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반지하
아버지가 죽었을 때, 영실은 울지 않았다.영정 사진 속 아버지는 다른 얼굴이었다. 턱이 각지고, 눈에 힘이 있었다. 반지하 창문 아래에서 술에 취해 자던 그 사람과 닮지 않았다. 조문객들은 영실을 힐끔거리며 속삭였다.
“충격이 커서 저러는 거겠지.”
“그래도 눈물은 좀 흘려야 하지 않나?"
영실은 그들의 말을 들었지만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반지하 집은 낮에도 불을 켜야 했다. 창문은 지면과 붙어 있었다. 비가 오면 흙탕물이 튀었다. 벽지는 들떠 있었고, 모서리마다 검은 얼룩이 번졌다. 햇빛은 창문턱을 넘지 못했고, 바닥까지 닿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창문 아래에서 잤다. 작업복은 늘 축축했고, 손에는 시멘트 가루가 묻어 있었다. 소주병이 하나씩 쌓였다. 텔레비전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방 안이 잠깐 밝아졌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엄마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뒤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병원비는 니가 알아서 해라.”
그 말이 전부였다.
영실은 엄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휴학을 했고 학원 강사로 취직을 했다.
'학원 수업을 더 잡으면 된다.'
'방학 특강을 하면 된다.'
'다음 학기도 휴학하면 된다.'
아버지는 이미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밤, 술에 취해 등을 보이고 자는 아버지를 보며 생각했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그 생각은 소리로 나오지 않았지만 방 안 공기처럼 퍼져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영실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마음에서 사라진 사람이었다.
엄마는 여전히 병원에 있었다. 곰팡이 냄새는 없었지만, 병동도 밝지 않았다. 창문은 있었고, 복도 끝에는 빛이 떨어졌다. 그러나 엄마 침대까지 오지 않았다. 엄마는 말라 있었다. 광대뼈가 먼저 보였고, 눈은 깊게 들어가 있었다. 입술은 갈라져 있었다.
“여기 어두워…”
엄마는 중얼거렸다. 영실은 복도 끝 창문을 봤다. 바닥 위로 햇빛 한 줄이 길게 누워 있었다.
해가 드는 집.
그 생각이 또렷해졌다.
창문이 있고, 화장실이 안에 있고, 곰팡이 냄새가 없는 집.
그곳에 엄마를 눕혀두면, 엄마가 다시 웃을 것 같았다.
아버지 장례식이 끝난 지 며칠 뒤, 지은이 학원 앞에 서 있었다. 지은은 영실과 같은 과였다. 1학년 때 조별 과제를 함께 했고, 축제 준비를 같이 했던 기억이 있었다.
“끝났어?”
영실은 잠깐 멈췄다.
“왜 왔어?”
“그날… 말도 못 붙였잖아.”
지은은 장례식장에서 영실을 오래 바라봤었다.
울지 않는 얼굴. 슬픔이 없어 보이는 눈.
“나도 아빠 없어.”
지은이 말했다.
“초등학교 때 이혼했어. 졸업식에도 안 왔어.”
영실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지은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지은은 가끔 학원으로 왔다.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잠깐 걷다가 돌아갔다. 영실이 엄마 이야기를 할때면 지은은 끼어들지 않았다. 그냥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영실은 초조했다. 언제 엄마가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빨리 돈을 벌어 햇빛 비치는 집으로 엄마를 모시고 싶었다. 방학이 되자 영실은 수업을 늘렸다. 방학 특강을 하며 아침 열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수업을 했다.
영실이 수업을 할때 아이들 뒤편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분필 가루가 빛 속에서 떠다녔다. 영실은 잠깐 그 빛을 보다가 생각에 잠겼다
‘저 빛이 엄마 침대까지 가면 좋겠다.’
그해 겨울, 엄마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