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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May 14. 2017

투명인간 혹은 엑스맨

알콜중독 결혼이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새벽 두 시에 주님을 몹시 의지한 한 남성이 쉼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내쫓는 사건이 발생했다. 덩치가 산만한 사람이 화를 내며 횡포를 부리는 통에 항암치료 중인 사람, 발을 다친 난민, 실직 중인 이주노동자들이 쉼터 밖으로 내쫓겨 터미널에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단다. 술 취한 사람은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라 잘했다 싶었다.


주()님과 함께 했던 그 남성은 사람들을 방에서 다 내쫓고는 정작 잠은 엉뚱한 곳에서 잤다. 그는 술에 취하면 방에서 자지 않고 베란다나 창고, 부엌에서 자는 버릇이 있다. 대낮까지 담요를 침낭처럼 둘둘 말아 정신없이 자고나면 본인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며칠 전에는 이혼하면서 헤어진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청구했던 면접교섭권을 얻기 위한 재판이 있었다. 그때도 술에 취해 하루 종일 행방불명이 돼 버려서 사람 속을 썩였었다. 전화는 연결이 되지 않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미국 유학 중에 한국여성을 만나 애 둘을 낳고 한국에 온 아프리카계 결혼이주민이다. 이혼 후에 아이들이 보고 싶어 술을 의지하기 시작했다는 그의 말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술을 끊고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말이 더 이상 곧이 들리지 않는다.  재판에 나오지 않은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가 하는 말에 말문이 막혔었다.


딸들을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되는 중요한 재판이었다. 자식들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있다면 반드시 출석해서 판사에게 간곡하게 자신의 처지를 호소라도 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출석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옥상에 올라갔다 내려올 때 다리를 다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아파서 방에 누워 있었다며 재판에 출석하지 못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투명인간이든가, 분신술을 익혔음이 틀림없다. 쉼터가 수백제곱미터가 될 정도로 넓은 곳도 아니요, 고작 4x5미터밖에 되지 않는 방에서 잤다는데 아무도 못 봤으니 말이다. 하루 종일 쉼터에서 그를 찾았던 나를 비롯한 다른 이주노동자들은 그를 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전화를 해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를 찾던 사람들은 눈도 멀고, 귀도 멀었던 모양이냐고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확고했다. 더 웃긴 건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다쳤었다는데, 하루 만에 걷는데 아무 지장이 없을 정도로 멀쩡하다. 치유력만으로 놓고 보면 그는 가히 엑스맨에 나오는 불멸의 존재, 울버린을 닮기까지 했다.


그랬던 그가 술 냄새 풀풀 풍기며 창고에서 자는 모습을 들킨 것이다. 그러자 그는 계속 자고 싶다는 말과 함께 담요 속으로 기어들었다. 그는 잠에서 깨면 술 마신 적 전혀 없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창고에는 그가 쳐 박아 놓은 담요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속상했지만, 자는 걸 억지로 깨우지 않고 깰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담요를 부엌으로 옮기더니, 또 다시 자는 시늉을 했다. 내가 자리를 피해주자, 얼마 안 가서 라면 끓이는 냄새가 솔솔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해장 라면을 들려고 하는 모양이다.


그는 병이 도졌다. 병을 앓고 있다. 알콜 중독! 다 치료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의 거짓말이야 나만 속상하면 되지만, 술 먹고 횡포를 부리기 시작하면 쉼터를 이용하는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큰 불편을 겪는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럴 땐 정말 미치겠다.


옛 어른들은 술이나 쳐 먹으면서 사람 구실 제대로 못하는 이들을 욕할 때 “너도 인간이라고 네 엄마는 너를 낳고 미역국 드셨냐?”고 했다. 미역국이야 한국 산모들이 먹는 거라고 하지만, 그는 그 말을 들어도 싸다.


그에게는 지금 주님이 필요하다.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주님이 아니라, 영혼과 몸을 새롭게 해 줄 주님, 구원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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