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한가로이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에 벚꽃이 흩날렸다.
그때 누군가 내 차를 뒤에서 박았다. 뒤차를 운전하던 아저씨는 따뜻한 봄날씨에 살짝 졸았나 보다.
결국 차는 수리를 맡겼고, 수리받는 동안 대차를 받게 됐다. 그런데 대차 받은 차가 평소 타고 싶었던 차였다.
사고 다음 날 혹시 몰라 한의원을 방문했다.
한의사는 침을 놔주며 주의를 줬다.
"뒤에서 박아서 충격이 있을 수 있으니,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해요. 무리한 운동은 하지 말고요. 집에서 스트레칭 위주로만 하고 쉬세요. 내일 또 와서 치료받고요"
운동도 못하고, 원하던 차도 생겨서 나는 드라이브를 가기로 했다. 차가 안 막히는 파주 쪽으로 운전을 했다. 헤이리 마을에 들러 점심을 먹고, 평소 가고 싶던 카페에서 '아아'를 먹었다. 카페가 밖에서 보던 것보다 작고 커피맛도 별로였다. 비싼 카페에 왔을 때 커피맛이 별로면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도 오늘은 드라이브를 하는 날이니까, 커피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차로 향했다. 고속주행도 안정적이고 차가 너무 맘에 들었다.
이튿날도 한의원을 갔다. 치료를 받고 나오는 순간 우연히 전여친을 만났다.
"어, 웬일이야?"
"나도 여기서 치료받는데?"
"아! 그렇구나"
나는 대차 받은 차를 향해 갔다. 전여친은 차를 보고 놀라며 물었다.
"어머, 차 멋지다"
"자동차 사고로 대차 받은 차야"
"지금 집에 가는 거야?"
"아니, 차 타고 드라이브나 하려고"
"나도 같이 가자"
"안 바빠?"
"아직 시간 있어"
탐탁지는 않았지만, 전여친을 태우고 드라이브를 갔다. 전여친은 파주 헤이리로 가자고 했다. 나는 어제 간 곳이라 가기 싫었지만, 티 내지 않고 갔다.
전여친을 만난 기쁨보다는 혼자만의 드라이브를 방해받은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헤이리마을에 도착했다.
"카페나 가볼까?"
"무슨 소리야? 여기까지 왔는데 밥을 먹어야지"
일이 커졌다. 밥까지 먹으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맛집들을 돌아다니다가 차들이 많이 주차한 집으로 들어갔다. 음식은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고 평범했다. 헤이리 마을은 대부분 맛이 평범한 것 같았다. 꽤 많은 양의 식사가 끝나고, 식당에서 무료로 주는 원두커피를 주문하려고 했다.
"뭐 하는 짓이야? 커피는 카페에서 먹어야지"
"밥 먹었는데 카페까지 가자고?"
결국 또 다른 카페 명소로 향했다. 전여친은 자기가 주문한다고 하고, 2층에 가서 자리를 잡으라고 했다.
한참 후, 전여친은 커피 2잔과 빵을 잔뜩 사 왔다.
"아니 방금 밥 먹었는데, 빵은 왜 샀어?"
"밥은 밥이고, 후식이 있어야지"
갑자기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돈이면 우리 애들 배불리 맛있는 것 사줄 수 있을 텐데, 이 여자도 많이 변했다. 예전에 여친일때는 조금만 먹었는데'
옆에서 빵을 먹고 있는 전여친을 보며 세월의 무성함을 느꼈다.
잠깐 방심하는 사이, 전여친은 그 많던 빵들을 혼자 절반 넘게 흡입했다.
"그만 먹어, 밀가루 음식은 성인병에 안 좋아"
"아, 그래? 좀 배부르긴 하네"
건강을 걱정해 주는 척하며, 전여친의 폭풍 흡입을 막았다.
다행히 남긴 빵과 쿠키를 포장했다. 학교 끝나고 학원 가기 전에 아이들 간식으로 줄 생각하니 흐뭇했다.
집으로 가는 길, 전여친은 부담스러운 제안을 했다.
"저기~~"
"저기~~"
"왜?"
"이 차, 내가 몰아봐도 돼?"
"뭐? 이 차 비싼 건데, 렌터카라 사고 나면 안돼?"
"보험 들어있지 않아?"
"응, 보험은 들어있지"
"그럼 살살 몰아볼게"
결국 전여친은 운전을 했다. 집까지 오는 길에 전여친에게 운전하는 법을 알려주며 짜증이 났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전여친은 차에서 내리며 거침없이 말했다.
"내일도 놀러 갈래?"
"뭐, 내일도?"
"이 차 며칠 있으면 반납한다며, 차 있을 때 멀리 드라이브하면 좋잖아"
전여친과 헤어지고, 오늘 하루를 곱씹어 봤다.
하나의 설렘도 없었던 전여친과의 한의원에서의 만남, 그리고 교외까지의 드라이브, 식사, 커피까지.........
타고 싶던 차도 막상 이틀 연속 타보니 별로 좋지 않았다. 승차감도 그리 뛰어나지 않았고
대부분이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환상이었구나. 드림카를 타도 별로 행복하지 않고, 전여친과의 데이트도 설레지 않고.
그래도 내일은 조금 좋은 곳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의 데이트인데 조금 멋진 브런치 카페를 찾아봤다. 대차 받은 차를 반납하기까지 휴가 아닌 강제 휴가를 즐기기로 했다.
전여친과의 두 번째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이다.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전여친을 만나고 물어봤다.
"비도 오는데 그냥 가까운 데 갈까?"
"왜???"
"내가 알아본 데는 40분이나 걸리네"
"그래? 그래도 그냥 가, 가다 보면 비가 그칠 거야"
전여친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이런 시원시원함은 고민의 에너지를 없애서, 좀 더 에너지를 절약하고 그 에너지를 행동에 쓰는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고민하고 주저하지 말고, 행동하라라는 말이 있다. 생각 없이 행동하면 에너지가 절약되고, 절약된 에너지로 많을 일을 해낼 수 있다.
드디어 내가 알아본 카페에 도착했다. 전여친은 카페를 보고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과 소리를 질렀다. 카페는 넓고 가장 중요한 커피가 맛있었다. 나는 비 오는 차창을 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오늘까지가 마지막이다. 전여친과의 데이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