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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Apr 06. 2021

입대하던 날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그 날 아침, ‘이 선만 넘으면 지옥을 경험하게 해 주겠다’는 듯이 발끝으로 해병 1사단 서문 정문 뒤에서 길바닥에 줄을 긋고 턱을 치켜든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영화 엑스맨에서 선글라스를 벗으며 레이저를 뿜는 싸이클롭스 같았다. 무표정한 그들은 선글라스 역할 하는 하얀 방탄모 속에 무쇠도 녹일 것 같은 강렬한 눈빛을 감추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자신들 군홧발로 그어놓은 줄을 건너는 순간부터 태어나서 듣도 보도 못하던 말로 상대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뭔가 조금만 맘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아~~~”하고 길게 내빼는 소리로 ‘정신 차려’라는 소리를 대신했다. 기계음처럼 쇳소리가 섞인 고함소리에 산천초목은 사시나무 떨 듯 흔들렸고, 팔뚝에는 소름이 돋았다. 그들이 쓰는 말은  좀체 적응하기 힘들었다. 말투뿐만 아니라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각이 잡혀 있던 해병대 훈련교관들은 로보캅 같았다.    

  

DI라 불리던 훈련교관들의 욕설은 살벌하기도 했지만, 상스런 소리와 거리를 두고 자란 사람에겐 너무 생소해서 무슨 문학 기법인가 싶을 정도였다. 24주, 반년이 지나 그들이 쓰던 방언에 적응할 때쯤 돼서 이별을 경험했다.      


'왜 굳이 해병대를 가려고 하느냐'며 걱정하던 어머니를 뒤로 하고 해병대 부사관 후보생으로 입대했던 지가 벌써 삼십삼 년 전이다. 새벽기도를 마친 빡빡머리가 가슴 주머니에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한 성경을 넣고 포항으로 떠났던 그 날이 1988년 4월 6일이었다. 대한민국해병대와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때 날씬했던 총각은 통통 아재가 되었고, 그 아들은 지금 해병대원으로 군 복무 중이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는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누군가의 정체성이 되었고, 가풍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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