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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이르는 길

포기를 부르는 이유들

by 민수석

정상에 이르는 길, 포기를 부르는 이유들


나는 한 달에 한 번, 스스로에게 시간을 선물하려고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내 삶에서 꽤 중요한 일이다.

오늘은 그 시간을 악어봉이라는 산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


몇 번 다녀온 길이지만,

여전히 숨은 금세 가빠지고 모기들은 성가시게 달라붙는다.

힘들 때마다 이상하게도 포기할 만한 이유들이 줄줄이 따라온다.

“배가 아픈 것 같네, 발목도 아픈 것 같아.”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진짜 이유라기보다,

내 안에서 만들어낸 정교한 핑계일 뿐이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포기하려는 순간에는 언제나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하다.

이유 없는 포기는 자기 자신을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논리를 끌어와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그렇게 중도에서 멈추곤 한다.


하지만 끝까지 가 본 사람만이 안다. 그 핑계들은 진짜가 아니었다는 것을.


누군가는 이 산을 산책하듯 다녀왔다고 한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어떤 이는 가볍고, 어떤 이는 무겁다.

그것은 아마도 길이 아니라, 걸어가는 자의 마음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에 다다르기 전, 잠시 쉬고 싶은 순간이 수없이 찾아온다..

그러나 마음속에 그려 둔 풍경이 나를 다시 걷게 한다.

내가 원하는 자리에 서 있는 상상만으로도 포기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오른다.

아무도 없는 정상에서 매미 소리와 바람이 나를 맞는다.

그 순간 깨닫는다.

인생의 어떤 고비도, 결국은 이와 같다는 것을.

힘들 때 떠올린 온갖 이유들이 사실은 허상일 뿐이었다는 것을.


산을 오르며 얻은 이 작은 깨달음이 내 마음에 하나의 좌표처럼 찍힌다.

언젠가 또 다른 삶의 길에서 흔들릴 때, 오늘의 이 풍경이 나를 일으켜 세워줄 것이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우리는 이유를 만든다.

하지만 정상에 선 풍경은, 그 이유들이 얼마나 하찮았는지를 고요히 증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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