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안는 사람의 탄생
앞 글에서 나는 착한 사람 코스프레와 수습형 인간의 구조에 대해 썼다.
이번엔 더 깊은 질문이다. 이 패턴은 어디서 시작될까?
대부분은 아주 어릴 때다.
“네가 좀 참아”
엄마 대신 동생을 챙기고
아빠 대신 분위기를 맞추고
어른들 싸움 사이에서 중재자가 되고
집이 흔들릴 때 버팀목이 되었던 아이들
이 아이들은 빨리 철든다. 그리고 마음속에 이런 믿음체계가 만들어진다.
내가 버텨야 한다.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내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이건 선택이 아니다. 생존 전략이다.
문제 생기면 자동으로 나서는 사람
정리 안 된 상황을 못 견디는 사람
상대보다 먼저 사과하는 사람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
겉으로 보면 훌륭하다. 하지만 내면에는 항상 이게 깔려 있다.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한다.”
그리고 이 진동은 결핍 많은 사람들을 정확히 끌어온다.
결핍형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느낀다.
“아, 이 사람은 떠안는다.”
그래서 판을 벌이고, 결정을 하고, 경계를 흐리고, 마지막 정리는 맡긴다.
수습형 인간은 또 이렇게 느낀다.
“아, 내가 해야겠다.”
이건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다. 신경계 자동 반응이다.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더 강해져야 하나?
더 단호해져야 하나?
심리 공부를 해야 하나?
아니다. 딱 세 가지만 하면 된다.
예전 : “뭐 어쩌겠어…”
지금 : “이건 아닌 것 같다.”
설명 필요 없다.
“그건 네가 정한 거잖아.”
“난 여기까지만 할게.”
이게 핵심이다.
찝찝함. 피로감. 묘한 불쾌함.
이건 예민함이 아니라 내비게이션이다.
“착한 사람” 정체성을 내려놓는 것.
수습형 인간은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안 하면 무책임한 사람 같고
내가 빠지면 냉정해 보이고
내가 그만두면 관계가 깨질 것 같고
근데 실제로는? 네가 빠져도 세상은 굴러간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진짜 관계만 남는다.
이 단계를 지나면 변화가 온다.
인간관계가 줄어든다
혼자가 편해진다
삶이 단순해진다
돈 쓰는 구조가 바뀐다
에너지가 새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이걸 공허라고 부른다. 나는 이렇게 부른다. 드디어 나에게 돌아왔다.
떠안는 삶은 사랑이 아니고, 버팀은 책임이 아니며, 착함은 미덕이 아니다.
그건 과거의 생존 방식이다. 이제는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