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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May 01. 2019

자유로운 영혼

귓바퀴 위에 꽃 한 송이 꽂고

''고용좁센터 가요''


좁센터가 Job센터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순간 고난의 상징인 욥(Job)으로 들려 울컥해졌습니다. 석 달 가까이 일자리를 못 찾고 있는 캄보디아에서 온 찬나리였습니다. 그에게 구직 알선하는 고용Job센터는 욥센터라 해도 무방할 일이었습니다. 그는 길을 나서다 공원 화단에 핀 철쭉꽃 한 송이를 따 귓바퀴 위에 걸치더니 환하게 웃었습니다. 순식간에 손이 올라가는 걸로 봐서 고향에서 머리에 꽃 좀 꽂아 본 솜씨였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을 텐데도 꽃으로 멋을 낼 줄 아는 그의 여유로움 탓인지 참 곱게 보였습니다. 꽃으로 기분 내는 그의 여유를 보며 몇 해 전, 네팔 카투만두에서 보았던 촌로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날은 볕이 유달리 뜨거웠습니다. 한낮 땡볕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를 찾았을 때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는지 한 무리의 할아버지들이 귓바퀴 위에 꽃 한 송이 걸치고, 모자 위에 또 한 송이씩 꽂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들은 꽃으로 멋 내는 일이 일상처럼 보였습니다. 말주변 좋은 남자는 뭔가를 끊임없이 이야기했고, 말수 적은 남자는 고개를 끄떡이다가 몇 번씩 손을 모으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마치 고생이란 모르고 살아온 것 처럼 능청떠는 남자들을 두고 통역을 맡은 이는 남자들이 매일 똑같이 키득대며 하는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평생 들녘에서 일하느라 검게 탄 그 얼굴들은 몇 개씩 빠진 치아와 쭈글쭈글한 주름에도 자잘하게 퍼지는 미소가 아름다웠었습니다. 등 굽고 기력 다한 남자들에게 남은 즐거움이란 꽃 한 송이가 주는 위로와 벗들이 털어놓는 뻔한 이야기였습니다. 해 떨어져 돌아갈 집이 있고, 이야기 나눌 친구가 있고, 꽃 한 송이로 멋 낼 여유 있다면 그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찬나리에게 머리에 꽃 꽂고 다니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면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 나오는 처자처럼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으로 착각할 수 있다고 말하려다 말았습니다. 그는 진짜 영혼이 자유로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봄에 머리에 꽃 한 송이 꽂을 수 있는 여유, 이 얼마나 좋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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