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샤르 게임 이론
우리는 거대한 시뮬레이션 안에 있다. 그건 신이 만든 게임이다.
그리고 이 게임의 첫 번째 규칙은 ‘잊음’이다.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모든 걸 잊는다.
우리가 신이었음을, 무한한 존재였음을, 그리고 이미 완벽하다는 사실마저 잊는다.
그러나 그 망각은 오류가 아니다. 오히려 게임의 정교한 설계다.
완벽을 기억한 채로는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있어야 용기가 생기고, 결핍이 있어야 창조가 일어난다.
신은 우리에게 **‘모르는 척하는 법’**을 주었다.
그래야 새롭게 깨닫는 기쁨을 맛볼 수 있으니까.
바샤르는 말한다.
“너희는 진동을 낮추어 물리적 현실에 들어왔다. 왜냐하면 잊음 속에서 다시 기억하는 과정이 우주의 가장 큰 쾌락이기 때이다.”
그의 메시지는 마치 게임 내부의 버그 노트 같다.
우리가 너무 몰입해서 이 현실이 전부라고 착각할 때, 그는 화면 밖에서 말한다.
“그건 진짜가 아니야. 단지 네 진동이 투사된 영상일 뿐이야.”
그 말은, 게임의 구조를 드러내는 디버깅 신호음처럼 들린다.
그는 치트키를 주지 않는다. 다만 ‘조작법’을 상기시킬 뿐이다.
명상을 해도, 유튜브를 들어도, 다음날이면 또 잊는다. 다시 불안하고, 다시 흔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의 정상 작동이다.
이 게임은 기억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망각 속에서 다시 기억하는 루프로 설계되어 있다.
잊었다는 건 “다시 깨달을 기회가 왔다”는 신의 알림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흔들리고, 그때마다 문득 깨닫는다.
“아, 또 내가 현실의 스크린에 속았구나.”
그 한순간의 자각이 바로 레벨 업의 신호다.
깨달음은 번개처럼 오는 게 아니라, 잊음과 기억이 교차하는 파동의 반복 속에서 자란다.
바샤르는 그 루프의 구조를 알려주는 안내자일 뿐, 대신 게임을 깨주진 않는다.
우리가 직접 조이스틱을 잡고 진동을 조율하며 걸어가야 한다.
결국 깨달음은 완벽한 기억의 회복이 아니다.
망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 잊었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 너는 이미 깨어나고 있다.
신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게임을 이렇게 설계했다.
잊음은 실수이자, 동시에 문이다.
그 문을 다시 통과할 때마다 우리는 신이 남긴 웃음을 조금씩 닮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