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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Feb 15. 2017

휴가 갔다 왔더니 '방 빼!'

입국일자를 넘긴 것도 아니데, 화부터 낸 사장님

지난 여름 어느 날, 점심 때 잠시 사무실을 비웠는데, '호두, 아몬드, 건포도' 누가 갔다 놨는지 한 접시 가득 냉장고 옆에 놓여 있었다. 


"이거 선물이에요. 집에서 갖고 왔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유숩이었다. 3년 전 쉼터에서 한 달 이상 지냈던 사람이다. 당시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했는데, 계약했던 회사가 부도나면서 입국하자마자 실직했었다. 어렵게 직장을 찾은 후엔 한국어교실에서 공부도 꾸준히 했었는데, 한 동안 소식이 뜸했었다. 아침에 출근했을 때 그는 남자 숙소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휴가 갔다 왔어요."

"아, 네. 오늘 일 안해요?"

"어제 회사 갔어요. 사장님, 기숙사 문 닫아요. 짐 다 밖에 있어요. 왜, 몰라요. 오늘 회사에 다시 갈 거에요."

"휴가 갔다 왔는데, 사장님이 기숙사에 들어오지 말라는 거예요? 회사 나가라는 거예요?"

"아직은 몰라요. 휴가는 9월 30일까지에요. 사장님, 빨리 와 했어요. 나 여권 바꿨어요. 28일 왔어요. 사장님 화 났어요."


그제야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3년 근무 후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갈 때, 회사에서는 '일이 급하니까 빨리 갔다 오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유숩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여권을 연장하고, 가족과 해후를 즐기느라 입국 비자에 적힌 날짜가 임박했을 때 입국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직업군인이었던 그는 시간에 대해 엄격한 사람이었다. 귀국 일자를 귀대 명령과 같다고 생각하고 기한을 넘기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회사 사장은 그런 그가 못마땅했는지 그의 짐을 기숙사에서 빼고 들어가지 못하게 한 모양이다. 휴가를 마치고 입국하자마자 그런 일을 당한 유숩은 마음이 크게 상한 모양이다. 


"나, 회사에 일 안해요. 여기 살아도 돼요?"

"네, 그래도 회사에 한 번 가 보세요. 사장님 만나서 이야기하고요."

"알았어요. 사장님 화나면 나 여기 자요."


며칠 후...

회사에 들어간 유숩에게 사장은 무조건 다시 나가라고 했다. 유숩은 어이가 없었지만 굳이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잔업도 많지 않고, 근무환경도 좋지 않아서 할 수만 있으면 회사를 옮기고 싶었던 터였다. 다만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규정 때문에 회사를 옮기지 않고 참고 있던 거였다. 


공장을 나서는 유숩을 공장장이 따라나서면서 어깨를 두드려 줬다. 


“니가 늦게 와서 그런 거 아니야. 회사에 일이 없어. 회사가 어렵다고 그냥 보내면 다음에 외국인 못 쓸까 봐서 사장이 저러는 거야.”


사장은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하면서도 그 핑계를 유숩에게 떠넘기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장이 잘못 알고 있는 거였다. 경영상의 문제로 부득이하게 이주노동자를 해고했을 경우에는 추후 경영 여건이 좋아졌을 때 이주노동자 고용제한을 받지 않는다. 


귀국하자마자 기숙사에서 쫓겨났던 유숩은 얼마 안 있어 좋은 직장을 찾았다. 평소 원하던 대로 잔업은 많은 반면, 사장 잔소리는 많지 않은 플라스틱 단열재 공장이었다. 직장 동료들은 나이가 지긋해서 마음 씀씀이가 너그러웠다. 사장은 군인 출신답게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알아서 척척 하는 유숩에게 공장 한쪽 라인을 맡겼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면서 관련 규정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못된 사장은 본의 아니게 유숩에게 새로운 기회를 안겨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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