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사업을 하다 빚을 졌다. 낯선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고,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엄마는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그때마다 우리는 숨을 죽인 채 방 안 구석에 웅크렸다.
얼마 뒤, 아버지는 빚을 갚지 못해 감옥에 갔다. 그날 밤, 엄마가 말했다.
“이제 나가야 해.”
우리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집을 나섰다. 달빛 아래 골목은 조용했고, 발자국 소리만 또박또박 울렸다. 그게 ‘도망’이라는 걸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날 이후, 우리가 머문 집은 늘 남의 집이었다.
고모네, 큰집, 또 다른 친척집….
집마다 냄새도, 규칙도 달랐다. 식탁에 앉을 때면 괜히 자세를 바로 세웠고, 말을 할 땐 목소리가 자연스레 낮아졌다. 그땐 몰랐다. 그게 우리가 그 집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는 걸
그나마 고모네에서 지내던 시절이 조금은 평화로웠다. 고모는 식당에서 일했고, 남은 짜장이나 카레를 가져와 함께 나눠 먹곤 했다. 그때는 그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줄 알았다. 뜨거운 밥 위에 짜장이 얹히는 순간, 모두가 잠시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감옥에서 돌아오면서, 그 짧았던 평화는 끝났다. 우리는 고모네를 나와 아버지와 함께 작은 옥탑방으로 옮겨 갔다. 전과가 있는 아버지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대신 리어카를 몰며 고물상 일을 했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 술 냄새가 따라다녔다. 아버지는 낮에도, 밤에도 술을 마셨다.
술이 들어가면 목소리가 커지고, 욕설이 터졌다. 주먹이 날아들 때면, 집 안의 공기까지 흔들렸다.
엄마는 새벽부터 공장으로 나가 늦은 밤, 기운 빠진 얼굴로 돌아왔다. 그 얼굴에는 늘 피로와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맞이한 건 고요한 방과 싸늘한 공기뿐이었다.
저녁이면 문 앞에 앉아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가끔은 아빠가 먼저 들어왔다. 문이 열리면 술 냄새가 먼저 들어왔고, 그다음엔 고함소리와 깨지는 소리가 뒤따랐다. 그 시간만큼은 숨을 쉬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렇게 술 냄새와 두려움 속에서,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조용히 흘러갔다.
중학생이 된 나를 둘러싼 세상은 여전히 조용했다. 가난한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거는 친구는 없었다.
집에서는 아버지의 술주정이, 학교에서는 침묵이 일상이었다. 쉬는 시간엔 할 일이 없어 교과서를 펼쳤고,
집에 돌아오면 말 상대가 없어 책상 앞에 앉았다. 공부가 좋아서가 아니라, 나를 받아주는 유일한 곳이 거기뿐이었기 때문이다.
학교에는 세상이 달라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화장을 진하게 하고, 교복을 짧게 줄이고, 선생님에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아이들. 사람들은 그들을 ‘일진’이라 불렀다. 내 짝꿍, 경미도 그 무리 중 하나였다.
쉬는 시간마다 담배를 피우던 경미가 어느 날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 담배 있어?”
“없어. 나 담배 안 피워.”
“그럼 그렇지. 네가 있겠냐.”
그 한마디가 내겐 처음으로 건네진 말이었다.
그날 밤, 나는 아빠의 담배를 몰래 꺼내 입에 물었다. 기침이 터졌지만, 눈물이 났지만, 그건 ‘친구를 갖고 싶은 연습’이어서 참았다.
다음날, 나는 담배를 들고 학교에 갔다. 창고 뒤편,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경미가 나를 보며 비웃듯 웃었다.
“야, 너도 피냐?”
나는 어색한 미소로 대답했다.
“응. 좀 됐어.”
그렇게 나는 경미의 무리에 끼게 되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고, 누군가 내 옆을 스쳐갔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 어둡고 좁은 골목에서 “같이 놀자”라고 말해준 남자애들을 만났다. 그 말이 내게는 처음으로 건네진 다정함처럼 들렸다. 하지만 웃음은 금세 비명이 되었고, 손길은 힘으로 바뀌었다.
기억은 군데군데 끊겨 있다.
술 냄새, 웃음소리, 차가운 바닥,
그리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내 목소리.
나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눈물이 앞을 가렸고, 숨이 막혔다.
길 끝에 서 있는 십자가의 불빛이 바람에 흔들렸다. 나는 그 희미한 불빛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안은 조용했지만, 피아노의 여운이 아직 공기 속에 남아 있었다. 빈 교회 안을 감도는 그 잔향은, 오래된 울음처럼 들렸다. 나는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날 밤, 세상은 완전히 어두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때 들었던 그 음 하나가 내 안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울렸다. 세상 어디에도 나를 지켜줄 사람은 없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너무 아파서, 더 이상 울 수도 없었다.
며칠 뒤, 학교 복도에 소문이 퍼졌다.
누군가 내 이름을 속삭이며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경멸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경미가 다가와, 일부러 들리게 말했다.
“너… 남자애들한테 당했다며? 쪽팔려서 이제 학교 어떻게 다닐래?”
그 말이 내 귀에 닿는 순간, 주변의 모든 소리가 멀어졌다.
복도는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나는 그 속에서 완전히 고립돼 있었다.
그날 이후,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다시, 세상 속의 외톨이가 되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중학교의 기억을 통째로 버리고 싶었다.
외톨이로 지내던 지난 시간을 지우듯,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실업계 고등학교로 향했다.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소문은 내 발보다 빨랐다. 학교엔 이미 내 이야기가 퍼져 있었다.
누군가 웃을 때마다, 그 웃음이 나를 향한 것 같았다. 교실에 앉아 있는 것조차, 고문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면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술에 취해 있었고, 잔소리와 욕설이 시작되면 끝은 폭력이었다.
그 밤도 다르지 않았다. 탁자 위에 엎질러진 술 냄새가 퍼지고, 유리컵이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졌다.
그 조각들 사이로 피가 번졌다. 그 순간, 나는 다시는 그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도망쳤다. 처음엔 하룻밤만 버티려 했다. 하지만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가출팸’에 들어가게 됐다.
가출팸에 들어간 뒤, 나는 먹고살기 위해 뭐든 해야 했다. 돈이 필요하면 거짓말을 하고, 훔치거나 몸을 팔았다. 술로 하루를 버텼고, 욕설이 인사가 되었다.
밤마다 싸움이 일어났다. 누군가는 맞고, 누군가는 때렸다. 누군가는 도망쳤고, 누군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곳도 지옥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아버지의 주먹과 학교의 조롱 속에 있을 때보다 조금은 견딜 만했다.
맞아도 이유가 있었고, 적어도 아무도 나를 투명인간처럼 대하지는 않았다.
그곳의 우두머리는 재현이었다. 모두가 그를 무서워했지만, 동시에 그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
그는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 돈을 벌게 하고, 자신은 방 안에서 게임을 하거나 술을 마셨다.
처음엔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거리의 밤으로 나가 술에 취한 남자들을 상대하며 돈을 벌었다.
손에 쥔 몇 장의 지폐가 내 몫이었고, 나머지는 재현의 몫이었다.
그런 삶이 당연하다고 믿으며 하루를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재현이 내 앞에 와서 무심하게 말했다.
“넌 오늘 안 나가도 돼.”
그날 밤, 다른 아이들은 밖으로 나갔고 낡은 방엔 우리 둘만 남았다.
“춥지?”
그가 내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며 말했다. 그 순간, 오랜만에 누군가가 내 안부를 묻는다는 사실이
낯설게 따뜻했다. 그의 손길은 조심스러웠고, 나는 피하지 않았다.
그 밤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내 안의 얼어붙은 무언가가 조금 녹았던 건 분명했다.
다음 날 아침, 밖에서 돈을 벌고 돌아온 아이들이 투덜거렸다.
“왜 쟤만 빠져요?”
재현은 짧게 말했다.
“얜 내 여자야.”
그 말이 내 귓속에 오래 남았다.
‘내 여자’ — 그 단어가 이상하게 따뜻하게 들렸다.
누군가에게 속한다는 게, 그때는 사랑의 다른 이름인 줄 알았다.
열아홉 살, 나는 재현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결혼식도, 반지도, 축하도 없었다. 그저 “같이 살자”는 말 한마디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 말이 세상의 약속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세상은 또다시 나를 배신했다.
재현은 일하지 않았다. 돈이 떨어질 때마다 화를 냈고, 때로는 술에 취해 손찌검을 했다. 가끔은 다른 여자의 향수를 묻히고 돌아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거울 앞에 선 채 멍든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또다시... 남자에게 맞고 있네.”
아이를 가진 건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재현은 잠시 달라지는 듯했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술과 폭력, 거짓말은 다시 반복됐다. 나는 아이를 품은 채, 그 모든 걸 견뎠다.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잠들었지만, 나는 한숨을 멈출 수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어느 날 문득, 공기처럼 스며들었다. 스물두 살이 되던 봄, 나는 아이만 데리고 집을 나왔다. 이제 세상에 어떤 기대도 없었다. 낮에는 편의점, 밤에는 식당, 새벽엔 청소. 손톱이 닳고, 허리가 휘고, 손등이 갈라졌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다. 아이의 웃음 하나가 나를 다시 세우곤 했다. 그 웃음은, 세상 마지막 남은 빛 같았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미용사가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가위를 들고, 수백 번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그 단조로운 반복 속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일, 누구에게도 미안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누군가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예전엔 늘 누군가에게 사랑받아야 살아 있다고 느꼈고, 버림받으면 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 쉴 수는 있어도, 진짜 구원은 결국 자기 안에서 나온다는 걸.
퇴근길, 미용실 유리문을 닫으며 나 자신에게 조용히 인사한다.
“오늘도 잘 버텼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아이는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다.
사춘기라 말이 줄었지만, 그래도 매일 밤 “다녀왔어, 엄마” 하고 들어왔다.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지난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비바람 같던 세월이 이제는 잔잔한 바람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사랑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
이제는 ‘누군가의 품’이 아니라 ‘나의 하루’ 속에서 따뜻함을 찾을 줄 알게 되었으니까.
세상이 여전히 차갑더라도, 나는 오늘도 손끝으로 누군가의 머리를 다듬으며 조용히 내 삶을 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