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학 칼럼

공부 안 하는 아이를 기다리면 다시 공부할까?

대부분의 경우, 공부를 안 하는 아이는 학원에서 퇴원시킨다. 숙제를 하지 않고, 태도가 잡히지 않으면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성적은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부모가 “그래도 다니게 해 달라”라고 계속 요청해서 중학교 1학년부터 지금 고3까지, 무려 6년째 가르치고 있는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숙제를 하지 않았다. 대신 부모와 합의한 조건이 하나 있었다.

“학원에서만 공부한다.”

집에서는 거의 하지 않았다. 당연히 성적이 오를 수 없는 구조였다. 기본서 한 권, 교과서 정도. 유형서나 심화 문제는 아예 손도 대지 못했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다.


고2가 되자 재미있는 현상이 생겼다. 아이의 실력이 늘어서가 아니라, 주변에서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내신 등급이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고1 때 4~5등급이던 수학이 고2 1학기엔 3~4등급, 고2 2학기엔 2~3등급까지 올라왔다. 모의고사는 여전히 형편없었다. 이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가 문과형 공부를 못하는 학교다 보니 그나마 내신이 오른 것이다. 모의고사는 항상 4~6등급을 왔다 갔다 했다. 하지만 내신만 놓고 보면 “올랐다”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아이의 부모는 중1 무렵에 사실상 공부를 ‘붙잡지 않기로’ 선택했다. 대신 여행도 자주 갔고, 운동을 배우고 싶다고 하면 시켰고, 공부 때문에 아이와의 관계를 망치지 않으려 했다.


많은 부모가 두려워하는 선택이다.

“이렇게 놔두면 더 안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이 따라온다.

그 질문은 틀리지 않다. 실제로 대부분의 아이는 더 안 한다. 그런데 이 집은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니라, 기다린 것에 가까웠다.


나는 이 아이에게 고난도 문제나 응용을 풀게 하지 않았다. 사실 시간도 없고 아이의 역량도 되지 않았다. 오직 개념서 한 권과 교과서만 시켰다. 개념서도 연습문제는 고등부터 아예 손을 데지 못했다. 대신 6년 동안 반복해서 가르친 게 있다.


개념 독학하는 법

문제를 혼자 풀다 막히면 해설지를 ‘읽는 법’

선생에게 의존하지 않고 최소한 문제집 한 권은 혼자 끝내는 법


속도는 느렸고, 성과는 거의 없었다. 고등에 올라가서는 내신용 교과서 수준에서만 머물렀다. 그런데 올해 1월, 아이에게 변화가 생겼다. 스스로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다. 그냥 자발적으로, 하루하루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시간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다. 작년 기말고사 이후, 작년 수능특강을 구입해서 풀게 했는데, 수1을 끝내고 수2도 절반정도 나갔다. 이 정도 속도면 늦어도 2월 중순까지는 확통까지 끝내고, 올해 수능 특강을 새로 사서 풀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다시 올해 수능 특강을 수1/수2/확통 3권을 3월 말까지 마무리하고, 4월 말까지 복습 및 오답을 시킨 후, 5월부터는 기출문제집을 들어갈 수 있다. 어려운 3점과 쉬운 4점 위주로 5~7개년 정도를 집중적으로 풀리면 수능 점수가 만들어진다. 이런 게 전략이다.


나는 이 아이의 수능 전략을 짰다. 재수반 담임을 10년 했으니 이 정도 설계는 할 수 있다. 내신으로 갈 대학은 없다. 수학과 국어도 특출 나지 않다. 논술 전형도 힘들다. 그래서 방향은 명확하다. 수능.


나는 사실 내신보다 수능 성적을 더 잘 올린다. 내신은 누적된 학습량이 필요하지만, 수능은 전략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 입시를 알고, 아이의 현재 위치를 정확히 알고, 과목 선택과 공부 방식을 잘 잡아주면 짧은 시간에도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다.


이 아이는 이과생이다. 나의 목표는 하나다. 수학을 확통을 선택해서 2등급 받게 하는 것. 과탐대신 사탐을 시키고, 국어와 영어에서 조금만 받쳐주면 2~3등급대 수능 성적을 받을 수 있고 문과 교차 지원을 활용하면 인서울에 들어갈 수 있다. 지금 모의고사 전 과목 4~6등급인 이 아이가 수능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간다.

공부 안 하는 아이, 기다리면 정말 공부를 할까? 대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그렇지도 않다. 중요한 건 ‘기다림’이라는 말 뒤에 무엇을 남겨두었느냐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기다림은 방치가 되고, 공부하는 법을 남겨둔 기다림은 언젠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 아이가 지금 움직이는 이유는 갑자기 의지가 생겨서가 아니다. 6년 동안 공부를 혼자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이 조용히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아이는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부모는 아이와의 관계를 잃지 않았으며, 나는 이 아이에게 “너는 결국 못 할 아이”라는 낙인을 찍지 않았다.


기다림은 위험하다. 하지만 준비된 기다림은 가끔 이런 순간을 만든다. 그리고 그 순간은 누군가를 증명하기 위한 성적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인생을 다시 선택하는 시점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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