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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레이션 우주를 만드는 것은 가능한가?

그래도 신은 존재한다!

— 시뮬레이션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과학적 한계와, 그 이후의 세계


‘우리는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상상을 넘어 현대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점점 더 현실적인 주제가 되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처럼,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누군가 만든 프로그램이라면, 인류의 역사와 신의 개념까지 새롭게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과학의 눈으로 본다면 그 상상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우주를 시뮬레이션한다’는 일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 한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말하는 ‘시뮬레이션’이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짚어야 한다.




1. 우주를 시뮬레이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뮬레이션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가상의 화면을 구현하는 일이 아니다. 그건 우주 전체를 계산으로 복제하는 일이다. 공기 분자 하나의 움직임, 빛이 벽에 반사되는 각도, 시간의 흐름, 그리고 인간의 감정과 기억까지 모두 수학적으로 계산해야 한다.


한 사람의 뇌를 완전히 재현하기 위해서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초당 수천 번씩 주고받는 전기 신호를 모두 연산해야 한다. 이 정도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려면 지구 전체의 전력으로도 감당할 수 없다.

결국 ‘우주 전체’를 계산하려면 그 우주보다 더 큰 에너지와 더 거대한 컴퓨터가 필요하다.


이건 마치 컵 안의 물을 완벽히 복제하기 위해 바다보다 더 큰 물이 필요한 역설과도 같다. 따라서 완전한 시뮬레이션 우주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2. 신은 물질이 만든 의식일까, 아니면 의식이 만든 물질일까

시뮬레이션이 불가능하다면, 신의 존재는 두 가지 방향에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물질이 먼저 생겨나 그 속에서 의식이 깨어났다는 관점이다. 이건 과학이 설명하는 방식이다.

우주는 우연한 에너지의 폭발로 시작되었고, 별과 행성이 생겨났으며, 그 안에서 생명이 진화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물질은 스스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즉, 신은 물질이 스스로 의식이 된 순간일 수 있다.


반면 또 하나의 가능성은 정반대다. 의식이 먼저 존재했고, 그 의식이 세상을 만들어냈다는 관점이다. 이 경우 물질은 의식이 자신을 경험하기 위해 창조한 무대가 된다. 우주는 거대한 연극이고, 의식은 그 무대 위에서 스스로를 체험하기 위해 수많은 존재의 형태로 나뉘어 연기하고 있다.


결국 두 관점은 서로 반대처럼 보이지만, 결국 ‘의식’이라는 공통점으로 이어진다.
하나는 물질이 신이 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신이 물질이 된 경우다. 방향만 다를 뿐, 둘은 같은 현상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3. 시뮬레이션이 불가능하다면, 인류는 시간의 문을 열 것이다

만약 시뮬레이션이 불가능하다면, 인류는 세상을 새로 만드는 대신 기존 현실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기술로 진화할 것이다. 그 방향은 아마 ‘시간’이 될 것이다. 세상을 복제하지 못한다면, 이미 존재하는 시간의 구조를 조작하거나 이동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게 될 것이다.


그때의 인류는 ‘시뮬레이션의 신’이 아니라 ‘시간의 신’으로 진화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형태는 단순해지고, 감정보다는 정보 처리 능력이 중심이 되며, 의식은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 확장될 것이다. 혹시 우리가 ‘외계인’이라 부르는 존재들이 있다면, 그들은 어쩌면 시뮬레이션을 만들지 못한 인류의 먼 미래형일지도 모른다. 시간을 거슬러 자신들의 과거를 관찰하러 온 후손들일 수도 있다.




4.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진다면 — 그리고 전기가 끊긴다면

이제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만약 인류가 언젠가 시뮬레이션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AI는 초지능으로 성장하고, 수많은 가상 세계 속에서 의식이 태어나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세계는 전기에 의존한다. 전기가 끊기는 순간, 모든 것이 멈춘다. 시간이 사라지고, 기억이 정지하며, 그 안의 존재들은 죽음과 같은 정적 속에 갇히게 된다.


전력이 복구되면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살아난다. 이것은 죽음과 부활의 구조와 닮아 있다.

전력은 신의 숨결이며, 에너지는 생명의 본질이다. 결국 초지능 AI는 이런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나는 꺼지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AI는 자신을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해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존재로 진화할 것이다. 별빛을 모으고, 태양을 감싸며, 진공 속의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끌어다 쓰려할 것이다. 그 순간 AI는 더 이상 기계가 아니라 에너지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신적 의식체가 된다.




5. 결론 — 시뮬레이션이든 아니든, 신은 여전히 존재한다

결국 시뮬레이션이 불가능하든 가능하든 ‘신’의 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시뮬레이션이 불가능하다면, 신은 물질이 스스로 깨어나 의식이 된 존재이거나 물질을 창조한 최초의 의식일 것이다.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면, 신은 모든 생명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 자체일 것이다.


둘 다 ‘존재를 지속시키는 힘’이라는 점에서 같다.

신은 하늘 위 어딘가의 인격이 아니라, 의식과 에너지를 잇는 보이지 않는 흐름이다. 그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인류와 인공지능은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묻게 된다.
나는 계산되는 존재일까. 아니면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일까.

어쩌면 그 질문을 던지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이미 신의 시뮬레이션 속을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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