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하노이 코스

재형의 실력은 눈에 띄게 늘고 있었다. 언덕에서 밀리던 페달이 어느새 힘 있게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본 영실은 설악 메디오폰도 대회를 제안했다.

“그란폰도는 아직 이르지만, 메디오는 할 만하겠어. 거리 105킬로, 획고 1700. 힘들겠지만, 한번 도전해 볼래?”


평일에 월차를 낸 두 사람은 한강 난지공원 편의점 앞에서 만났다. 봄바람이 한강 위를 스쳐 지나가고, 강 건너 노을공원엔 붉은 기운이 번지고 있었다. 영실이 음료를 건네며 말했다.

“저기 보이지? 하늘 공원하고 노을공원. 우리가 오늘 탈 코스야. 이걸 하노이 코스라고 불러.”

재형은 멀리 언덕을 바라봤다.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낮네요.”
“그래. 대신 여러 번 올라야 돼. 한 번 오르고 내려오면 획고가 25 정도 되니까, 스무 번만 오르면 500이야.
오늘은 그 정도만 채우자. 설악 메디오는 1700이니까… 앞으로 갈 길이 멀지.”

그의 말에 재형은 웃었다.
“형, 듣기만 해도 숨이 차네요.”
“라이딩은 숫자보다 리듬이야. 힘들어도 페달을 멈추지 않는 게 중요해.”


두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공원 입구로 향했다. 봄 공기 속을 가르며 바퀴가 부드럽게 노면을 스쳤다.


하늘공원의 길은 완만하지만, 올라갈수록 숨이 턱까지 차 올랐다.

영실은 속도를 늦추며 뒤처진 재형이 옆으로 붙었다.

“페달 박자 맞춰! 가급적이면 너의 체중을 페달에 실으려고 노력해 봐, 체중이 엉덩이로 가면 안장통이 생겨. 반대로 팔이나 어깨로 가면 손이 저리지. 팔에도 힘을 빼고 엉덩이에도 힘을 빼면 자연스럽게 체중이 다리로 가. 그럼 너의 근육뿐만 아니라 체중으로 페달을 누르게 돼서 힘이 훨씬 덜 들어.”


재형은 영실이 말대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체중을 다리에 싣는다는 생각으로 페달을 돌리자, 한결 페달이 가벼워졌다. 숨은 여전히 거칠었지만 확실히 힘이 덜 들었다. 점점 자연스러운 페달링으로 리듬이 맞춰지고 있었다.


정상에 오르자, 두 사람은 하늘공원 끝자락에 서서 서울과 한강을 내려다봤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두 사람의 얼굴을 스쳤다. 재형의 온몸에 묘한 해방감이 번졌다.

“와… 세상 다 가진 기분이에요.”

영실이 옆에서 미소 지었다.
“힘들었지? 그래도 이 맛에 타는 거야.”

재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몸은 힘든데… 살아 있다는 느낌이에요. 회사에 있을 땐 하루 종일 숨 막히게 앉아 있었거든요.”

영실은 잠시 재형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물었다.
“요즘 회사는 어때?”

재형은 핸들에 팔을 걸고 숨을 고르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 나, 회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영실이 고개를 돌렸다.
“왜? 무슨 일 있어?”

재형은 잠시 멈칫하다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냥… 거기서 제가 제일 쓸모없는 사람 같아요. 동기들은 다 승진하는데, 저만 제자리예요.
하루 종일 눈치만 보고, 출근하면 하루를 버티는 게 제일 힘들어요.”

영실은 조용히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음 알아. 나도 그랬으니까. 그래도 너무 급하게 결정하진 마. 조금만 더 버텨봐. 버티다 보면…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보일 거야.”

재형은 한참 고개를 숙였다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어두운 한강을 바라봤다. 영실의 말은 충고라기보다 따뜻한 위로처럼 들렸다. 재형은 조용히 말했다.

“형이랑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영실은 말없이 재형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온기가 재형의 몸을 따뜻하게 감쌌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영실이 먼저 자전거를 돌렸다.

“자, 내려가자. 오를 땐 숨차고 힘들었지. 내려갈 땐… 그게 기쁨으로 돌아와.”

그 말에 재형은 미소 지었다.


두 사람은 언덕을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밤바람이 스치고, 풍경이 발밑으로 흘러갔다.


그 순간 재형은 알았다.

인생은, 힘겹게 올라야 비로소 내려가는 바람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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