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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Sep 11. 2017

1평 컨테이너 이주노동자 숙소의 비애

사장님도 이런 방에서 살아 보세요

#이주노동자_현실
#컨테이너_숙소

언젠가 제주에 가서 살게 되면 컨테이너를 이용해서 집을 지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단, 조건이 있다. 높이는 좀 더 높아야 하고, 너비도 좀 더 넓어야 한다. 길이는 최소 40피트는 넘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컨테이너는 없다.


이주노동자 숙소 이야기를 하려면 컨테이너가 빠질 수 없다. 지난주에 방문했던 버섯농장은 20피트짜리 컨테이너를 사용하고 있었다. 컨테이너 안쪽에 칸막이를 설치해서 만든 두 개의 방은 두 명이 사용하기도 하고, 한 명이 사용하기도 했다. 한 명이 사용하는 방엔 버섯을 담을 종이 박스가 천정까지 높게 겹겹이 쌓여 있었다. 20피트는 채 2.4미터가 되지 않는 높이에, 평수로는 4.1평쯤 된다. 결국 2평짜리 방을 두 사람이 사용하는 꼴이니, 1인당 1평이 이주노동자 숙소인 셈이다.


농장 사무실로 쓰이는 컨테이너는 천정 위로 30센티 정도의 판넬을 설치해서 단열하고 있는 반면, 이주노동자 숙소는 아무런 단열 장치를 하지 않고 있었다. 여름 같은 날엔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쪄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사장 본인도 그런 방에서 한 번 살아봐야 한다. 


컨테이너 숙소를 볼 때마다 나는 태국인 피싯이 떠오른다. 10년도 더 된 일이다. 8월 어느 날 점심 즈음이었다. 피싯이 한 손은 머리에, 한 손은 입술 주위에 대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다친 부위를 화장지로 누르고 있는 그 모습은 해맑은 장난꾸러기 같았다.


사고는 지난밤에 있었다. 피싯은 숙소인 컨테이너에서 더위로 잠을 자기 어려워지자, 동료들과 함께 컨테이너 위에 올라갔다. 한 여름이긴 했지만, 새벽녘에 선선한 바람이 불자 그곳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잠 들었다기보다 졸았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겠다. 컨테이너 모서리에 걸터앉았던 그는 졸다가 그만 머리를 아래로 하고 떨어졌다. 2미터 남짓한 높이였지만, 무방비로 머리를 땅에 쳐 박히자 피는 낭자하게 흘렀고 통증은 심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어떻게 조치를 취할지 몰라, 마냥 화장지로 흐르는 피를 누르다가 쉼터를 찾아왔다고 했다.


피싯을 병원에 데리고 가자, 의사는 상처가 벌써 곪기 시작해서 꿰매는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무려 여덟 바늘이나 머리를 꿰맸는데, 머리라 한 2주나 있어야 실밥을 뽑을 수 있다고 했다.


피싯이 일하던 회사는 20여명이나 되는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게다가 한국인들도 30여명이나 되는 제법 규모 있는 회사였다. 그런데도 사고 난 피싯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 동료도 없고, 회사 직원도 없었다. 피싯이 당한 일은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격리되고 소외된 현실인지를 말해 주었다. 피싯에게 있어 그저 최선의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 쉼터를 찾아간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과 그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말해 준다. 상식적으로 추락 사고로 머리를 다쳤다면, 곧바로 병원으로 가서 지혈을 하고, x-ray를 찍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게 맞다. 그런데 피싯처럼 큰 상처를 입고도 대충 응급조치를 취하고 말거나, 그러한 상처를 키우고 키우다가 병원을 찾는 일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흔한 일이다.


위험하게 머리를 다치고도 멀뚱멀뚱 하늘만 쳐다보며, 화장지로 지혈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오늘이라고 없지 않을 것이다.


이제 더위는 한풀 꺾였다. 하지만 언제인가 싶게 추위가 찾아들 것이다. 교도소 수용공간보다 좁은 그곳에서 이주노동자들은 한 겨울 나야 한다. 원치 않는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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