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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Sep 16. 2017

그놈에 '스티브 잡스' 였다면

혁신이라는 '망상' 속에 갇힌 사람들


여는 글


아이폰8과 아이폰X가 발표됐다.


모든 WWDC를 생방으로 챙겨보는 나로서 이번 애플 이벤트도 마찬가지로 팝콘을 먹으면서 대학원 선배와 온갖 드립을 치며 감상했다.


탈모 디자인이 어떻다더니, 애플리케이션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느니 온갖 진부한 기술과 디자인, UX 이야기를 하면서 행복한 새벽을 보냈다.


다음 날 다양한 글이 올라왔다.


"애플, 이번에도 혁신은 없었다.", "스티브 잡스의 정신은 애플에 없다." 

뭐 그런 것들.


글을 읽고 있으면 조금 짜증이 난다.


혁신은 없었다라니.


그들이 생각하는 혁신은 어떤 것일까?


자바 가상 머신(JVM)이라든지, 유닉스나 리눅스 혹은 프레임워크든 하드웨어였든 그것이 배터리이든 

그들이 스마트폰에 가진 대한 기술지식을 모두 배제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것이 혁신인지를 명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정말로 궁금하다. 누군가 이런 것들이 혁신이라고 누군가 말해줬으면 좋겠다.


물론, 애플은 대단한 마켓 체인저였다. 


맥킨토시를 발표하며 컴퓨터의 대중화를 이끌어냈고, 

아이팟과 아이폰을 연달아 히트시켜 다양한 서비스와 생활 기반을 스마트폰으로 압축해 넣어버렸다.


거기까지만 혁신인가?


그 후의 것들에서 사람들이 혁신으로 판단하는 것들이 몇 가지나 될까?


포드의 대량 생산은 혁신인가? 테슬라의 전기차는 혁신인가?


스마트 모빌리티는 혁신인가? 딥러닝 기술을 이용한 AI는 혁신인가?





없애거나, 합치거나, 아예 바꾸거나.


혁신의 사전적 정의


우리가 어떤 것을 함께 이야기할 때는 용어의 통일이 매우 중요하다.


가령 '효율적', '본질적' 같은 어떤 성질이나 형태 혹은 개념에 대한 것을 설명할 때는 필수적이다.


효율적인 것을 효과적인 것과 분리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가 같은 비용이라면 더 많은 산출물을, 같은 산출물일 경우 더 적은 비용을 들이는 것.'이라고 정의하지 않고 이야기한다면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가 될 수가 없다.


혁신이라는 단어도 조금은 맥락이나 뜻이 통일되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혁신은 무엇인가? 조금 더 좁혀서 내가 생각하는 혁신은?


나는 요즘 시대의 혁신은 어떤 것을 없애거나, 합치거나, 표현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어본다면, 

어느 시대에는 '더 작게 만드는 것'이 혁신인 시대가 있었다.


모토로라의 미니모토가 그랬고, 초소형 MP3 플레이어 같은 것들이 그랬다.


또 어느 시대에는 크게 만드는 것이 혁신인 시대가 있었다.


대형 TV와 모니터가 그랬고, 더 좋은 냉장고 같은 것들이 그랬다.


요즘 시대에는 기능을 줄이거나, 두 가지의 기능을 합하거나, 기존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들을 바꾸는 것을 혁신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쿼티 키보드가 있는 것을 화면으로 줄이고,

홈 버튼을 눌러서 비밀번호를 눌러 들어가는 것을 지문인식으로 한 번에 합하고,

둥글고 귀여웠던 아이콘을 플랫한 디자인으로 바꾸거나, 몇 가지의 위젯만 보여주던 것을 묶어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이 글에 앞서 애플이 아이폰7의 이어폰 단자를 없애며

하드웨어 측면에서 스마트폰을 고민하는 방식, 사용자가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행태에 대한 고민 그리고 미래에 어떤 기술을 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애플의 관점을 언급한 적이 있다.


여전히 이어폰 잭을 없애고, 업계에 USB-C를 알리는 등 다양한 것들에 대해서 대단하다고 평가한다.


같은 맥락으로 이번 아이폰X의 Face ID는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혁신이 UX의 측면에서 후퇴할 수 있다.


혁신이라는 것은 가내수공업에서 대량 생산체제로, 대량 생산체제에서 다품종 소량으로 가는 패러다임의 변화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방식이 바뀌고, 그것에 사람들이 '편하게' 익숙해진다면 그것도 하나의 혁신으로 바라봐야 한다.


물론 Face ID는 익숙해지기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닫는 글


몇 주째 애플의 역사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다.


애플의 다큐멘터리, 스티브 잡스의 책, 애플에 관한 해외 인터뷰 등등 다양한 것을 모으고 정리하는 중이다.


그것들은 애플의 제품 그 자체 말고도 플래시 기술을 지원하지 않거나,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 Swift 등장 등 다양한 외부적인 것들을 포함한다.


추측컨대,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의 이미지처럼 '진짜로' 자신의 생각과 의지가 굉장히 뚜렷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기업을 이끌어 나가는 입장으로서 몇 가지 인터뷰에서 그것들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사실 모든 기업의 경영자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래에 어떤 기술이 유망할지를 판단하고 그것을 과감히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시장에서 확인하는 것.'


애플이 잘못 만들었다면 혹은 소비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한다면 (사실 두 가지는 같은 말이다.) 

시장에서는 처참히 평가받을 것이고, 결국 애플은 다른 길을 택할 것이다.


대학원 초기에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 "반도체와 같은 기계를 생산하는 업계에서 각자 나름대로의 표준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제품이 나온다고 생각해보자. 예를 들면 1의 기업은 1의 방식의 DVD 영화를 생산하고, 2의 기업은 2의 방식의 DVD 영화를 생산한다.


삼성이라면 어떻게 제품을 만들 것 같냐?"


- "글쎄요."


- "삼성은 둘 다 만들지. 그래야 둘 다 팔 수 있으니까."


그때는 삼성에 계셨던 분이었기에 삼성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이제 와서 느끼는 것이 있다.


'애플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나만 택하거나 3을 만들었을까?'


'아니면 혹시 둘 다 없애려고 하지 않았을까?'


혁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였다면 그렇게 안 했을 텐데'

'스티브 잡스의 정신은 어디 갔나?'


혁신을 너무 추상적이고 급격한 무언가로 보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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