 왜 아이를 때렸을까?

아동학대로 이혼, 전후 사정이 궁금한 이유

미리얀과의 대화는 암호 해독을 하는 것처럼 자꾸 말이 엉켰다. 궁금증이 해소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앞서 말한 내용과 이어지는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 반복되었다. 앞뒤가 맞지 않을 때마다 한국어와 영어로 반복해서 묻고, 손짓과 그림까지 그려 가면 물어야 했다. 미리얀과 함께 또 다른 필리핀 여인 안나는 미리얀이 하고자 하는 말을 따갈로그어로 물어보며 미리얀을 도우려고 했다. 그런데 안나 역시 미리얀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걸 눈치 채고는 더 이상 캐물으려고 하지 않았다. 


말이 엉킨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필리핀 대사관에 비자 연장하러 갔는데, 안된대요. 도와주세요.”

“비자는 출입국에서 받는 거예요. 여권 연장하러 대사관에 갔어요?”

“아, 출입국에 갔다.”

“그럼, 여권은 있어요?”

“여권 없어요.”

“여권 어디 있어요?”

“모르겠어요.”

“외국인 등록증은 있어요?”

“없어요.”

“잃어버렸어요?”

“모르겠어요.”


미리얀은 여권이나 외국인 등록증 등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 있는 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아니, 남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런 식이면 상담하지 못한다는 말에 미리얀은 남편을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그 말에 남편 전화번호를 요구하자, 이번에는 ‘이혼했다’며 연락처를 모른다고 했다. 


“남편 전화번호 모르면 어떻게 연락해요?”

“남편 집에 가면 돼요.”

“그럼 남편 데리고 올 수 있어요? 남편이 좋아하지 않을 거 같은데요.”

“아뇨, 남편 데리고 올 수 있어요. 내일 와요.”


남편을 데리고 오겠다던 미리얀은 약속시간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한국에 온지 9년이 넘는다. 아이 셋을 두고 있지만 지금 아이들과 같이 살지 않는다. 어린이집에서 미리얀을 아동학대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미리얀은 자신이 아이를 때렸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아이가 제 얼굴에 침을 뱉었어요. 퉤! 퉤! 몰라요, 왜 그랬는지. 맨날 C발! *끼야! 그래요. 어떡해요? 필리핀에선 아이 말 안 들으면 때려요. 괜찮아요.”


그녀는 말 안 듣는 아이는 때려도 괜찮다며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는 시늉을 했다. 그게 필리핀식 육아 방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미리얀은 “아이 보고 싶어요. 어떡해요?”라고 다시 물었다. 


막내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옷을 갈아입히다 아이 몸에 멍이 든 것을 보고 아동보호센터에 신고했다고 했다. 그 일로 미리얀은 경찰조사를 받았다. 경찰서에서는 남편에게 무슨 말인가 심각하게 했고, 미리얀은 곧장 집을 나와 버렸다. 남편은 집나간 아내를 찾지 않았고, 미리얀은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벌써 반년 전 일이다. 아이들은 일요일에 가끔 찾아가서 만났다.


문제는 비자가 만료되면서 일어났다. 미리얀은 한국에 온지 9년이 넘었는데도 국적은 물론 영주권도 얻지 못했다. 한국어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미리얀에게 국적이나 영주권 취득은 남의 일이었다. 옆에서 한국어공부를 하라고 권해도 늘 “바빠요, 시간 없어요!”하는 그녀는 다른 필리핀인들처럼 영어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필리핀 사람들과만 어울리기 때문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비자 문제는 동료 필리핀인들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미리얀은 불법체류자가 되면 강제 출국되어 아이들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쉼터를 찾았다. 


상담하는 입장에서는 내담자 신분도 확인할 수 없고, 어디까지 사실인지도 확인하지 못할 때 느끼는 답답함은 찾아온 사람보다 더한 법이다. 섣불리 미리얀의 모든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미리얀의 말을 통해 그녀가 아이를 때린 이유가 평소 남편의 행실 때문에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상대방의 말을 들어봐야 하는 법이요, 경찰서와 어린이집에도 확인해 봐야 할 문제다. 문제는 미리얀이 그런 정보를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과연 모든 사실을 적나라하게 털어놓고 도움을 구할까? 시간이 해결할 문제다. 정말 절박하다면 진실을 털어놓지 않을까? 이럴 땐, 그저 기다려주는 게 답이다. 너무 보채면 경찰인 줄 알고 움츠리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믿고 기다려준다는 건 지난한 일이다. 상대방이 신뢰할만한 것을 보여주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다. 지금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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