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작가와의 만남 강연 원문

안녕하세요.

수학 관련 글을 쓰는 작가이자, 수학 교육 플랫폼 “수잘공” 대표 류승재입니다.

이런 행사를 기획해 주시고 추운 날씨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3월부터 바로 과외를 하면서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시작했습니다. 군대 가기 전까지 과외와 야학 동아리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제대 후에는 1997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쉬지 않고 학원에서 학생들을 지도해 왔습니다. 돌아보면 제 인생은 20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전부, ‘아이들 옆’이었습니다.

10년 전쯤, 우연히 수업 중 아이들과 나누던 대화를 재미 삼아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당시는 교육 유튜버들이 대부분 젊었고, 현장에서 오래 아이들을 가르친 사람의 이야기가 거의 없던 시기였습니다.


부모님들은 화려하고 뜬구름 잡는 얘기보다는 “실제 아이들을 현장에서 오래 가르친 사람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출판 제안을 받았고, 제가 20년 넘게 쌓아온 경험을 정리해 책을 썼습니다.


그게 오늘 여기 있는 〈수학 잘하는 아이는 이렇게 공부합니다〉입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서 약 10만 부 정도 판매됐고, 예스 24 올해의 책에도 선정됐습니다.


그 이후로 많은 부모님들이 무작정 학원에 보내고 선행만 시키는 방식 대신, 아이 스스로 개념을 읽고 이해하고 문제를 풀게 돕기 시작했습니다. 제 책의 영향으로 반복 연산 대신 독서를 시키고, 학원 대신 자기주도 학습을 시도하는 아이들도 조금씩 늘었습니다. 그 결과, 최상위권은 단순히 선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능력과 심화 능력까지 갖추며 더 단단해졌고, 중간층의 역전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습니다.


고등 이상에서 수학을 잘하려면 개념 이해력이 필요합니다. 그 바탕에는 독서, 글쓰기, 한자, 그리고 스스로 개념을 읽고 이해하는 ‘개념 독학 연습’이 있습니다.


1등급을 받으려면 문제 해결력이 필요한데, 이건 누가 알려줘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어려운 문제 풀이법을 많이 배우는 것은 문제 해결력이 아니라 이해력만 늘립니다.

막히면 개념을 복습해서 다시 풀고, 또 막히면 힌트를 받고 다시 도전하는 과정.

이 과정을 견딘 아이만 진짜 문제 해결력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초등 시기부터 이렇게 연습시키라고 말합니다.

– 개념을 스스로 읽고

– 모든 문제를 자기 힘으로 풀고

– 막히면 다시 개념으로 돌아가고

– 그래도 안 되면 힌트를 받고 다시 도전하기


중등 이후에는 틀린 문제를 여러 번 다시 풀면서 ‘정확히 아는 훈련’이 중요합니다. 이 과정을 거친 아이들은 머릿속에 개념이 저장되어 있고,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 풀어냅니다. 소위 말하는 수학 잘하는 아이들이 됩니다.


이렇게 수학 공부법을 이야기해 온 지 벌써 7~8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많은 학부모와 학원들이 이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저는 수학보다 다른 부분을 더 많이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상대평가 구조에서 상위 10%를 제외하면 모두가 원하는 대학에 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부모님들은 자기 아이가 그 10% 안에 들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해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부모 자신의 불안이 섞여 있습니다.

뒤처질까 봐,

남들보다 못할까 봐,

미래가 불안해서입니다.

이 불안은 그대로 아이에게 전달됩니다. 그래서 지금 아이들은 꿈이 아니라 공포로 공부합니다.


성적이 떨어지면

“왜 이것밖에 못 하니.”

“더 노력해야지.”

아이의 머릿속에는 이렇게 저장됩니다.

‘나는 지금 모습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성적이 좋아야 인정받는다.’

이게 결핍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명문대를 가도 불안하고, 대기업에 가도 불안하고, 집을 사도 불안합니다. 부족하다는 감각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생 자신을 채찍질합니다.

공부 → 취업 → 승진 → 재테크 → 강남 아파트.

멈추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성공한 인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결핍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생존 모드’의 삶입니다.


저는 이 구조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도, 인생도 결핍 위에서 굴러가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소진됩니다. 목표를 이루면 공허가 밀려와 또 다른 목표를 만들어야 하는 삶이 반복됩니다. 미래의 목표를 위해 현재를 살지 못하니 행복하지 못합니다. 미래의 목표가 이루어져야 행복이 찾아온다고 믿으니 부족한 현재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가 명문대를 가고 대기업에 들어가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으니 지금은 항상 부족하고 불안합니다. 미래가 행복이라고 믿으니 지금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 자녀도 불행하고, 부모도 불행합니다. 우리 모두 현재 불행할 수밖에 없는 루틴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

부모가 아이 인생을 대신 책임지기 시작하는 순간, 아이의 성장은 멈춥니다.

“내가 알아서 해줄게.”

이 말은 배려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아이의 선택권을 제거하는 문장입니다.

사람은 선택 → 실패 → 수정 이 과정을 거쳐야 사고력이 생깁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스스로 푸는 것과 비슷합니다.


수학도 그렇고, 인생도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은 아이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이 과정을 통째로 대신 살아줍니다.

숙제 관리. 학원 선택. 시간표 조정. 진로 결정.

아이 대신 판단하고, 아이 대신 책임집니다. 그 결과 아이는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라 ‘결정하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성적이 좋아도 취약합니다. 자기 인생을 운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말합니다.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약하죠?”

약한 게 아닙니다. 훈련이 안 된 겁니다. 삶의 근육을 쓸 기회를 빼앗긴 겁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공부시키는 진짜 목적은 뭘까요?

명문대를 가고, 대기업에 가고, 그래서 아이가 행복하고, 부모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거꾸로 생각해 보시죠.

지금 아이가 비교적 안정적이고, 부모와 관계도 괜찮고, 집 안 분위기가 크게 무너지지 않았다면, 그건 이미 부모가 바라는 미래의 핵심이 이루어진 상태 아닐까요?


아이의 행복과 부모와의 관계.

이 두 가지가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은 ‘부족한 현실’이 아니라 이미 꽤 많은 것이 충족된 상태입니다. 여기서 관점이 바뀌면 공부의 성격도 바뀝니다. 지금까지는 “부족하니까 공부해야 하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이미 충분한 상태에서, 자기 꿈을 위해 공부하는 구조”가 됩니다. 이게 충만 모드입니다.

결핍 모드는 불안해서 공부합니다. 뒤처질까 봐 움직입니다. 인정받기 위해 달립니다. 충만 모드는 다릅니다. 이미 관계가 있고, 이미 삶이 무너지지 않았고, 이미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감각 속에서 자기 선택으로 공부합니다. 이때 아이는 더 이상 쫓기지 않습니다. 공부가 생존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도구가 됩니다. 그래서 재미가 생깁니다. 그래서 지속됩니다.


공부는 결핍에서 하면 소진되고, 충만에서 하면 성장합니다.

인생도 같습니다. 결핍에서 살면 버티는 삶이 되고, 충만에서 살면 살아 있는 삶이 됩니다.

그럼 부모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뭘까요?

거창하지 않습니다.

첫째, 결과보다 과정을 봐주는 겁니다. 점수 말고, 시도한 흔적을 이야기해 주세요.

둘째,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세요. 틀릴 자유를 주세요.

셋째, 부모 자신의 삶부터 회복하는 겁니다. 아이 인생에 매달리지 말고, 부모 본인의 삶을 먼저 살아주세요.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배우지 않습니다. 부모의 ‘상태’를 그대로 복사합니다.

불안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불안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것만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잘 산다는 건 앞서는 게 아닙니다. 불안에 끌려 움직이지 않고,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내 판단으로 선택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아이에게도 똑같습니다. 부모 눈치를 보며 공부하는 아이보다, 자기 이유로 공부하는 아이가 오래갑니다.


수학에서 답을 알려주면 실력은 늘지 않고, 스스로 풀게 해야 사고력이 생깁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부모가 대신 결정해 주면 아이는 편해 보이지만, 자기 인생을 운영하는 힘은 생기지 않습니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건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게 아니라, 부모가 없어도 자기 삶을 굴릴 수 있게 만드는 일입니다. 오늘 이 시간이 성적이 아니라 아이와 부모의 삶 구조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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