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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Jun 04. 2017

사라 엄마가 근로장려금 신청하다 마음상한 이유

결혼이주민은 배우자가 죽으면 근로장려금 신청할 수 없다?



지난주에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말에 회사 사무실에 들렀던 융은 마음만 상하는 일을 경험했다. 같이 일하는 결혼이주여성들 중에 유일하게 신청을 거부당했기 때문이었다. 


“회사 사무실에서 빨리빨리 근로장려금 신청하라고 해서 사무실에 갔는데, 저만 못했어요. 제가 국적이 없어서 안 된다고 했어요. 자녀장려금도 남편이 죽어서 신청하지 못한다고 했어요.”

“회사에서 그렇게 말해요?”

“네, 그런데 이혼한 여자는 했어요. 필리핀 아줌마요.”


지난주에 융이 다니는 회사에서는 결혼이주여성들이 근로장려금 정기 신청기간(5월1일~31일)을 놓치지 않도록 안내를 하면서 사무실에서 신청서 작성을 도와주었다. 회사에서는 기한이 지나 신청하면, 근로장려금·자녀장려금의 10%가 감액되기 때문에 기한 내에 신청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신청서 작성을 도와주던 사무실 직원이 융은 신청 자격이 없다면서 신청서를 작성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무실 직원의 안내를 받은 융은 그만 마음이 상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국적이 없어서 신청 자격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다가 융이 자신과 체류자격이 같은 여자가 신청하는 것을 보고 ‘저 여자는 왜 되느냐’고 질문하자, 이번에는 “융은 남편이 죽었잖아요”라고 했다. 마침 그때 한국남성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걸로 알고 있는 필리핀 여자가 신청서를 작성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에 대해 사무실 직원은 “그건, 제가 몰라요. 국세청에 알아보세요”라며 말을 잘라 버렸다. 


신청을 마친 사람들은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으로 한 달 월급보다 많이 받을 수 있게 됐다며 다들 좋아했다. 회사에서는 근로장려금은 단독가구의 경우에는 최대 77만원의 금액이 지급되고, 홀벌이 가구는 최대 185만원, 맞벌이 가구는 최대 230만원까지 지급된다고 알려줬다. 자녀장려금은 부양자녀 수× 50만 원이 지급된다고 했다. 


요즘 융은 초등학교 3학년인 딸 아이, 사라 양육비가 만만치 않다고 느낀다. 교통사고로 남편과 사별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에 출산하고, 아기에게 젖 한 번 제대로 물려보지 못하고 시댁에서 쫓겨나야 했던 융의 한국생활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사별하고 홀몸으로 애를 키웠는데 근로장려금·자녀장려금 못 준다니

융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르던 나이에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지 1년 만에 임신했다. 나이차가 많이 나긴 했지만 남편은 성실했고, 임신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하며 아이의 출산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둘은 아기 이름을 ‘사라’라고 짓고 마냥 행복한 날들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비오는 날, 친구 오토바이 뒷좌석에 탔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극심한 스트레스 중에 출산했지만 감사하게도 아이는 건강했다. 융은 병원에서 딸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아빠는 세상을 떠났지만,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울게”라고 아이에게 몇 번이고 다짐했다. 

하지만 융의 그런 다짐과 달리 시댁에서는 융이 퇴원하자마자, 청천벽력 같은 요구를 했다. 남편 생전에는 딴 살림을 살던 형님 댁에서 갑자기 나타나 융에게 귀국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만 달러를 줄 테니, 아기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기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라.”

“사라는 제 아긴데, 왜 아기를 놔두고 베트남으로 가요? 제가 잘 키울 거예요”

“남편이 있어야 비자를 연기할 수 있어. 남편이 없으니 비자가 만료되면 불법체류자 되는 거야. 그 전에 베트남으로 돌아 가!”


형님 댁은 귀국까지 3주간의 시간을 준다는 통보를 하고는 아이를 데려가 버렸다. 사라를 빼앗기고 형님 댁에서 말한 출국 시한을 사흘 앞두고 융은 용인이주노동자쉼터에 도움을 청했다. 융의 사연을 들은 쉼터에서 융의 시댁에 전화를 하자, 터무니없는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애기는 입양했으니 연락하지 마세요.”

“입양은 친부모가 동의해야 하는데, 임의로 입양이 이뤄졌다면 곧바로 형사고발할 테니까, 빨리 아이를 엄마에게 돌려주세요!”

“흥, 법대로 해요. 변호사한테 알아보고 처리하는 일이니까!”

“변호사요? 그 변호사 한 번 만나고 싶네요. 그 변호사 이름이 어떻게 되죠?”


앙칼진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기의 큰엄마 되는 사람이었다. 그 일로 경찰에 신고하고 입양 자문을 해 줬다는 K 변호사를 만나고 아기를 되찾기까지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사라 큰 엄마가 말한 변호사는 정치에 뜻을 두고 평촌에서 장애인 단체 지원활동과 지역 청년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사라 큰엄마는 “아기를 데려가려면 합의서를 쓰고 공증을 받으라”면서 문서를 들이밀었다.  


합의서에는 남편 사망 보상금과 남편의 통장 잔고 등의 상속 문제, 아기의 양육권 등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큰엄마가 관여할 내용이 전혀 아니었다. 큰엄마라는 사람은 코앞에 아기를 두고 눈물을 흘리며 안아보려는 융에게 차가운 눈길로 애를 데려가려면 합의서에 먼저 날인하라고 강요했다. 아기를 가지고 흥정하는 것도 아니고, 애끊는 모정을 이용하여 합의서 날인을 강요하는 모습은 아기와는 관련 없는 사람마저 피를 끊게 했다.  


이 일이 더욱 어이없었던 건, 지역에서 나름 인권 운동한다는 변호사가 합의서를 작성했다는 것이었다. 변호사나 큰엄마라는 사람은 융이 고분고분하게 합의서에 날인을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K 변호사는 사라 큰엄마가 요구하는 합의서 작성이 도덕적으로나 법리적으로 옳지 않음을 뻔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융의 시댁 측에서 아기를 직접 키울 생각이 전혀 없음과 다른 뜻이 있어서 융을 쫓아내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시댁 측 입장을 꾸준히 설파했다.  


K 변호사는 융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아기 양육권 문제를 놓고 재판까지 한다면 재판 기간 동안 아기를 데려가지 못합니다”며 융을 압박했다. 머리 아프게 재판할 것 없이 이 정도에서 그만 떨어지는 것이 어떠냐는 투였다. 시댁 측에서는 아기를 키울 의사도 없는데, 양육권 소송 운운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협박이나 진배없었다. 


K 변호사는 아기의 미래를 위해 하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실상 아기의 미래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상속권을 강탈하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는 시댁 식구들과 한통속이 됐을 뿐이었다. 그는 사라의 인생에서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를 빼앗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도 없어 보였다. 


결국 이주노동자쉼터에서도 변호사를 통해 대응하기로 했다. 그제야 K 변호사는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아이 엄마가 ‘잘’ 키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라며, 합의서 작성에 대해 한 발 빼기 시작했다.  


결국 시댁 측에서는 몇 시간의 설전 끝에 합의서 작성을 포기하고 아기를 돌려주었다. 그 일을 겪은 지가 벌써 10년 전 일이다. 그 동안 융은 명절과 남편 기일마다 시댁을 찾았다. 시부모님은 사라를 볼 때마다 ‘제 아빠를 닮았다’며 여간 예뻐하시는 게 아니다. 그런 융, 사라 엄마에게 ‘국적이 없고, 남편이 죽어서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 신청 자격이 안 된다’는 안내는 화나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국적신청을 하고 시험을 볼 때마다 떨어져서 의기소침해 있는 융이었다. 


융의 하소연을 들으며 회사 직원의 안내가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먼저 알려줘야 했다. 국적 여부와 상관없이 융은 애초에 신청 자격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근로장려금이나 자녀장려금은 <2016년 12월 31일 기준으로 ①배우자가 있거나, ②만 18세 미만 부양자녀가 있거나 ③신청자가 만 40세 이상이어야 한다.>


아이가 열 살이긴 하지만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융은 나이 때문에 신청 자체를 할 수 없다. 그런데 회사 사무실 직원이 그런 언급 없이 국적만 언급해서 마음을 상하게 만든 것이었다. 물론 위 요건을 다 충족하더라도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지 아니한 자’(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와 혼인한 자는 제외)는 신청 자격이 없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와 혼인한 자는 제외)이다. 융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와 혼인’했다. 그런데 배우자가 죽었다. 그래서 마흔이 되더라도 지금 규정대로라면 근로장려금 신청 자격을 얻을 수 없다. 딸아이를 위해 재혼도 하지 않고 억척스레 살아온 사라 엄마가 이래저래 억울함을 감출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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