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과 함께 대형 카페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창가 쪽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펴려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한 청년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내가 그의 자리를 먼저 차지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이내 청년이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생님~.”
그제야 알았다. 그는 내 제자였다. 얼굴이 낯설지 않았지만,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 이름이 어떻게 되지? 어디서 배웠지?”
나는 늘 그렇듯 조심스레 물었다. 여러 학원을 거쳤던 탓에, 얼굴보다 이름과 학원이 먼저 필요했다.
그는 예전 내가 근무하던 기숙학원 출신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 근처에 살았고, 대학에 합격한 뒤 나와 소곱창에 술 한잔도 했다고 했다. 희미하게, 그날의 웃음과 담배 연기가 겹쳐 떠올랐다.
그는 중고등학교 내내 공부를 손 놓고 살았다고 했다.
인수분해조차 제대로 몰랐고, 게임만 하던 시절이었다고.
결국 배재대학교에 정시로 진학했지만, 지방에서 자취하며 다시 게임 삼매경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게 뭐 하는 인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게임도 질렸고,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래서 스물셋에 다시 책을 잡았다.
기숙학원에 들어가 완전히 처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말했다.
“그땐 공부가 진짜 재밌었어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니까요. 시간이 아까워서 화장실에서도 문제를 풀었어요.”
인수분해에서 시작한 공부는 이과 모의고사 1등급까지 이어졌다. 모든 과목이 오르진 못했지만, 그는 결국 명지대 산업공학과에 합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의 인생은 비로소 시작됐다. 대학에 들어가 그는 코딩, 인공지능, 데이터 분석 등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대회에 나가 상도 받고, ‘한글과 컴퓨터’에 입사했다.
지금은 여의도의 한 투자회사에서 일하며, 기관 매매 데이터를 분석해 자동 거래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했다.
“제가 짠 프로그램을 보고 기관이 그대로 사고팔아요.”
그는 자부심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올해 서른, 여자친구와 함께 카페에 놀러 왔다고 했다. 헤어지기 전 그는 내 중2 아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차라리 게임을 질릴 만큼 하게 하세요. 그럼 스스로 길을 찾을 거예요. 저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렸어요.”
나는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공부의 본질은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어지는 순간’에 있다는 걸 그 제자는 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그런 제자들이 찾아와 인사를 건넬 때마다, 세월의 무게 속에서도 내 일이 헛되지 않았다는 위로를 받는다.
그날의 카페 공기가 조금 더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