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돈가스(1)

1부 ― 전화

편의점 형광등은 늘 같은 밝기로 빛났지만, 영실의 눈에는 그 빛이 점점 더 희게 번져 보였다. 하루 종일 서서 계산대를 지키다 보면 시간 감각이 흐려졌다. 오전 아홉 시에 들어와 저녁 아홉 시가 되기까지, 영실은 수십 번 “봉투 필요하세요?”라고 물었고, 수십 번 “영수증은요?”라고 말했다.


기름진 도시락 뚜껑을 열어 전자레인지에 넣고, 컵라면에 물을 붓고, 택배를 찾으러 온 손님에게 무거운 상자를 건넸다. 중간중간 취객이 들어와 계산대에 몸을 기대며 괜히 말을 걸었다.

“학생, 힘들지?”

영실은 웃지 않고도 웃는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발뒤꿈치가 욱신거렸다. 허리가 굽어졌다. 손은 거칠어졌다.


퇴근 시간이 되어 가게 문을 밀고 나오자 밤공기가 목을 훑고 지나갔다. 편의점 안에 남아 있던 따뜻한 공기와는 달랐다. 차갑고, 현실적인 공기였다.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무릎 위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자동차들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영실은 잠시 화면을 내려다봤다.

‘설마.’

받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받지 않으면 더 불안했다.

“여보세요.”

“임영실 씨 되시죠?”

“네.”

“어머님이 지금 경찰서에 계세요.”

영실은 눈을 감았다. 이미 몇 번이나 겪은 장면이었다.

“어떤 집에 들어가셔서 자기 집이라고 주장하셨어요. 신고가 들어와서 모셨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야! 이 미친놈들아! 다 짜고 나를 지하실에 가둬놓고 돈 빼돌렸지! 내 돈 내놔!”

영실은 입술을 깨물었다. 주변 사람들이 흘끗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지금 갈게요.”

그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버스가 도착했다. 사람들이 줄을 섰다. 영실도 일어섰다. 버스에 올라 창가에 앉았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스물한 살이 아니라 마흔쯤 되어 보였다. 버스가 출발하자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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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원래 말이 많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졌을 때도 엄마는 한숨 대신 행동을 택했다.

“조금만 참으면 되니 힘내자.”

그 말은 주문처럼 반복되었다.


지하 단칸방으로 내려간 날, 엄마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곰팡이 냄새가 올라왔지만, '환기하면 괜찮다'라고 말했다. 여름이면 물이 차올랐고, 겨울이면 냉기가 벽을 타고 들어왔다. 그 와중에도 엄마는 돈을 모았다. 그 돈은 전셋집으로 옮기기 위한 돈이었다.


그러나 그 돈은 외삼촌에게 건너갔다. 외삼촌은 외가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다. 명문대를 졸업했고 대기업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을 시작했다. 엄마는 동생을 믿었다. 동생이 잘되면 가족이 모두 잘될 거라고 믿었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그날 이후, 밤마다 술 냄새가 집을 진동했다.

“빨리 가서, 돈 받아와!”

아버지는 소리를 질렀다. 어느 날은 엄마를 밀쳤고, 어느 날은 멱살을 잡았다.

얼마 뒤, 외삼촌이 자살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날 이후, 엄마의 말이 조금씩 이상해졌다.

“누가 내 돈을 빼돌렸어.”

“다 짜고 나를 이런 곰팡이 냄새나는 지하실에 가둬놨어.”

"너희 아빠가 다른 년한테 내 돈을 다 줬다고."

처음엔 한두 번이었다. 그러다 점점 늘어났다. 병원에 가보자는 말은 꺼낼 수 없었다. 돈이 없었다. 아버지는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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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멈췄다. 영실은 경찰서 앞에서 내렸다. 경찰서 형광등은 편의점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엄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몸은 삐쩍 말랐고, 눈은 허공을 향해 있었다. 영실을 보자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쟤네가 다 한 패야! 네 아빠도! 다 내 돈 빼돌렸어!”

경찰이 크게 말했다.

“어머님, 계속 이러시면 유치장 들어갑니다!”

영실은 엄마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갑고 가벼웠다.

“엄마, 제발. 조용히 해. 창피하다고.”

엄마는 잠시 영실을 바라보더니 조용해졌다.


경찰이 영실을 따로 불렀다.

“지금 주거 침입으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정신 병원에 입원시키고 진단서 제출 안 하면 처벌될 수 있어요.”

영실은 고개를 숙였다.

“돈이 없어요.”

경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국립 병원 추천서 써드릴게요. 비용은 저렴합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술에 취해 쓰러져 있었다. 영실은 엄마를 방에 눕혔다. 방은 두 칸이었고, 그중 한 칸은 영실과 엄마가 함께 썼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가 출근하려고 문을 나설 때 영실이 말했다.

“아빠, 엄마를 병원에 입원 안 시키면 교도소 갈 수도 있대요.”

아버지는 잠시 멈춰 섰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등에 대고 영실은 소리쳤다.

“제가 입원시킬게요.”

아버지는 영실의 말에 대꾸도,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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