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순간, 여행에 더 집중하기 위하여.
이 글은 미디엄에 먼저 쓴 글입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매우 특별하지만 동시에 소소한 일상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는 비싼 돈을 주고 스튜디오에서 사람들과 멋있게 화보처럼 사진을 찍기도 하고 휴대전화로 음식 사진을 찍으며 일상적으로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학교 행사 사진 촬영을 하며 사진을 찍어왔지만 한 번도 사진에 대한 철학이나 특별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최근까지도 ‘그때의 기록을 남기는 기술이다.’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죠.
그도 그럴 것이 라이트룸, 포토샵 등 사진 보정 프로그램을 다루며 사진은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고 수정할 수 있는 어떤 물체 정도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사진이 찍힌 원본과는 전혀 상관없게 말이죠. (잡지나 책에 실릴만한 상업적인 사진은 원본이 매우 중요할 수 있겠습니다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동아리 활동이나 개인 출사를 제외하고는 별로 없었고 다량의 사진을 찍거나 모으는 일도 자연스럽게 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사진을 왜 찍을까.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고 있을 때 처음 중국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저는 지금까지 유럽(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중국, 홍콩, 미국(하와이, LA)을 여행하며 셀 수 없을 정도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여행을 다닐 때는 사진을 많이 찍는 것이 나중에 추억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보고 즐기는 것보다 사진을 더 중요시하며 여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때의 사진을 저장한 이후로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본다 하더라도 수많은 사진을 넘겨보며 그저 그랬구나 덤덤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여행 자체의 소중함보다는 많은 사진을 남겼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평소에 그런 생각을 가지다가 문득 이런 사진을 보게 됐습니다.
수많은 휴대전화 사이에서 홀로 휴대전화 없이 광경을 즐기는 노인의 모습.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은 자신이 직접 보는 것보다 기록을 남기고 공유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것이 개인의 삶에 있어서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제가 가치 판단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경험을 쌓는 것보다는 기록하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구경하고 경험하는 것보다 사진을 남기고 그것을 자랑하는 것이 항상 우선순위가 된 자신을 발견합니다.
동시에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어쩌다 나는 내 경험보다 기록을 앞서 생각하게 되었을까라고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여행의 목표와 비슷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해외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히고, 경험을 쌓고, 휴식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돌아와서 생생하게 추억하고 싶죠.
여행을 생생하게 추억하는 것은 사회생활에서도 하나의 활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본 글에 아시아인들은 유독 여행에 가면 사진에 집착한다는 글을 봤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여러 서양과 동양의 문화를 비교하는 글에서도 접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웠지만 대체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고 느꼈죠. 어디를 가든 단체 사진을 의례적으로 찍거나 사진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아시아인이었습니다. 한국인인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렇다고 여행에 가서 많은 사진을 남기는 것이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것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회에서 태어나서 죽는 데까지의 과정에서 삶을 향유하는 방법은 각자 다른 법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사진에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앞으로의 삶에서는 조금 더 가치 있는 여행을 원합니다.
적어도 사진 한 장 한 장을 살펴보며 그때의 소중함의 1%라도 더 느끼고 싶습니다.
마침 이번에 부산 여행을 떠나게 되어서 어떻게 하면 여행을 조금 더 가치 있게 사진을 통해 기억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한 여행에서 사진의 제약을 두면 어떨까?’
한 장의 사진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요즘 카메라가 필름 카메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앉은자리에서 수 천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죠. 지금 찍는 사진이 잘 나오지 않더라도 다음 사진이 잘 나올 수 있으므로 수많은 사진을 찍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횟수에 제약을 두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여행에서 10장의 사진만을 찍을 수 있게 한다면요?
그럼 1장의 사진이 조금 더 소중해지지 않을까요?
이런 제약은 당연하게도 여행에 있어서 소중한 순간을 발견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10장 중 1장을 지금 찍어야 한다면 지금이 매우 소중한 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여행에 있어 단 10장의 사진만 찍어야 한다면 지금이 가장 소중한 때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아직은 소중한 때가 오지 않았다고 끊임없이 판단해야 합니다. 여행 첫날에 10장의 사진을 모두 찍어버리면 다음 날에 보게 될 환상적인 장면은 카메라에 담지 못할 테니까요.
저는 이 생각이 제 여행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름하여 <하나의 여행에서 10장의 사진만 찍기 프로젝트>.
영어로 하면 10 pics for 1 trip 정도가 될까요.
그리고 나름대로의 몇 가지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 번째 원칙은 여행의 기간이 얼마든 10장의 사진만을 찍도록 노력하기입니다. 여행이 3일이 되든 6개월이 되든 1년이 되든 제가 ‘여행'이라고 규정한 활동은 10장의 사진만 찍는 것이죠. 물론 다른 사람에게 찍히는 것은 제외합니다. 제 여행의 영역인데 다른 사람의 여행에 지장을 주면 안 되겠죠.
두 번째 원칙은 최대한 마음에 들 때까지 찍기입니다. 한 자리에서 1장의 사진을 찍기로 선택했다면 꽤나 고집을 부려서라도 최선의 사진을 찍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최고의 사진이 나왔다고 판단했다면 그 자리에서 즉시 그 사진을 제외하고 모든 사진은 삭제합니다. 그래야 미련 없이 자리를 뜰 수 있을 테니까요.
세 번째 원칙은 내가 찍은 사진을 인화하기입니다. 요즘은 사진 인화를 사업으로 하는 업체들이 많아서 좋은 품질의 사진 인화를 저렴한 가격으로 인화할 수 있습니다. 한 여행에서 10장의 사진밖에 없으니 각 사진을 보며 추억하기도 쉬울 것이고 사진을 인화했으니 디지털 파일로 있을 때보다 더 많이 보며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네 번째 원칙은 후회하지 않기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여행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도, 원하는 사진을 찍지 못했어도 그 여행 나름대로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인정하고 만족하는 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은 여행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무엇을 경험했는지라고 생각하니까요.
마지막 원칙은 앞서 원칙을 모두 지키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10장의 사진을 찍겠다고 생각했다면, 10장의 사진만 찍도록 노력합니다. 그리고 혹여나 11장, 12장의 사진을 찍어 10장을 초과했다면 여행 마지막 날이나 집으로 돌아와서 10장을 제외한 모든 사진을 삭제할 수 있는 과감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렇게 할 것이 었다면 장 수 신경 쓰지 말고 수 백장 찍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죠.
우리는 여행을 하며 많은 것을 느낍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을까,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집으로 돌아가서는 어떤 것들을 해야 할까, 내가 온 이곳의 사람들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사는 것일까.’ 등 다양한 것들을 생각하고 경험하며 성장하죠.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에게서 여행이 그토록 소중한 시간이었다면 그만큼 생생하게 회상하고 떠올리는 것도 하나의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겁니다. 이미 앞에서 올린 어떤 한 분은 여행을 다녀온 기억 하나로 살아가시는 것 같네요.
기록하는 것보다 경험하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이 더 소중할 수도 있습니다.
여행에 대한 가치판단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에 따른 기록을 남기는 것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여행만큼 사람마다 다양하게 다니는 것도 얼마 없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패키지여행을, 어떤 사람은 자유 여행을, 어떤 사람은 풍경 위주로, 어떤 사람은 음식 위주로 다니는 것을 본다면 알 수 있으니까 말이죠.
가장 확실한 것은 그 모든 경험은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유일한 순간에 경험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쁜 기억으로 여행을 마쳤다고 해도 다시 그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죠.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자신이 선택하여 떠난 여행이라면, 소중하게 추억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여행, 좋은 인생 아닐까요?
“우리는 목적지에 닿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
- 앤드류 매튜스
사진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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