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길 위에서 창조하는 남자

나의 버킷리스트

학원을 정리한 날, 나는 열쇠를 내려놓고 잠시 교실을 바라봤다. 칠판 위엔 아직 미처 지우지 못한 수식들이 남아 있었다. 스무 해 넘게 이곳에서 가르쳤지만, 이제 나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노트북 하나, 카메라 하나, 그리고 대형 전기차 한 대.

그 차는 내게 단순한 차량이 아니었다. 그건 나의 이동식 서재이자 스튜디오, 그리고 이제는 집이자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였다.



첫 여행지는 동해였다.

새벽 다섯 시, 바닷가에 차를 세워두고 차창 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봤다. 붉은빛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그 빛 아래에서 나는 카메라를 켰다.


“안녕하세요, 길 위의 창조남입니다.”


유튜브 라이브를 켜고 바닷가를 배경으로 구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삶의 이야기도, 공부의 이야기도, 그냥 지금 이 순간의 고요함도 나눴다.

그날의 바다와 내 목소리가 하나로 섞였다.


방송이 끝난 뒤, 노트북을 열고 소설을 썼다. 파도소리와 커피 향이 배경이 된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단어 하나하나가 자유의 냄새를 품고 있었다.



그날 오후엔 자전거를 꺼냈다. 대형 전기차 뒤편에 설치한 거치대에서 로드 자전거를 내렸다.
바닷길을 따라 달리며 몸 안의 공기가 완전히 바뀌는 걸 느꼈다. 페달을 밟을수록 생각이 정리되고, 속도가 빨라질수록 마음이 고요해졌다.


해질 무렵 돌아와 근처 횟집에서 매운탕과 소주 한잔.
노을이 바다 위에서 천천히 사라졌다. 그 시간, 아무 말 없이 바람과 냄새만으로도 충분했다.



며칠 뒤에는 배를 타고 제주로 향했다.
차를 선적하고, 갑판 위에서 바다를 바라봤다.


그 길 위에서도 수업은 이어졌다.

배 안의 휴대폰의 인터넷과 연결된 노트북 화면 속 아이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제주에 도착해서는 한라산을 올랐다.
새벽의 안갯속에서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올랐을 때, 세상이 정말 넓다는 걸 다시 느꼈다.

하산 후엔 찜질방에서 샤워를 하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주차장 한켠에서 다시 전기차에 전원을 연결했다. 그 안은 여전히 따뜻했고,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공간이었다.



지금 나는 전국을 돌며 살고 있다. 어디서든 수업을 하고, 어디서든 영상을 찍고, 어디서든 글을 쓴다.

대형 전기차 안에는 교실이 있고, 서재가 있고, 카메라가 있고, 침대가 있다.
그건 나의 모든 삶이자 작업실이다.


학생들은 여전히 묻는다.

“선생님, 오늘은 어디세요?”

나는 미소 짓는다.

“오늘은 제주야. 내일은 아마 설악일 거야.”


돈은 여전히 들어온다. 그런데 이젠 그 돈이 ‘목표’가 아니라, 설렘을 지속하기 위한 연료일 뿐이다.


나는 이제 길 위에서 살고, 가르치고, 쓰고, 그리고 존재한다.

대형 전기차는 나의 움직이는 우주, 그리고 내가 만든 새로운 삶의 학교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로드 자전거에 중독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