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ince ko May 05. 2017

암호를 해독하라

한국어도 영어도 서툰 미리얀에게 닥친 일

"미치긋따~"


미리얀과의 대화는 암호 해독을 하는 것처럼 자꾸 말이 엉켰다. 궁금증이 해소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앞서 말한 내용과 이어지는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 반복되었다. 앞뒤가 맞지 않을 때마다 한국어와 영어로 반복해서 묻고, 손짓과 그림까지 그려 가면 물어야 했다. 미리얀과 함께 온 또 다른 필리핀 여인 안나는 미리얀이 하고자 하는 말을 따갈로그어로 물어보며 미리얀을 도우려고 했다. 그런데 안나 역시 미리얀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걸 눈치 채고는 더 이상 캐물으려고 하지 않았다.


말이 엉킨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필리핀 대사관에 비자 연장하러 갔는데, 안된대요. 도와주세요.”
“비자는 출입국에서 받는 거예요. 여권 연장하러 대사관에 갔어요?”
“아, 출입국에 갔다.”
“그럼, 여권은 있어요?”
“여권 없어요.”
“여권 어디 있어요?”
“모르겠어요.”
“외국인 등록증은 있어요?”
“없어요.”
“잃어버렸어요?”
“모르겠어요.”


미리얀은 여권이나 외국인 등록증 등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 있는 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 아니, 남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지 않았다.


상담하는 입장에서는 내담자 신분도 확인할 수 없고, 어디까지 사실인지도 확인하지 못할 때 느끼는 답답함은 찾아온 사람보다 더한 법이다. 섣불리 미리얀의 모든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그녀는 과연 모든 사실을 적나라하게 털어놓고 도움을 구할까? 시간이 해결할 문제다. 정말 절박하다면 진실을 털어놓지 않을까? 이럴 땐, 그저 기다려주는 게 답이다. 너무 보채면 경찰인 줄 알고 움츠리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믿고 기다려준다는 건 지난한 일이다. 상대방이 신뢰할만한 것을 보여주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다. 지금이 그렇다. 


미리얀은 지금 아동학대 혐의를 받고 있고 아이들에게 접근금지된 상태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는 왜 아이를 때렸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