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 뉴몰든에서 칭다오까지, 오늘도 떠나는
저자 신혜란 서울대 교수는 조선족이 그나마 가장 알맞은 단어이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밝힌다. 더불어 '중국 동포'는 한국인 중심의 표현으로, 조선족을 깔보는 사람들 때문에 '조선족을 조선족이라 부르지 못했던 과거를 돌아보자'는 마음도 담았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조선족은 "우리는 이민자가 아니라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는 어느 아주머니 말처럼 '운 나쁘게 나라를 잘못 만나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사람과 생각, 정책이 이동하는 세계화와 함께한다.
그동안 조선족의 집단 이주에 관해 언론과 학계가 보인 관심은 불법 이주, 가족 해체, 차별과 고생에 집중됐다. 이주에 뒤따르는 이런저런 모습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저자는 아이들의 요구 때문에 해외로 떠난 경우도 있음에 주목하며, 조선족이 지닌 잠재력, 가능성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
21세기는 인터넷 유목민이라는 새로운 종족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이동은 그저 온라인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국경을 넘어서는 이동이 예사가 되고 있고, 조선족은 그런 이동을 좀 더 일찍 시작했다. 그래서 저자는 "조선족은 우리의 미래일 수도 있다"는 점을 피력한다.
저자가 영국에서 만난 조선족들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중국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쓰고 일본어도 한다. 그래서 "외국어 하나도 하기 힘든 평범한 한국 사람에 견주어 조선족은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이런 저자의 주장을 고깝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저자가 만난 조선족들이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가 유독 강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야말로 '물'을 건넌 사람들이다. 과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떠나고, 독일에 광부로 간호사로 떠났던 사람들이 그랬 듯이 말이다.
조선족은 일찌감치 식민과 해방과 분단을 거치며 불안한 이동을 시작했다. 삶의 역동성을 미리 겪었다. 그들에게 '떠남'은 일상이었고, 그것은 타문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였다. 그래서 그들의 사고는 유연하고 역동적이다. 그들은 이동의 시대를 앞서 살아낸 사람들이다. 이러한 조선족의 유목민적 특징은 21세기에 큰 장점일 수 있다. 중국이 부상하고 남북이 통일된 뒤 그들의 역할을 생각하면, 조선족이 우리의 미래일 수 있다는 주장을 허투루 들을 게 아니다.
한글 이름 있는데, 영어로만 쓰게 하는 한국
엄청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조선족들은 한국 땅에서 업신여김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한다. 조선족은 재외 동포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닌 부류에 속해 있다. 5년에 걸친 저자의 인터뷰에는 그들의 하소연과 함께 원망 또한 솔직하게 담겨 있다. 조선족들이 무엇보다 아쉬워하는 부분은 신분증 문제다.
"우리는 중국 신분증에도 한국말로 한글 이름을 적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영어로 이름을 쓰고 한글로 신분증에 이름을 못 적게 돼 있어요. 재외동포법도 개선됐지만, 계속 외국인보다도 대우를 못 받고 있는 처지예요."
'50년이 넘도록 중국에 살면서 우리 민족의 문화나 생활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냈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고충도 모르면서 차별한다. 중국에서도 이런 차별은 받지 않았다'는 지적은 단순히 볼멘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차별당하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월드컵 때만 되면 "어느 쪽을 응원할 거냐?"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1급이고, 조선족은 2급, 탈북자는 3급이라는 식의 계급을 정해놓고 업신여기는 풍토를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제목을 도발적이고 단정적으로 지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떠나고, 정착하고, 적응하고, 생존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모두 조선족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저자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영국 런던의 한인 타운인 뉴몰든, 중국 칭다오, 대한민국 가리봉에서 만난 조선족과 탈북자들을 연구했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도 이민자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조선족일까?'라는 질문엔 어쩌면 빤한 답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최소한 방향성은 정해졌으니 말이다.
"사람들의 존재가 점점 더 불안해지는 경향이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면, 조선족은 일찌감치 불안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혹시 우리는 모두 조선족일까? 아직 아니어도 그렇게 나아가고 있는 걸까?"
저자는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바람직한 이주민 정책의 방향에 대해서도 살핀다. 다문화사회라고 하는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도 아니요, 한국인도 아닌 애매한 존재들인 조선족들은 묻는다.
"우리는 다문화요, 아니면 한국 사람이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조선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드러낼 것이다. 마이클 샐던 교수가 지적했듯이 이주문제는 민족과 경제 문제가 한꺼번에 불거지기 때문에 좌로 가나 우로 가나 정답이 없다. 그래서 이주를 연구하는 것은 흥미롭기는 하나, 열렬한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정 부분 적대적인 시선을 감내해야 하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고단한 분야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는 신혜란 교수가 우리 사회가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고단한 노고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