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조용한 희망
엄마 장례 이후, 영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은의 이름이 화면에 여러 번 떴다. 진동이 울렸다가 멈췄다. 문자도 왔다. 읽지 않았다. 학원에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수업을 했다. 집에 돌아오면 불을 켜지 않고 소주를 마셨다. 반지하 방은 낮에도 밤에도 어두웠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나가려는데 동료 선생님이 말했다.
“상담실에 누가 와서 기다려요.”
문을 열자 지은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왜 연락 안 받아?”
영실은 가방을 내려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실아.”
지은이 일어섰다.
“무슨 일 있어?”
영실은 본체만체 밖으로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 주차장으로 향했다. 지은이 따라왔다. 마티즈 문을 열려는 순간 지은이 팔을 잡았다.
“잠깐만.”
영실은 팔을 빼내려 했다. 지은은 먼저 조수석에 올라탔다.
“얘기 좀 하자.”
영실은 말없이 시동을 걸었다.
반지하 집 앞. 지은은 내리지 않았다. 영실은 한숨을 쉬고 계단을 내려갔다. 지은도 따라왔다.
문을 열자 눅눅한 냄새가 올라왔다. 천장 모서리의 검은 얼룩이 먼저 보였다. 창문은 여전히 지면과 붙어 있었다.
지은은 문턱에서 잠깐 멈췄다. 영실은 냉장고를 열어 소주를 꺼냈다. 뚜껑을 비틀어 그대로 마셨다. 목이 쓰렸다. 지은이 병을 빼앗아 한 모금 마셨다.
“왜 연락 안 받았어?”
대답이 없었다.
“무슨 일 있는 거지?”
영실은 상을 꺼내 놓고 잔을 올렸다. 안주가 될 만한 걸 대충 꺼내 놓았다. 말없이 술을 따랐다. 지은이 다시 물었다.
“왜 연락 없었어? 걱정했어.”
영실은 잔을 비웠다. 또 채웠다. 한참 뒤에야 입이 열렸다.
“엄마가… 죽었어.”
지은의 손이 멈췄다.
“언제?”
“겨울에.”
잠시 침묵 후 영실이 말했다.
“형광등 아래 누워 있었어. 광대뼈가 튀어나와 있고… 눈이 푹 꺼져 있었어. 사람 같지 않았어. 귀신 같았어.”
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 정신병원에 있었어. 그 얘기 아무한테도 안 했어. 부끄러웠어.”
영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학교도 휴학하고 돈 벌었어. 햇빛 드는 집으로 데려가려고. 근데 못 갔어.”
잔을 내려놓았다.
“조금만 더 벌면 됐는데.”
지은이 손을 잡았다. 영실의 손은 차가웠다.
“그건 네 잘못 아니야.”
영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 순간 눈물이 터졌다. 참고 있던 것이 무너졌다. 아버지 장례 때도, 엄마 병동에서도, 형광등 아래서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었다. 영실은 얼굴을 숙이고 울었다. 어깨가 흔들렸다. 지은이 끌어안았다. 영실은 그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를 입원시키던 날. 장례식장 복도. 빈 병동 침대. 창턱에서 멈추던 빛.
장면들이 겹쳐 올라왔다. 숨이 가빠졌다.
“이제 혼자 아니야.”
지은의 말이 작게 들렸다. 영실은 더 크게 울었다. 형광등 아래에서 둘은 한참을 앉아 있었다. 울음이 잦아들고 숨이 고르게 돌아왔다. 지은이 얼굴을 감쌌다.
“영실아.”
입술이 닿았다. 처음엔 망설임이 있었고 그 다음엔 오래 머물렀다. 지은의 손이 등을 따라 내려왔다. 영실은 저항하지 않았다. 살이 닿았다. 따뜻했다. 반지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차갑지 않았다. 영실은 처음으로 자기 몸이 식어 있지 않다는 걸 느꼈다.
다음 날, 지은은 영실을 억지로 깨웠다.
“가자.”
“어디?”
“학교.”
“안 가.”
“가야 돼.”
지은은 마티즈에 먼저 탔다.
“김 교수님이 너 찾으셨어. 내가 말했어. 너 계속 빠지는 거.”
김 교수는 영실이 존경하던 사람이었다. 전공 과목에서 늘 질문하던 영실을 기억하는 교수였다.
교수실 문을 열자 햇빛이 먼저 보였다.
남향 창. 빛이 책상 위까지 들어와 있었다.
“왔구나.”
김 교수가 말했다.
“힘든 거 안다. 그렇다고 네 인생까지 접을 필요는 없다.”
잠시 정적 후 김 교수는 말을 이었다.
“모든 걸 혼자 떠안지 마라. 도움 받는 것도 능력이다.”
영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장학금 받을 수 있는 길 있다. 프로젝트 하나 맡아라. 대회도 나가라. 네가 할 수 있는 거, 나는 안다.”
말은 단단했다. 동정이 아니었다. 교수실 바닥까지 햇빛이 내려와 있었다.
교수님과의 미팅 후, 학교 벤치에 영실과 지은은 앉았다. 햇빛이 영실의 얼굴을 비췄다. 지은이 말했다.
“등록금 해결됐잖아. 주 3일만 학원 가도 되겠네.”
영실은 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이제 반지하 말고 햇빛 드는 방에서 살고 싶어.”
지은이 웃었다.
“그럼 같이 찾자.”
그날 둘은 방을 보러 다녔다.
2층, 남향, 작은 원룸. 창이 컸다. 빛이 바닥까지 내려왔다. 영실은 창가에 섰다. 햇빛이 손등에 닿았다.따뜻했다.
“여기다.”
몇 달 뒤.
대학 수업을 마치고 마티즈에 올랐다. 교수실 창으로 들어오던 빛이 떠올랐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문자가 왔다.
‘맛있는 거 해놨어. 빨리 와.’
지은이었다. 영실은 휴대폰 화면을 잠시 바라봤다. 그리고 엑셀을 밟았다. 이제 집은 도망치는 곳이 아니라 돌아가고 싶은 곳이었다.
앞유리로 햇빛이 길게 들어왔다. 영실은 그 빛을 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