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영혼에 대한 여러 이론들을 다시 훑어보고 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어떤 삶을 살지 정해두고 내려온다는 이야기.
고차원의 영혼일수록 더 힘든 인생을 선택한다는 설정.
또 어떤 이론은 말한다. 신의 의식이 분화되어 인간이 되었고, 우리는 그 총합의 경험 조각일 뿐이라고.
바샤르는 이 둘을 섞는다. 큰 시나리오는 있지만 우리는 평행 현실 사이를 이동하며 선택한다고.
그리고 또 다른 관점도 있다. 의도 없이 창조되었고, 의도 없이 살아가지만, 생명체라는 OS 특성상 일정한 패턴이 존재한다는 모델.
처음엔 이런 생각들이 재미있다. 존재의 비밀을 푸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질문이 바뀐다.
“그래서?”
영혼이 태어나기 전 삶을 설계했다는 이론은 심리적으로 굉장히 강력하다.
고통이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선택한 삶이야.” 라고 말할 수 있으면 많은 일이 견딜 만해진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이 이론은 문제도 많다. 증명할 수 없고, 반증도 불가능하다. 무엇이든 설명 가능하다는 건 과학적 모델이 아니라 의미 보정 장치에 가깝다.
반대로 신의 총의식이 경험을 위해 분화했고 우리는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라는 모델도 있다. 철학적으로는 깔끔하다. 하지만 현실과 맞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강력한 제약 속에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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