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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 Oct 22. 2020

그래서, 계약을 한다는겨 만다는겨?

어설퍼도, 미국살이.

이제 원하는 조건을 특정했으니 매물사냥에 나섰다. 리얼토 지인이 우리 남편직장을 기준으로 5마일 내, 그다음은 10마일 이내, 그다음은 15마일 이내 이런식으로 범위를 점점 넓혀가면서 매물을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또 우리는 우리대로 Zillow를 열심히 써치했는데, 리얼토를 통하지 않고 직접 싸이트에 매물을 올리는 집주인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보스가 아파트 계약당시 코싸인을 해주셨는데, 아직 그 계약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중으로 코싸인을 부탁드릴 수는 없었다. 코싸인 없이 집을 렌트해야 한다. 리얼토 지인은 우리에게 월세를 몇달 치 까지 일시불로 낼 수 있는지 미리 조율해놓으라고 일러주었다. 그래야 집주인과 네고가 가능하다고 말이다.


개인소유매물의 경우, 렌트계약이 성사되면 집주인이 본인 리얼토와 세입자의 리얼토에게도 수수료를 주어야 한다. 때문에 어떤 집주인들은 그 돈을 아끼기 위해서 리얼토 없이 직접 직거래를 하기를 원한다. 그래서인지, 리얼토인 지인을 통해서는 매물들은 많이 볼 수 있는 반면에 집주인과의 컨택이 잘 이뤄지지가 않았다.


남편이 직접 마음에 드는 매물의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남겨서 집을 구경할 날짜를 조율했다. 여기 집주인들도 나름으로 조건들이 마음에 다 있어서, 조건에 맞지 않는사람(우리!)의 연락은 쿨하게 씹어버렸다.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된 우리는 크레딧이 없기때문에 연락드린 집주인들 절반이상이 답변조차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 크레딧이 없는 대신 몇 달치 월세를 일시불로 지불할 의향이 있는 우리같은 세입자를 원하는 집주인도 있으니까. 한 2주일은 세가족이 함께, 혹은 남편 혼자서 매일매일 집을 보러 나갔다. 그러나 아직 우리집은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동안 지인이 이메일로 리스트를 보내준 것 중에 마음에 드는 한 매물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그 집에 현재 살고있는데, 이 집을 계약해 들어가 살기까지 정말 쉽지않은 여정이었다.




1차서류 통과

컨택을 부탁드렸는데 집주인은 세입희망자가 직접 컨택하기를 원했다. 컨택했더니 본인이 만든 양식에 맞춰서 모든 질문에 답변을 작성해 이메일로 보내라고 하였다. 겨우 집을 구경하려고도 이렇게 하기를 원했다. 좋은 조건의 집이긴 했지만 이렇게 까지 해야되나? 잠시 생각이 밀려왔다. 하지만 지금 찬밥더운밥을 따질 때가 아니다. 우리의 신상을 탈탈 털어내려는 본심이 가득한 그 신청양식에 남편과 함께 성실하게 답변하여 집주인에게 보내드렸다. 그리고 곧 얼마되지 않아서 집을 보러오라고 연락이 왔다.


남편의 직장에서 차로 5분거리에 있는 타운하우스였다. 단지에 들어오려면 게이트를 통과해야 하는 안전한 커뮤니티였다. 조경이 잘 되어있어서 내가 지금 집을 보러온건지 리조트에 들어온건지 잠시 헷갈렸다. 조금 낡았어도 집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우리 아들이 집구경이 끝났는데도 나가기 싫다고 고집을 피울만큼 좋아했다. 당장 모기지론을 달달이 갚아나가야 하는 집주인은 마음이 급했고, 크레딧이 없는 대신에 1년치 월세를 일시불로 드릴 수 있다는 우리의 조건에 매우 만족했다. 집주인은 우리와 헤어지면서 계약서류를 뭐뭐 챙겨서 보내달라했다. 오, 드디어, 드디어 계약으로 이어지는구나...!


 2차서류 제출

 집주인은 우리의 여권, 비자, 잔고증명, 남편의 현 직장재직을 증명하는 서류, 현 소득증명에 더해서 한국잔고증명, 그리고 한국에서 다녔던 전 직장의 몇달 치 월급명세, 전 직장 아이디;;;까지 싹 다 받아보기를 원했다. 아니 집구경 신청메일도 무지 장황하게 보내드렸는데 뭘 이렇게까지 우리를 심사하려고 들까 생각이 잠시 들었다. 리얼토 지인에게 물어보니 미국에서는 세입자가 월세를 안내고 버틸대로 버티면서 집주인을 애먹이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고, 그래서 여기 미국에서는 집주인이 세입자를 들기 전에 까다롭게 구는것이 당연하다고 알려주었다. 이해해보기로 했다. 월세를 안내고 있어도 일단 들어가 살고있으면 경찰도 억지로 못끌어낸다나 뭐라나... 게다가 지금은 COVID19때문에 모두가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이니 더더욱 그럴만 하기도 했다.


양다리를 당당하게 걸치겠다고...?

그렇게 서류를 모두 제출했다. 우리는 이 집을 먼저 찾아서 소개해준 지인에게 이미 계약이 다 성사라도 된 것마냥 감사하다는둥, 우리 이사하고나면 와서 식사하시자는 둥 김칫국을 사발로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의 폰으로 문자가 틱 날라왔다.


 "또 누가 집을 보러온대. 나중에 다시 연락줄께."


헐? 뭔소리토킹어바웃...? 세입자 선발대회라도 열겠다는 것일까?! 아무리 자기 입맛에 맞는 세입자를 찾겠다지만 이건 너무한거 아닌가? 서류는 다 받아놓고서 다른 후보를 더 확보하겠다니, 이게 지금 무슨상황임?? 차라리 서류를 받아보니 맘에 안든다면 이해라도 하지. 우리는 마음이 상해버렸다. 지인에게 연락해서 "여기 집주인 좀 이상해요, 저희 다른 집 찾아볼께요."라고 말하며 자초지종을 말해드렸다. 그랬는데 뜻밖에 이런답이 돌아왔다.


"여기 미국에서는 집주인이 슈퍼 갑 이에요. 싫다고 한게 아니라 기다리라고 한거면 기다려봐요. 오히려 여러분을 세입자로 들이면 너네에게 이득이라는 식으로 어필을 해보세요!" 아니, 지금 빈정이 상하는구만은 오히려 더 비위를 맞춰보라고...?


세입자 전형 탈락

맞춰봐야지. 별 수 있나. 급한쪽이 할말없지. 우리는 지인의 코치를 받아 문자로 우리를 열심히 어필했다. '우리는 한국사람이라서 집안에서 신발을 안신으며 청소를 매우 자주한다. 우리는 홈어플라이언스를 고칠 수 있는 기술이 있기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금방 무슨문제인지 파악해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너의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 우리는 이제 막 미국에 왔는데 너희 매물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그러니 우리가 좋은 시작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기대하겠다.' 하지만 일주일이 다 가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다.


집주인의 뒷통수(?!)

우리는 계속 집을 보러 다니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괜찮은 매물을 보고 우리만 결정하면 계약을 진행할 상황까지 와 있었다. 그런 어느날. 전에 그 집주인에게서 불쑥 연락이 왔다. "너네, 아직도 우리 매물에 관심이 있니?" 헐. 뭐야 이사람? "아우, 여보! 그냥 너네랑은 계약 안한다고 해! 뭐 이런경우가 다있어? 아무리 자기네가 슈퍼갑이라지만 사람을 간보는거야 뭐야?! 일주일동안 문자한통 안해줬으면서 염치가 있으면 미안하다는 말이라고 해야되는거 아니야??"


하지만 리얼토의 생각은 달랐다. 일단 그 집은 지금까지 본 집들 중에서 직장에서 가장 가깝고, 커뮤니티도 안전하고, 무엇보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렌트비가 평균 렌트비보다 2-300달러정도 싸게 나온 집이니 무조건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말이다.


면접봅시다

하아, 오케이. 지인의 조언을 또 한번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신 기분이 많이 나빴기 때문에 월세는 1년치 말고 반년치만 미리 낼 수 있다고 조건을 변경했다. 집주인은 그래도 좋다고, 다만 본인 와이프가 우리를 믿을만한 사람들인지 더 알아보고 싶어하니 며칠 뒤 ZOOM(온라인 화상회의앱)으로 만나자고 했다. 말이 좋아서 만나자는 것이지, 이건 뭐 면접보자는거 아닌가 싶었다. 그 남편집주인은 집구경하면서 1차면접으로 만났고, 이제 와이프는 2차면접인가? 아 정말 내가 한국사람이라서 그런건지 아님 꼬일대로 꼬여서 그런건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리얼토 지인도 약간, 아, ZOOM으로 한번 더 만나재요? 라며 어조가 약간 맹꽁해졌다. 그래도 같은 커뮤니티에 있는 동급 매물들 보다 집세가 2백불이상 저렴하니 일단 한번만 더 참아보기로 했다. 돌아오는 토요일 오후 다섯시로 약속이 잡혔다. 상황의 전개가 하도 기가막혀서 약속시간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여기까지도 환장하겠구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NO SHOW

누가? 면접자가? 아니, 면접관이!!! 약속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는것이다. 이젠 화가 나지도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어디까지 엿먹일 수 있는걸까,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좀 있다가 연락이 왔다. "아, 기다리게 해서 미안." 우리는 이사를 빨리 나가고싶은데 계약을 질질 끄는것에 불만을 제기했고, 집주인은 급기야 "내가 너네를 계속 붙잡고 있을 순 없는 것 같아. 다른집도 알아보면서 기다리도록 해."라고 답변이 왔다. 매우 공손하게 왔는데, 그렇게 기분이 나쁠수가 없었다. 늘 한결같이 우리의 멘탈을 다잡아주던 리얼토 지인도 이번만큼은 집주인이 좀 심한분같다며 굳이 기다리라고 말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집주인 연락이 다시 오기전에 진행하고있던 매물을 계속 진행하기로 합의를 봤다. 아, 이제 끝이다.


집주인의 두번째 뒷통수(!?)

렌트비 조율이 끝났다. 대강 다 마음에 드는 집인데 한가지, 에어컨 가동할 때 나는 소음이 거슬린다고 말했더니 선뜻 수리해주겠다고 시원하게 나왔다. 다음주 월요일까지 고쳐놓을테니 와서 확인하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시어른과 통화를 하면서 "이 집으로 결정했어요!"라고 말씀드렸다. 월요일이면 바로 다음날이니까 확인 후 바로 계약을 하기로 했다. 이제 드디어 지옥을 벗어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기쁠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먼젓번 그 집주인이 문자를 틱 보냈다. "계약을 진행합시다, 지금!"


아니 뭐 세상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 진짜..... 아니 여보, 당장 계약하자 야호!!! (집이 그만큼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두번 겪으라면 못할 짓인데, 아파트에서 가급적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이 이 모든 과정을 견뎌냈다. 막상 계약을 하고 살면서 겪어보니, 이 집주인은 약아빠진 갑질쟁이 집주인이 아니라 그저 우유부단하고 와이프에게 휘둘리는 다소 측은한(?) 아이 셋 키우는 이시대의 가장에 불과했다. 우리가 집을 구경하러 왔던 그 날부터 우리랑 계약하고 싶었는데 와이프가 더 많은 후보자들을 만나보고 결정해야 된다고 고집을 피워서 시간이 오래걸렸다고 얼마나 사과를 했는지 모른다.


이 집은 항상 지인들에게만 세를 놓다가 정식으로 세입자를 처음 들이는 것이라 본인도 많이 불안하고 그랬다며, 이 집에 들어와줘서 고맙다고 연신 땡큐를 연발했다. 게다가 얼마나 어리버리하신지 아직 계약상 렌트개시날짜가 며칠이나 남았는데, 우리 남편한테 집키를 그냥 미리 주고 돌아가다가 리얼토라는 친구한테 혼나고서는 다시 돌아와 키를 도로받아갔다.


우리는 정확히 계약 후 2주뒤에 이사를 들어왔다. 소음과 진동으로부터 벗어나서 행복하고, 아들은 얼마든지 걷고 뛰어도 되는 집에 살아서 행복하다. 작은 개울가에 어슬렁거리는 오리들과 나무사이를 뿅뿅 오가는 청설모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 아, 드디어 우리의 안식처를 찾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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