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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믿음과 상상 Aug 23. 2023

쉬흔에  떠나는 가평 MT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다

내가 다니는 모교에서 입학 30주년 행사를 한다. 그 덕분에 동기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여러 소모임이 생겼다. 그중 여행 소모임에서 "다시 떠나는 가평 MT"라는 콘셉으로 여행을 기획했다. 


여행에 참석한 10여 명 정도의 동기는 거의 처음 보는 친구들이다. 대학 시절 과도 다르고 만난적도 없다. 이 사람들이 MT를 왔다. 30년 전에 같은 대학을 다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MT를 가는 토요일은 차가 엄청 막혔다. 막힌 차에서 나는 계속 생각했다. 


나는 이곳을 왜 가는가? 

가평을 간다면 가족끼리 갈 수도 있고 혼자서도 갈 수 있는데, 굳이 이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가는 걸까?


일단, 뭔가 다르게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 안 하던 것들을 해봐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학 30주년, 다른 말로 하면 내 나이 50


건강하게 움직이며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고작 10년 남짓


지금까지 안 해봤던 것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자전거 소모임에도 가입하여 처음 보는 동기들과 자전거도 탔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자마자 반말을 하고, 이해관계없이 만나는 동기들이 편했다. 그래서 새로운 동기들을 만나보는 것이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기대됐다. 가장 기대됐던 것은 나와 다른 전공, 나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동기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나처럼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경험이 중요한데, 동기들 한 명 한 명이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간접 경험을 선사했다.


세 번째는 가족 없이 나만을 위한 여행을 가고 싶었다. 다시 스무 살같이 놀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족 없는 최초의 여행을 하고 싶었다.


가평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있었다. 동기중 한 명이 수제 외국 맥주를 20병넘게 가져와서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서로 살아온 얘기를 나눴다


점심시간이 되자 동기들이 어느 정도 와서 우리는 닭백숙을 먹으며 도수 높은 중국술을 마셨다. 이번 여행에서 술은 자발적으로 동기들이 가져왔고, 음식은 업체를 통해 해결했다. 즉, 식사 준비와 바비큐까지 펜션에서 재공해 줬다. 음식을 우리가 할 필요가 없으니 정말 편했다. 우리는 놀다가 먹기만 했다. 50대의 MT에 너무 적합한 프로그램이었다. 


밥을 먹고 계곡으로 가서 수영을 했다. 나도 이렇게 놀 줄은 상상을 못 했다. 다이빙을 하고 계곡 전체를 휘저으며 놀았다. 계곡에서 놀던 젊은 친구들에게 민폐가 아니었나 모르겠다.


수영하다가 몸이 추워지면 미리 준비한 와인을 마셨다. '내가 이렇게 대우받아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하게 놀았다. 가족과 함께 갔으면 계속 신경 쓰고 힘들었을 것이다. 온전히 나만 생각하고 서로 배려하고 신경 쓰는 친구들하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으로 놀았다.


충분히 계곡에서 놀고 숙소에 들어가 펜션 측에서 제공하는 바비큐와 음식을 먹고 우리는 술을 먹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동기들이 가져온 엄청난 술들이다. 참고적으로 나는 라면을 준비해서 새벽에 오징어 라면을 끓여줬다. 동기들은 술 선물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양주, 일본술, 중국술, 보드카 등등




저녁에는 불멍을 하며 서로 살아온 얘기들을 나눴다.



스무 살의 MT와 똑같았다. 이렇게 개구쟁이처럼 노래 부르고, 물장구치고, 술 마시는 우리들의 직업은 대학 교수, 작가, 정치인, 기자, 대기업 직장인, 스타트업 대표, 회계사, 외국 기업 임원, 박물관 기획자 등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근엄하고 점잖을 줄 알았던 대학 교수 동기였다. 너무 애 같았다.


다음날 아침 깜짝 놀란 것은 오전 7시에 있는 명상 프로그램에 전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새벽까지 술을 먹고 몇 시간 안 자고 일어나서 전원 참석 대단하다. 역시 모범생의 피가 흐르는 고대생들이다. 


대학 동기들을 만나서 드는 느낌은 지금까지 만났던 주변인들과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이다. 고대생은 고대생의 DMA가 있다. 일단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신다. 그리고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  


허투루 살아온 친구가 없었다.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지금까지 멋지게 살아온 동기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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