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춘천 메디오폰도

수필 & 소설

내가 가입한 자전거 동호회 케바의 10월 정모가 춘천 그란폰도로 정해졌다.
올해 처음 열리는 행사였고, 회원들에겐 일종의 축제이자 실력 점검의 무대였다.

하지만 난 걱정이 많았다. 봄부터 여름까지, 강의와 학원 운영, 집안일에 치여 자전거를 거의 타지 못했다.
그 사이 배는 점점 앞으로 나왔고, 허벅지는 근육 대신 고무처럼 말랑해졌다.


“거리 80킬로, 획고 1200.”
공식 안내문에 적힌 수치를 보며 나는 한참 동안 모니터를 바라봤다. 작년 같으면 ‘가벼운 몸풀기’라고 웃으며 지나쳤을 거리였다.


홍천 그란폰도, 설악 메디오폰도—
그 험한 코스들을 완주하던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이젠 그 시절의 몸도, 마음도 아니었다. 살아온 세월이 다리를 무겁게 만들었고, 책임이라는 단어가 페달보다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이번 대회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 번은 다시, 예전처럼 달려보고 싶다.’
그 마음 하나로 참가 신청 버튼을 눌렀다.


대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연습 좀 해야지”라는 다짐은 번번이 무너졌다.

명절 행사다, 수업이다,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가 하루하루 쌓였다.
그렇게 일주일, 또 일주일이 흘렀다.
결국 내가 한 건 가볍게 40킬로, 획고 500 정도의 미지근한 연습 몇 번 뿐이었다.
타이어는 공기압이 빠져 있었고, 신발 클릿은 녹슬어 있었다.


회장님은 대회장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해줬다.
“편하게 쉬었다가 대회 출전합니다. 이번엔 MT도 겸하니까.”
그 말이 위로 같으면서도 부담스러웠다.


MT라니—
작년 설악 대회 때 친구들과 한 숙소에서 밤새 뒤척이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침이 되자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고, 그 피로가 결국 완주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이번엔 그러지 않으리라.
그래서 나는 대회장과 3킬로쯤 떨어진 조용한 숙소를 따로 잡았다.
'밤엔 같이 불멍만 하고, 잠은 혼자 잔다.'


토요일 오전, 요즘 공부 대신 핸드폰만 붙잡고 사는 사춘기 중2 아들을 차에 태웠다.
“아빠, 또 자전거야?”
“응. 이번엔 춘천이야. 강이 진짜 예뻐.”
“난 그냥 차에서 잘래.”
“너도 공기 좀 마셔. 밖에 나오면 기분 달라져.”
“공기는 집에도 있거든.”
그 대꾸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녀석이라도 데려가야 여행 기분이 날 테니.

춘천호.jpg


북한강을 따라 달리는 길, 창문을 열자 바람이 시원하게 스쳤다. 강 위로 은빛 물결이 일었고, 가끔씩 오리 떼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햇살은 부드럽고, 도로 옆 갈대밭은 금빛으로 흔들렸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숙소 간판이 보였다.
“도착했다. 여기가 우리 숙소야.”
“생각보다 괜찮네.”
아들이 짐을 들어주며 중얼거렸다.



짐을 풀고 나니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창을 스쳤다.
나는 커피 한 잔 생각이 나서 아들과 함께 북한강 선상 카페로 향했다. 카페의 나무 데크 위에 앉아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물빛이 햇살에 반사되어 눈이 시릴 정도로 반짝였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칼칼하면서도 음색이 높은 남자의 소리였다. 목청이 워낙 좋아 강가를 울릴 정도였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이건… 홍 선배 목소리다.’
반가운 마음에 심장이 쿵쾅 뛰었다. 강가의 평온한 공기 속에 그 목소리만이 유난히 살아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곳엔 이미 열 명 남짓한 케바 자린이 회원들이 자전거를 세워두고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수상카페 강.jpg
수상카페.jpg


자린이 회원들은 대회에는 참가하지 않지만 MT 장소까지 자전거를 타고 와, 고기 구워 먹고 놀다 갈 예정이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아들과 함께 간단히 점심 겸 저녁을 해결했다.


아들 국수.jpg
아들 맛집.jpg


햇빛이 서서히 붉게 물드는 북한강 위로, 내일의 대회를 향한 긴장감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숙소에서 게임이나 유튜브를 보며 놀겠다는 아들을 남겨두고, 나는 천천히 MT 장소로 향했다.
창문 밖으로는 초가을의 저녁빛이 길게 번지고 있었다.


북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젖은 흙냄새와 고기 굽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멀리서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그 소리만으로도 이미 그곳의 분위기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MT 장소는 내 상상보다 훨씬 근사했다.

강가 근처에 자리한 펜션 단지였는데, 넓은 마당 한가운데 커다란 불판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테이블마다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벌겋게 달아오른 숯이 ‘탁탁’ 소리를 내며 연기를 내뿜었다.
그 위에 얹힌 고기들이 ‘치익’ 소리를 내며 익어가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누군가 생맥주를 따르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고기 굽는 연기에 눈을 비비며 웃는 얼굴들이 있었다.


엠티 식사1.jpg
엠티 고기.jpg
엠티 식사.jpg

“영실이 형 오랜만입니다!”

"영실이 왔어?"
곳곳에서 반가운 인사 소리가 터졌다. 손에 집게를 든 후배가 내게 소리쳤다.
“형, 여기 앉아요. 오늘은 진짜 무제한이에요. 삼겹살, 목살, 닭갈비 다 있어요.”
그 말대로였다. 1인당 3만 원만 내면 고기와 채소, 밥, 생맥주가 무제한 제공된다고 했다.
저렴한 가격이 주는 단순한 행복, 그런 소박한 환희가 사람들의 얼굴에 번져 있었다.


고기가 익어가며 불빛이 점점 붉게 번졌다.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를 때마다 누군가의 웃음이 따라 올랐다.
나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그동안 얼굴 보지 못했던 회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일, 가족, 운동, 그리고 몸의 변화—


중년의 남자들이라면 어디서나 꺼내는, 조금은 자조적이고 조금은 따뜻한 이야기들.
누군가는 새로 산 자전거 얘기를 했고, 누군가는 “아내가 자전거 그만 타라” 해서 숨기고 탔다며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서로의 고단한 삶을 알아보는 묘한 공감이 깃들어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엔 캠프파이어처럼 커다란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길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일렁이며 사람들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일부는 고구마를 구워 먹었고, 다른 일부는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고 듣고 있었다.


맥주잔을 든 사람들이 불빛 주변을 천천히 돌며 이야기했다.
“이게 진짜 인생이지. 아무 생각 없이 고기 굽고, 불멍 하고.”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무 계산도, 경쟁도, 책임도 없이 그저 사람 냄새에 취해 있을 수 있는 밤이.


그러던 중, 문득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석대장이 있었다.
케바 대장 중의 대장, 누구도 그의 페달을 따라잡지 못하는 절대 실력자.
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선배들이 둘러앉아 고기를 굽고 있는데, 그는 가만히 앉아 그들이 구워주는 고기를 먹고 있었다.
누군가는 술을 따라주고, 누군가는 그의 접시에 고기를 올려줬다.
그런데 그게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마치 그 자리가 원래 그의 자리인 듯, 자연스러웠다.

“대장님, 더 드세요.”
“네, 잘 먹을게요.”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불빛 속에서도 카리스마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 대장은 다르다. 내일 이 무리를 이끌 사람이니까, 나이 많은 선배들이 고기를 굽는 동안
한 치의 죄책감도 없이 먹기만 하는구나.’
그러면서도 묘하게 부럽고, 그의 뻔뻔함에 조금은 우습고, 그래도 왠지 믿음직스러웠다.


대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중심처럼.


시간이 흘렀다. 맥주잔이 몇 번이나 비워졌고, 모닥불의 불길은 점점 잦아들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아들이 혼자 숙소에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 쓰였다.

아직 불빛이 남은 마당을 한 번 돌아본 뒤, 석대장의 웃음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으며 자리를 떴다.


불멍의 잔향이 남은 손끝이 따뜻했다. 나는 종이컵에 고기를 몇 점 담아 숙소로 돌아왔다.
밤공기가 차가워져 코끝이 시큰거렸지만, 마음은 묘하게 평온했다.

문을 열자 아들이 침대에 기대앉아 있었다.
“이제 와?”
“응. 배고플까 봐 고기 좀 싸왔어.”
종이컵을 건네자 아들은 냄새를 맡더니 눈이 커졌다.
“진짜 맛있다. 나도 갈걸.”
“그래, 내년엔 같이 가자. 그때는 네가 아빠보다 더 많이 굽는 거야.”
아들은 대답 대신 고기를 한 점 더 집어 입에 넣었다. 창밖을 보니 불빛이 바람에 흔들리며 하늘의 별빛과 섞여 깜빡였다. 그 평온한 밤, 나는 오랜만에 ‘사는 게 괜찮다’는 기분을 느꼈다.


드디어 준비의 시간이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밤 9시 50분.

내일의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비워야 했다. 억지로라도 화장실 문을 닫고 앉았다. 배 안의 공기를 밀어내듯 긴 한숨이 섞였다.
“이것까지 다 비워야 가벼워진다.”
몸의 한 구석을 비우며 마음의 무게도 함께 덜어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내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물줄기가 어깨를 타고 흐를 때, 근육 속에 숨어 있던 긴장이 천천히 녹아내렸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수면 안대를 챙겼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아들은 침대 옆에서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이제 자라.”
“아직 안 졸려.”
“그래도 내일 일찍 나가야 해.”
아들은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화면을 끄고 돌아누웠다.

나는 수면 안대를 쓴 채 한참을 뒤척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잔잔했다. 설악 대회 전날엔 긴장으로 한숨도 못 잤는데, 오늘은 묘하게 평온했다.
‘이 나이에 이런 대회를 또 준비하는 내가 조금은 대견하다.’
그 생각을 끝으로 깊은 잠에 빠졌다.


아침 6시.
눈을 뜨자 창밖으로 희미한 새벽빛이 스며들었다. 아들은 여전히 이불속에서 고요히 자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미리 사둔 편의점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달걀 하나, 스팸 한 조각, 김치 몇 줄.
단순하지만 왠지 든든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한번 화장실로 들어갔다.

몸을 완벽히 비워낸 뒤, 거울 앞에서 스트레칭을 했다.
팔, 어깨, 허벅지, 종아리—
근육이 느리게 깨어났다. 피가 순환하며 몸이 따뜻해졌다.
‘오늘은 완벽하다. 준비 끝.’


밖으로 나서니, 공기가 싸늘했다. 하늘은 옅은 분홍빛과 회색이 뒤섞인 새벽의 색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3킬로 떨어진 대회장으로 향했다.

도로 옆엔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의 그림자가 하나둘 나타났다. 헬멧, 져지, 페달, 그리고 들뜬 표정들.
도착하자 이미 케바 회원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각자의 자전거를 세워놓고, 누군가는 허리를 숙여 스트레칭을 하고, 누군가는 페달을 공회전시키며 리듬을 익혔다.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 바람이 져지 사이로 스며드는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짧은 웃음.
모든 게 묘하게 설레었다.

대회 출발.jpg

“오늘은 진짜 재밌게 탑시다.”
“완주만 하면 돼요.”
나는 가볍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조용히 심장이 뛰고 있었다.


메디오폰도 출전자들이 줄을 섰다. 수백 대의 자전거가 늘어서 있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기어 변속 소리, 카본 휠의 ‘틱틱’ 하는 리듬, 그 모든 소리가 아침 공기 속에 섞여 울렸다.
“출발 준비!”
행사 진행자의 목소리가 울리고, 곧 총성이 터졌다.
무리가 서서히 앞으로 밀려나갔다. 철제 체인의 진동이 발끝을 타고 전해졌다.
페달이 한 번, 두 번 돌아가며 몸과 기계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춘천 대회는 특유의 좁은 도로 때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많았다. 신호등에 걸리면 줄이 끊기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페달 위의 다리가 짧게 긴장을 풀었다가 다시 미세하게 떨며 준비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케바의 선두팩에 붙을 수 있었다. 앞쪽에서는 훈대장이 선두팩을 이끌었고, 뒤쪽에서는 석대장이 전체를 통제하듯 천천히 따라왔다. 케바의 전열이 딱 맞아떨어지는 모습은 작은 군대 같았다.

페달을 밟는 소리, 숨소리, 옆 라이더의 타이어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리듬처럼 이어졌다.


그 안에서 잠시 ‘현실’이란 단어를 잊었다. 세상엔 오직 이 도로, 이 바람, 이 호흡뿐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인간은 금세 유혹에 넘어간다. 이번에도 그랬다.

컨디션이 의외로 좋았다. 평지가 나오자 고속팩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뒤를 쫓았다.

“이번엔 괜찮을 거야.”
시속 38, 40, 42.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페달 위에서 무게가 사라지는 듯했다.그러나 10킬로쯤 지나자,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한 피로가 올라왔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허벅지가 단단하게 굳었다.
‘아… 또 그랬구나.’
머릿속에서 훈대장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초반에 그렇게 달리면 안 돼.'

그 사이 뒤에서 따라오던 케바의 선두팩이 조용히 나를 추월해갔다.
훈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갔다.
“천천히. 아직 멀었어.”
나는 손을 들어 답례했지만, 속으로는 한숨이 났다. 아직 코스의 1/10도 오지 않았는데 벌써 다리에서 열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고, 햇살은 도로 위에 길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번에도, 또 같은 실수를 했구나.’
그럼에도 페달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미 나는 달리고 있었으니까.


20킬로쯤 평지를 달리니, 드디어 첫 고개 배후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서 보면 완만한 곡선이었지만, 가까이 다가서자 그 길은 마치 한숨처럼 길게 이어져 있었다. 산비탈에는 이른 가을의 나뭇잎이 조금씩 색을 바꾸고 있었고, 그 사이로 바람이 휙휙 스쳤다. 바람은 시원했지만, 그 시원함은 이내 다리의 열기로 바뀌었다.


작년에 설악의 조침령을 올랐을 때는 경사도 10%의 언덕도 웃으며 넘었다. 그때는 근육이 단단했고, 몸 안의 엔진이 언제나 뜨겁게 작동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몇 달간의 무운동, 그 사이 늘어난 체중, 가벼워야 할 몸이 자전거 위에서 납덩이처럼 눌러앉아 있었다. 기어를 최대한 풀고, 허리를 낮추고, 호흡을 천천히 길게 내쉬었다.


‘다리를 쓰지 마. 무릎으로 밀어내지 말고, 케이던스로 가볍게.’
머릿속에서 석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미 허벅지 앞쪽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헬멧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영실아!”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석대장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초반엔 천천히 가야 돼. 후반 2/3 지점까지는 체력을 남겨둬야지. 왜 또 러쉬했어?”
그는 웃으며 나를 앞질렀다. 그 웃음엔 꾸짖음보다 따뜻한 여유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웃음을 보는 순간 오기가 치밀었다.
‘또 나만 낙오인가?’

페달에 힘을 더 줬다. 숨이 거칠어지고, 폐가 작게 울리는 듯했다. 곧 총무와 회장님까지 나를 지나쳤다.
“먼저 갈게, 천천히 와!”
그 말은 친절했지만, 그 친절 속에 남겨지는 사람의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평지에서 시속 40으로 달리며 쌓았던 거리, 그 모든 게 배후령의 언덕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고개를 올려보니, 도로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나는 그 하늘을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페달을 밟는 리듬은 느려지고, 몸의 중심이 점점 아래로 꺼지는 느낌이었다. 허벅지 안쪽이 타는 듯했고,
손가락엔 땀이 차서 브레이크 레버가 미끄러졌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힘드냐.’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페달을 멈출 수는 없었다.


언덕을 오르다 보면 이상하게 생각이 많아진다. 숨은 가쁘고, 심장은 뛰는데, 머릿속은 오히려 차분해진다.

‘여기서 멈출 수 없다. 멈추면 내려간다. 내려가면 다시 오를 수 없다.’
이 단순한 진실이 삶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람은 언제나 이런 오르막을 오른다.

힘들어도 멈출 수 없다. 내가 멈추면 누군가 굶는다.

페달을 멈추면 가족이 멈춘다. 나는 나를 위한다기보다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달리고 있었다.
‘이건 단지 자전거 대회가 아니야. 이건 내 인생이야.’

중간쯤 올라섰을 때 몇몇 참가자들이 자전거에서 내려 숨을 헐떡이며 끌바를 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무릎을 붙잡고, 어떤 이는 핸들에 얼굴을 묻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질 수 없어. 느려도, 끝까지 간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기어는 이미 끝까지 풀려 있었지만 페달은 여전히 무거웠다. 배후령을 오르는데 대략 40분은 걸린 것 같았다. 시간의 감각이 사라지고, 머릿속에는 오직 ‘다음 회전, 또 한 번의 회전’뿐이었다. 그때의 고통은 이상하게도 고요했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내 몸과 싸우며, 내 마음과 화해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런 대회에 참가하는 이유는, 아마 이 감각 때문일 것이다.

끝없이 밀려오는 피로와 함께 ‘그래도 나는 버텼다’는 확신이 생긴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강렬한 빛이 번쩍인다. 도파민, 노력으로 얻은 가장 건강한 쾌감.


그 강도는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던 순간이나, 첫 월급을 손에 쥐던 날, 혹은 로또에 당첨됐다고 착각하던 짧은 환상과 비슷하다. 다만 그것보다 훨씬 순수하다. 피와 땀으로 만들어낸 쾌감이니까.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비싼 장비를 사고, 시간을 쪼개고,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른다.
결국 모두가 같은 이유로 달린다. 살아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바로 그때였다. 내 앞을 가로지르며 긴 머리카락이 바람을 가르듯 휘날렸다. 순간 시야가 흔들렸다. 한 줄기 햇빛이 그녀의 져지 위로 반사되며 눈을 찔렀다. 그녀는 가냘픔 몸으로 가볍게 페달을 밟았다. 허리는 부드럽게 흔들렸고, 그 뒤로 남자의 손이 따라붙었다. 탄탄한 팔뚝, 장갑 낀 손. 그 손이 여자의 등을 살짝 밀었다.

‘밀바네.’

나는 본능적으로 중얼거렸다.


그건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 사이에서 은밀히 통용되는 단어, ‘밀바'.
한 손으로 등을 밀어 언덕을 오르게 도와주는 행위, 그러나 그 특권은 대부분 여성의 몫이었다. 남성들 사이에선 그런 도움을 받는 순간 곧바로 놀림감이 된다.

“야, 밀바 받았냐?”
그 한마디면 그날은 끝이다. 그걸 알기에, 누구도 남자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나는 페달을 밟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가 나 같은 남자에게 밀바를 해주겠어.’
이 똥배와 허벅지, 그리고 헬멧 안에서 흐르는 땀냄새까지. 아마도 아무도.

만약 석대장에게 부탁을 했다면 답은 뻔했다.
“그냥 천천히 와. 정상에서 기다릴게. 무슨 밀바야, 스스로 해야지.”
그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귀에 그대로 재생됐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는 약간의 비웃음과 ‘남자는 스스로 해야 한다’는 무언의 규칙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밀바를 받는 그 여자는 정말 편안해 보였다.

힘들이지 않고 언덕을 오르며 남자의 손길에 리듬을 맞추는 모습이 묘하게 부러웠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한 상상을 했다. 만약 내가 그 여자가 된다면 어떨까?


30대 초반, 머리카락은 바람결 따라 부드럽게 흩날리고, 키는 168cm, 적당히 긴 다리와 잘록한 허리. 그 위에 흰색 져지를 입고 바람을 맞으며 업힐을 오르는 나.
샴푸 냄새와 향수가 섞인 내 냄새가 공기 중에 희미하게 번진다. 남자들은 이미 나를 중심으로 팩을 이뤘다.

속도는 느려졌지만 분위기는 묘하게 달아올랐다.
누군가가 속삭인다.
“제가 밀바 해줄게요.”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웃는다.
“괜찮아요. 조금만 더 혼자 해볼게요.”

가장 젊고 잘생긴 남자가 뒤에서 살짝 손을 뻗는다. 그의 손바닥이 내 등을 스친다. 순간 온몸에 전류가 흐른다. 페달이 가벼워지고, 산등성이가 더 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정상까지 나란히 오른다. 보급소에 도착해 헬멧을 벗는다. 그는 나의 미모에 놀란 듯 나를 바라본다.

숨이 찬 얼굴, 이마에 맺힌 땀, 햇빛에 반사되는 내 눈빛. 그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혹시… 번호 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대회 끝나고 제가 커피 한 잔 사드릴게요.”

그리고 상상은 계속 이어졌다.
그가 내 앞에서 바람막이를 해주고, 때로는 밀바를 해주며 언덕을 함께 오른다. 대회가 끝난 뒤, 춘천호가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서 우리는 커피를 마신다.
잔잔한 물결, 부드러운 음악, 그리고 눈빛 속에 흐르는 긴장감.
그 뒤엔 고급 호텔, 샤워기 아래 떨어지는 물줄기, 서로의 어깨에 묻은 땀냄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야, 이 미친 상상.”
페달을 밟는 다리가 다시 무거워졌다. 그러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 짧은 상상 속에서 나는 잠시

고통을 잊고 있었다.


어느덧 정상에 닿았다. 그제야 현실로 돌아왔다. 숨이 차오르고, 다리는 화끈거렸다.
멀리 보급소 깃발이 펄럭였다.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 페달을 밟으며 생각했다.

‘하기사, 내가 여자로 태어나도 그런 날씬한 몸매의 여자가 아니면 아무도 밀바를 해주지 않겠지.’
그리고 그런 몸매를 유지하려면 얼마나 많은 절제와 노력이 필요할까?
그걸 생각하니 문득 지금의 내가 조금은 사랑스러웠다.
‘몸매 가꾸려 그렇게 노력할 바에, 차라리 이 똥배가 좋다.’

페달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작게 웃었다. 배후령의 바람이 땀 젖은 져지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 바람이 내 등을 살짝 밀었다. 결국 나에게도 바람의 밀바는 있었다.


보급소에는 이미 케바 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오뎅을 먹고 있었고, 누군가는 바나나와 젤을 손에 쥔 채 사진을 찍고 있었다.

땀에 젖은 져지, 흐트러진 머리, 붉게 달아오른 얼굴들.
그 얼굴들이 묘하게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간단히 음료수를 마시고, 에너지 젤을 삼키며 말했다.

“형, 먼저 내려갈게요.”
대기 중이던 석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심히 내려가.”

자전거 위에 몸을 올리는 순간, 온몸이 다시 긴장으로 가득 찼다.


바람이 귓가를 파고들었고, 페달을 밟지 않아도 속도가 붙었다. 다운힐은 나의 무대다. 몸무게도, 자전거 무게도, 모두 가속의 조건이었다. 중력의 손이 나를 끌어내렸다.

시속 60, 65, 70—
바람이 칼날처럼 뺨을 스쳤다. 눈물이 고이고, 이마에 맺힌 땀이 바람에 증발했다.
몸이 공기와 섞이는 느낌.

그 순간만큼은 인간이 아니라, 단순한 ‘속도’ 그 자체가 된 것 같았다.

도로 폭은 좁았고, 커브는 잦았다. 양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산 그림자가 눈앞을 휘몰아쳤다.
양 손으로 브레이크를 조절하며 조심스럽게 균형을 잡았다.


추월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틈이 보일 때마다 몸을 기울였다.
한 명, 두 명, 세 명—
속도와 각도를 맞추며 사람들을 제쳤다. 어느새 50명 가까이를 앞질렀다.

다운힐.jpg


“이 맛이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도심의 하루, 학원, 가정, 피로…
그 모든 게 바람 뒤로 밀려났다.
지금은 오직 이 길뿐.
온몸이 자유였다.


하지만 그 자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평지가 시작되자, 다리 근육이 다시 무거워졌다. 10킬로 남짓한 평지 구간, 아스팔트 위에서 타이어 소리가 일정한 리듬을 만들었다.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차분해졌다.


그리고 마지막 고개, 고탄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서 보면 낮은 언덕처럼 보였지만, 막상 들어서자 도로는 급격히 기울었다.


최대 경사 14도.
페달이 순간 멈추는 듯했다. 허벅지 안쪽이 뻣뻣하게 굳기 시작했다. 안장통은 이미 최고조에 달했고, 엉덩이와 허벅지를 연결하는 근육이 불에 덴 듯 아팠다. 숨을 고르며 페달을 천천히 밟았다.

'이 정도야 뭐.'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건 곧 현실의 조롱이 되었다. 경사가 조금 더 가팔라지는 순간, 허벅지 뒤쪽 근육이 딱, 하고 경직됐다.
쥐였다.

“아…!”
소리가 저절로 터졌다. 발끝이 저리고, 페달이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전거를 타며 쥐가 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몸이 배신한 느낌이었다.

할 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려 한쪽 다리를 펴고 천천히 두드렸다.


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주었다.
‘괜찮아. 천천히,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다리를 풀었다.


다운힐에서 이런 경련이 왔다면 정말 위험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이라서 다행이었다.

다리를 겨우 추스르고 끌바를 시작했다. 자전거를 옆에 두고 천천히 걸었다.
클릿 신발이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 가끔씩 지나가는 라이더의 숨소리.
그 모든 게 묘하게 평화롭게 들렸다.
‘이것도 괜찮다. 걷는 것도 내 레이스의 일부니까. 지금 최대한 근전환을 해서 몸을 이완시켜야 겠다.’


정상에 도착하자 보급소의 사람들은 여전히 활기찼다. 누군가는 환호했고, 누군가는 바닥에 드러누워 쉬고 있었다. 나는 주는 대로 음식을 입에 밀어넣었다.
바나나, 초코바, 에너지젤, 물.
입안이 달고, 짜고, 시큼했다.
몸이 다시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이제 마지막이야.'
스스로에게 말하며 헬멧을 고쳐 썼다. 그리고 다시 자전거 위에 올랐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집중을 위해 상의를 벗었다. 피부로 닿는 공기의 냉기가 정신을 맑게 해줬다.
산 아래로 이어진 길은 마치 검은 리본처럼 굽이쳤다.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전거는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차가운 바람이 팔을 때렸고, 살결이 얼얼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통증이 좋았다. 피부의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있다”고 외치는 듯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완벽하게 깨어 있었다.

다운힐은 단순한 속도가 아니었다. 그건 살아 있음의 증명, 고통 뒤에 찾아오는 자유의 감각이었다.


마지막 평지 구간은 지옥이었다.
업힐의 고통은 단순했다. 페달을 밟으면 오르고, 멈추면 뒤로 밀렸다.

하지만 평지는 달랐다. 속도를 맞춰야 했다. 누군가의 리듬에 내 몸을 조율해야 했고, 그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더 피곤했다.


처음엔 고속팩에 붙었다.
시속 38, 40, 42.
바람이 귀를 찢고 지나갔다.
“지금 페이스 좋다!”
누군가 외쳤지만, 속으로 ‘나만 죽겠다’ 중얼거렸다. 허벅지 근육이 타는 냄새가 나는 듯했고, 호흡은 금속처럼 거칠었다. 결국 따라가다 떨어졌다. 팩은 바람에 휩쓸려 저 멀리 사라졌다.


잠시 혼자 달렸다. 바람이 정면으로 몸을 밀었다. 바람마저 적으로 느껴졌다.
“혼자 달리는 게 이렇게 힘들었나.”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속팩이 뒤에서 다가왔다. 그들의 속도는 느렸지만 안정적이었다. 뒤에 붙었다.

한동안은 좋았다. 그러나 답답했다. 속도가 너무 느렸다. 내 심장이 이 리듬을 견디지 못했다.
결국 선두로 나서 페달을 밟았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또 힘이 빠졌다.
뒤를 보니, 내가 버려진 그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붙어 있었다. 그들은 내 그림자를 밟으며 따라왔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고속팩에 붙을 때는 나도 누군가에게 ‘모기’였다는 것을.
힘든데도 모른 척 붙어서, 로테이션 한 번 안 하고 그냥 뒤에서 바람막이로 피를 빨아왔다는 걸.
하지만 막상 내가 선두가 되어보니 그 모기들이 정말 미웠다.
'야, 한 명쯤은 앞으로 좀 나서봐라.'
속으로 욕을 했다. 속도를 줄이면 그들은 같이 줄였고, 내가 멈출 것처럼 보이면 그제야 재빨리 앞으로 튀어나가 다른 희생양에게 달라붙었다. 그들의 생존 방식은 너무나 단순하고, 잔인했다.


몇 번의 흘림과 붙임을 반복하던 중, 드디어 나에게 딱 맞는 팩을 찾았다.
속도는 시속 28에서 32. 적당히 빠르고, 숨을 고를 틈이 있었다. 리듬이 몸에 맞았다.
‘이거다.’
그 생각이 들자 마음이 놓였다.


팩의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한 연령대였다. 누군가는 배가 나왔고, 누군가는 무릅 보호대를 두껍게 찼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침묵이 편안했다. 한 줄로 이어진 열 명 남짓의 행렬이 햇살 아래를 지나며 길게 그림자를 늘였다. 우린 각자의 리듬으로 페달을 돌렸다. 누구도 빨리 가지 않았고, 누구도 뒤처지지 않았다. 그건 마치 인생의 리듬 같았다.
조금 느려도 좋으니, 끝까지 함께 가면 된다는.


결승점을 20킬로 남겨두고 나는 포켓에서 에너지젤을 꺼냈다. 젤을 한입에 짜 넣으며 생각했다.

‘이걸로 체력을 아껴뒀다가, 마지막 10킬로에서 스퍼트를 하면 된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때. 젤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다 기도에 들어갔다.

“컥! 컥!”
순간 숨이 막혔다. 가슴이 조여오고, 눈앞이 하얘졌다.
“젠장…”
자전거를 세우며 기침을 연속으로 했다. 몸이 두 번 세 번 접혔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눈물이 저절로 났다. 바람이 식은 땀과 함께 기침 소리를 멀리 날려보냈다.

한참 뒤에야 숨이 돌아왔다.
고개를 들었을 때, 내가 함께 달리던 팩은 이미 저 멀리 점으로 변해 있었다.
‘아… 또 혼자네.’

남은 20킬로는 그야말로 고독의 반복이었다. 고속팩을 따라가다 흐르고, 저속팩을 붙었다가 답답해져 앞질렀다. 결국 다시 떨어졌다. 바람은 여전히 정면에서 불었다. 햇살은 따뜻했지만, 그 온기가 나를 위로하진 못했다. 그저 끈질기게 페달만 밟았다.


마지막 3킬로.
‘이제 끝이다.’
다리는 이미 감각이 없었다. 페달이 돌고 있는 건 의지인지, 습관인지, 이젠 구분할 수도 없었다.

드디어 결승선을 통과했다. 어떤 환호도, 박수도, 심지어 케바 회원들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웃음이 났다.
‘그래, 오늘도 완주했다.’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인생도 결국 이런 거 아닐까. 누군가는 너무 빨라서 앞서가고, 누군가는 너무 느려서 뒤처진다.
하지만 언젠가, 자기에게 꼭 맞는 속도의 팩을 만나면 그때 비로소 즐길 수 있는 거다.


그리고 그 팩이 떠나면?
또 혼자 달리면 된다.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메달만 재빨리 받아 들었다. 작은 은색 원반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 차가운 메달을 쥐자 묘하게 허무했다.

이토록 힘든 싸움의 끝이, 이 얇은 쇳조각이라니.

그러나 그 순간에도 어딘가 따뜻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래도 해냈다. 오늘도 완주했다.’


완주 메달.jpg


곧 시계를 보았다.
11시 40분.
숙소 체크아웃은 12시였다.
'큰일 났네.'
몸이 지쳐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들이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황급히 대회장을 빠져나왔다.


도로 위의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뜨거운 경쟁의 냄새가 났는데, 이제는 한낮의 햇살과 식은 바람이 뒤섞인 평화가 흘렀다. 나는 페달을 밟았다.
숙소까지 3킬로.
단 3킬로뿐인데, 이게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질까?


몸의 긴장이 풀리자 다리 뒤쪽에서 통증이 시작됐다.
“안 돼…”
왼쪽 종아리가 먼저 굳더니, 곧 오른쪽 허벅지까지 이어졌다.
쥐였다.
그동안 버텨온 근육이 더는 버티지 못한 것이다.
자전거를 멈추고, 도로 옆에 발을 내디뎠다. 살짝 구부린 무릎을 펴며 숨을 골랐다.
차가운 바람이 식은 땀을 스쳐갔다. 잠시 통증이 가라앉자 다시 올라탔다.

그렇게 멈추고, 타고, 또 멈추며 숙소로 향했다.


12시.
숙소가 보였다. 그제야 한숨이 터졌다. 주차장에는 아들이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창문을 반쯤 열고, 이어폰을 낀 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민준아~."

아들이 고개를 들었다.
“왔어? 늦는 것 같아서 숙소에서 나왔어.”

“잘했어. 아빤 거의 죽을 뻔했어.”
아들은 무표정하게 웃었다. 트렁크엔 이미 짐이 정리돼 있었다.

괜히 미안하고, 고마웠다.


우리는 바로 차를 몰아 나왔다. 춘천 시내로 향하며 아들이 말했다.
“아빠, 고기 먹자.”
우린 근처 스테이크 집으로 향했다.


식당 안은 따뜻했다. 고기의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을 하고 물을 들이켰다.
그러나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두 다리가 동시에 경련을 일으켰다.
“악!”
의자에 등을 붙인 채 고통에 몸을 비틀었다. 그 순간 아들이 보던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아무 말도 없이 내 두 다리를 잡고 자신 쪽으로 당기더니 내 다리를 반대편 의자 위에 올려줬다.

아들은 손으로 내 허벅지를 주무르며 말했다.
“가만히 있어봐.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그 목소리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웃었다.
“고마워. 네가 아빠보다 낫다.”
아들은 피식 웃었다. 어느새 아들은 어른이 되어 있었댜. 사춘기의 반항도, 공부를 안 하는 것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일부였던 것이다.


아들 고기.jpg
아들 레스토랑.jpg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햇살이 포근하게 내리쬐었다. 나는 주차장 한켠에서 한참을 스트레칭했다.
다리는 여전히 뻣뻣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아들은 옆에서 나를 보며 하품을 하더니 차에 올라탔다.


나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맑은 하늘, 멀리 흐르는 구름, 그리고 그 아래 춘천의 산들.
오늘의 모든 고통이 이 풍경 속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이번 춘천 메디오폰도는 내게 많은 걸 가르쳐줬다. 준비 없이 대회를 나가면 어떻게 되는지를 몸으로 확실히 배웠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 내 몸의 한계를 극복하고 근육의 고통을 이겨가면서 완주를 했기 때문에 더욱 큰 성공과 성취를 안겨줬다.

그리고 모든게 완벽했다.

좋은 사람들과, 뻥 뚤린 도로에서의 라이딩, 그리고 아들과의 맛집 여행.

특히 전날 밤의 불멍.
불빛이 어둠 속에서 타오르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불꽃이 사그라질 때마다, 내 속의 불안도 함께 태워보냈다.


'다음엔 좀 더 준비해서, 조금 덜 힘들게, 조금 더 즐겁게 달려야지.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석대장을 이기는 날이 올 수도 있을거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 : 가을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