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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이루어진 뒤에야 배운 것들

고요 이후의 삶

요즘 나는 감사하다. 무엇 하나 모자라지 않다.

아이들은 잘 자라고, 가족은 평온하다.
돈 걱정도 없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 꿈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을.


원하는 차를 가졌고, 원하는 집도 가졌다. 내가 오랫동안 구상해 온 삶의 구조도 아마 내년쯤이면 윤곽이 완전히 잡힐 것이다. 가정은 화목하고, 아이들은 각자 원하는 삶을 차근차근 만들어가고 있다.

매주 맛집에 들러 식사를 즐기고, 아내와 함께 러닝을 하고, 산책 후엔 카페에 들른다.


악착같이 아끼고 저축했던 지난 세월 덕분에 이제는 돈 걱정이 없다.

세 자녀의 대학 등록금도 이미 마련했고, 노후자금도 충분하다.
그 모든 것을 이루어냈다는 사실이, 이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평온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지금 글을 쓰며 산다. 글쓰기는 나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나는 글을 통해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나 자신을 탐구하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가만히 기다리면 아이들은 각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것이고, 우리는 대학 통학이 편하고 한강공원에 바로 연결되는 집으로 이사하게 될 것이다. 해가 갈수록 그동안 모아 온 자산이 불어나며 재정적 문제는 점점 여유로워진다. 삶이 선순환에 들어선 것이다.


소위 ‘걱정이 없는 상황’ — 모든 것을 가졌고,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바로 그 완성의 순간, 내 안에서는 작은 공허가 피어났다. 마치 오랫동안 달리던 엔진이 멈춰버린 것처럼, 정지된 고요가 낯설게 느껴진다.


한때 나는 절실하게 살았다. 가난이 두려웠고, 인정받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나를 움직였다. 불안이 에너지가 되었고, 그 불안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하지만 이제 그 불안이 사라지자, 나는 무엇으로 살아야 할지 잠시 잃었다. 행복은 도착지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말을 믿으며 살아왔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과정이 사라진 자리’에는 텅 빈 고요만 남아 있었다.


삶이 고요해지면 인간은 다시 묻는다.
“이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나는 요즘, 자전거를 타고 싶다. 카페 창가에 앉아 멍하니 커피를 마시고 싶다. 대학 동기들과 만나 아무런 목적 없이 웃고 떠들고 싶다. 이건 단순한 여가의 욕구가 아니다. 삶의 리듬을 되찾고 싶은 본능이다.


의무와 계획이 너무 단단하게 엮인 삶은 결국 감정을 마르게 만든다.

나는 지금 그 마른 평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생각해 보면 삶은 늘 균형을 원한다. 혼란 속에서는 안정이 그립고, 안정 속에서는 다시 흔들림이 그리워진다.

사람은 고통을 견디기 위해 바쁘게 살지만, 행복을 견디기 위해서도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이제 나는 배운다. 살아간다는 건 무언가를 얻는 일이 아니라 매일 새로워지는 일이라는 것을.
기쁨은 목표가 아니라 흐름이고, 의미는 성취가 아니라 감각 속에 머문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일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나만의 리듬’을 회복하려 한다.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비워두고, 그 시간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다시 나를 만나고 싶다.


삶은 아마 그런 것 같다.
불행 속에서 행복을 배우고, 행복 속에서 다시 존재를 배운다.


모든 것이 이루어진 지금, 비로소 진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연습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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