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약속
병원 문이 닫힌 뒤에도 그 소리는 오래 남아 영실을 괴롭혔다.
“영실아! 나 두고 가지 마!”
병원 복도에 서 있던 영실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사람들이 오갔고, 간호사들이 분주히 걸어 다녔지만 그 장면은 느리게 흘렀다.
입원 수속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기억이 흐릿했다. 집에 도착하자 방 안은 조용했다. 영실은 엄마의 방에 들어갔다. 이불은 반쯤 젖혀져 있었고, 베개 위에는 머리카락 몇 올이 남아 있었다. 방 안에는 엄마 특유의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영실은 서랍을 열었다.
엄마의 속옷을 꺼냈다. 얇고 낡은 면 속옷.
엄마의 양말을 꺼냈다. 뒤꿈치가 닳아 있었다.
엄마의 칫솔을 챙기고, 수건을 접고, 얇은 가디건을 넣었다. 하나씩 가방에 넣을수록 엄마의 삶이 접혀 들어가는 것 같았다. 옷을 정리하다가 손이 멈췄다. 옷장 안쪽에 검은 비닐봉지가 하나 있었다. 그 안에는 오래된 사진 몇 장이 들어 있었다.
젊은 엄마와 아빠가 남산에서 찍은 사진들.
엄마는 수줍게 웃고 있었고, 아빠는 어색하게 서 있었다. 뒤에는 벚꽃이 흐릿하게 찍혀 있었다.
영실은 사진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저 사람이… 내 엄마였지.’
지금의 삐쩍 마르고, 환청에 시달리며 허공을 향해 소리치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진 속 엄마는 진짜 엄마였다. 볼이 통통하고 눈빛이 살아 있던, 영실을 사랑해 주고 영실이 기댈 수 있었던 엄마였다.
영실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엄마의 짐을 넣던 가방을 잡은 채로, 소리 없이 울다가, 결국 통곡이 터져 나왔다.
“엄마… 엄마…”
방 안에 울음이 퍼졌다.
“내가 꼭 돈 많이 벌어서… 엄마가 살고 싶다던 집에서 살게 해 줄게. 실내에 화장실 있고, 햇빛 잘 들어오는 집. 곰팡이 없는 집. 내가 꼭 그렇게 해 줄게.”
영실은 휴학을 연장했고, 일을 더 늘렸다.
낮에는 편의점, 밤에는 카페. 주말에는 건물 청소 아르바이트까지.
영실에게 대학은 사치였다. 엄마를 깨끗한 아파트에서 살게 하고 싶었다. 그러면 엄마 병이 씻은 듯이 나아 예전의 진짜 엄마로 돌아올 것 같았다. 하루하루 몸은 지쳤지만, 통장 잔고는 늘었다.
‘아파트.’
그 단어는 목표가 되었고, 주문이 되었고, 이유가 되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밤마다 술로 지새우던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 들러 엄마에게 아버지의 부고를 전했지만 엄마는 말이 없었다. 그저 초점 없는 눈빛으로 멍한 표정을 지으며 침을 흘릴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겨울, 엄마도 조용히 숨을 멈췄다. 영실은 울지 않았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슬픔을 계속 견뎌왔기에 흘릴 눈물이 없었다.
그 후로도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영실은 학교를 마쳤고, 직장을 얻었고, 결혼을 했다. 아이도 태어났다. 그리고 어느 날, 부동산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여기, 햇빛 잘 들어와요. 남향이에요.”
부동산 중개인이 말했다.
베란다 문을 열자 따뜻한 빛이 거실로 들어왔다. 실내에 화장실이 있었고, 곰팡이 냄새도 없고, 벽지는 깨끗했다. 영실은 거실에서 베란다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엄마…’
약속은 지켰다. 그러나 엄마는 없다.
몇 년 뒤, 가족과 함께 남산에 올랐다. 아이들은 신나서 앞서 뛰어갔다.
“아빠! 빨리 와!”
벚꽃이 또 흩날리고 있었다. 영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들 둘러봤다. 어딘가에서 엄마가 웃고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과 남산 돈가스 집에 들어갔다. 여전히 수프가 먼저 나왔다.
얇은 금속 그릇, 노란 수프, 후추 향.
아이들의 돈가스를 잘라주며 영실은 말했다.
“내가 해줄게.”
돈가스는 여전히 바삭했고, 소스는 넉넉했고, 양배추는 신선했다.
돈가스를 한 입 베어 물다 영실은 문득 깨달았다.
'엄마가 좋아했던 건 돈가스가 아니었어. 아름답던 그 시절이었어.'
영실은 창밖을 바라봤다. 벚꽃 한 장이 창가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남산 돈가스의 수프는 여전히 따뜻하고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