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돈가스(2)

2부 ― 벚꽃 떨어지던 날

영실은 며칠을 고민하다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오늘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

엄마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뭐?”

“돈가스. 엄마 좋아하잖아. 남산 돈가스.”

엄마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변했다. 환청에 시달리던 눈빛이 잠깐 멈췄다.

“남산?”


영실은 엄마와 함께 남산으로 향했다. 날씨는 따뜻했고, 하늘은 맑았다.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천천히 공중을 맴돌다 사람들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모두 활짝 웃고 있었다. 유모차를 미는 부부, 손을 꼭 잡은 연인,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친구들. 그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영실은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의 손은 예전보다 가늘어져 있었다.

“여기 참 좋다.”

엄마가 말했다. 영실은 엄마를 바라봤다. 벚꽃 잎이 엄마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엄마는 잠시 그 꽃잎을 손으로 만지더니,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너희 아빠랑 처음 남산 왔을 때도 벚꽃이 이렇게 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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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 엄마는 연한 베이지색 코트를 입었고, 생머리가 허리 아래까지 흘러내렸다. 아빠는 말수가 적었지만, 그날은 괜히 아무 말이나 많이 했다.

“남산이 많이 높죠?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전망대예요.”

엄마는 숨이 차면서도 웃었다.

벚꽃이 흩날렸고, 바람이 불 때마다 엄마의 머리카락이 얼굴을 스쳤다. 아빠는 어색하게 손을 뻗어 엄마 이마에 붙은 벚꽃 잎을 떼어냈다.

“꽃잎이 붙어서요.”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한채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엄마의 얼굴은 빨개졌다.


그날 남산은 유난히 밝았고,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엄마는 자신도 그들 중 하나라고 믿었다. 전망대를 내려오며 아빠가 조심스레 말했다.

“저기 돈가스 먹고 갈래요?”


그 시절 남산 돈가스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처럼 되어 있었다. 식당 안은 분주했고, 나무 테이블은 빛이 바래 있었다. 하얀 접시 위에 큼지막한 돈가스가 놓였다. 겉은 바삭하게 튀겨져 있었고, 칼을 대자 ‘사각’ 소리가 났다. 고기는 두툼했고, 육즙이 안쪽에서 천천히 번졌다. 갈색 소스가 넉넉하게 끼얹어져 있었고, 양배추 샐러드 위에는 새콤한 드레싱이 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집 특유의 수프. 얇은 금속 그릇에 담겨 나온 노란 크림수프는 따뜻했고, 후추 향이 살짝 올라왔다. 엄마는 숟가락으로 천천히 떠먹었다.

“맛있어요.”

아빠는 엄마의 맛있다는 말에 어깨를 우쭐거리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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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참 좋았는데.”

엄마는 머리에 붙은 벚꽃 잎을 떼어내며 말했다. 영실은 순간 엄마가 제정신이 돌아왔나 착각했다.


남산 돈가스 집에 들어섰다. 문을 여는 순간 기름 냄새와 소스 향이 섞여 코끝을 자극했다. 영실은 창가 자리에 엄마를 앉혔다.

“돈가스 두 개요.”

수프가 먼저 나왔다. 엄마는 그걸 보자 잠시 손을 멈췄다.

“여긴… 그대로네.”

영실은 조용히 엄마의 돈가스를 잘랐다. 칼이 바삭한 튀김을 가르며 고기 결을 따라 내려갔다. 소스가 접시에 번졌다.

“내가 해줄게.”

엄마가 어릴 적 영실에게 해주던 말을, 이제 영실이 엄마에게 했다. 엄마는 작은 아이처럼 기다렸다가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맛있다.”

엄마의 말에 영실은 고개를 숙였다. 엄마와의 마지막 식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엄마는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듯, 평소보다 아주 천천히 돈가스를 먹었다.

수프 한 숟가락, 돈가스 한 조각, 양배추 조금.


식당을 나서자 벚꽃이 더 많이 흩날리고 있었다. 병원이 가까워질수록 영실의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엄마는 주변을 둘러보며 불안해했다.

“여기 어디야? 어디 가는 거야?”

영실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병원 간판이 보였다. 엄마는 멈춰 섰다.

“병원 아니야? 왜 왔어?”

엄마의 눈이 흔들렸다. 영실은 엄마의 손을 꽉 잡았다.

“엄마…”

그 순간,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다가왔다. 엄마는 소리를 질렀다.

“영실아! 나 두고 가지 마! 너까지 나 버리면 안 돼. 니 아버지 말 들으면 안 돼.”

엄마는 끌려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소리가 차단됐다. 영실은 그 정적 속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여전히 벚꽃이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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