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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 Nov 05. 2020

그들이 어린이를 대하는 법.

어설퍼도, 미국살이.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쭉 살아왔다. 낯선 이방땅에서 지난 몇달간을 지내보니 자연스럽게 한국과 다른 점들이 때로는 장벽처럼, 때로는 다른 온도의 공기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가장 부딫히는 언어, 제각각 다른 모습의 동네의 주택들, 공원에서 만끽하는 너른 풀밭과 파란 하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일단 길에서 마주치면 낯설지만 건네는 가벼운 인사 등등이다. 그 외에도 정말 여러가지의 다른점들을 많이 꼽을 수 있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가장 크게 다가오는 차이라면 어린이를 대하는 이곳 사람들의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약 십년쯤 전 아직 미혼일 적에 인터넷에서 한 토막의 글을 읽은적이 있다. 글쓴이는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학교도 잘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날부터인가 집 앞에 자꾸 경찰차가 와서 서있더란다. 하루는 글쓴이의 아버지가 무슨 문제로 우리집앞에 매일 와 있는건지 해당 경찰관에게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우연히 보니 당신이 자녀를 대하는 태도가 강압적이기에,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가정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매일 이곳을 들르고 있다." 그러면서 그 경찰관이 어린 글쓴이에게 말하길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주저말고 연락을 다오."했다는 것이다. 글쓴이의 아버지는 한번도 폭력이나 폭언을 행사한 적 없는 평범한 아버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잠재적 가정폭력범으로 우려섞인 시선을 받았다는 사실에 아버지는 충격을 받았다. 결국 가부장적인 색깔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글쓴이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어린이를 대하는 두 나라의 차이를 드러낸다.


 글을 읽고 십년 전 당시 나의 반응은 '오, 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뭔가 존중받는구나. 부럽다.'였지만,  미국에 오면서는 '오, 내가 아무생각없이 행동한 것이 여기서 어떻게 비춰질까 걱정이야!'로 바뀌게 되었다. 자녀에서 부모로 나의 처지가 바뀐것이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오신 한국분들에게 들은 경고도 있었다. 차에 아이를 잠시라도 혼자두지 말것, 집에도 혼자두지 말것, 어디에든 아이를 혼자 두지 말것. 미국에서 그러면 큰일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정말로 어떤지는 나도 아직 모르겠다, 선배님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렇다고 받아들였다.)


 한번은 우리집 바로 앞에있는 커뮤니티 풀장에 아이랑 둘이 갔다. 물건하나를 깜빡했길래 집에 갔다오자 하니 아이가 귀찮다고 자기는 풀장에 있겠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입씨름을 하기 싫었던 나는 아이에게 물에 들어가지 말고 썬체어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주의를 단단히 준 다음에 잽싸게 집에 다녀왔다. 우리집 현관문에서 열걸음도 안되는 거리여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건만, 풀장에 도착해보니 아이가 혼자있는것을 발견한 백인 할머니가 풀장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엄마가 금방 나타났고 아이가 안전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마음을 놓은 할머니는 몇마디 인사를 나눈 후 금새 사라졌다. 처음엔 아차, 내가 정말 잘못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아, 정말 감사하게도 그분은 처음보는 우리 아이를 걱정해주었구나.


 이곳에서 지내는 지난 몇달동안, 이 나라의 어른들이 우리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낯모르는 동양인 어린이가 손을 흔들면 그 어떤사람도 웃으며 화답해주었다. 차를 운전하는 아저씨는 속도를 줄이고 눈을 마주쳐주었으며, 지나가는 화물기차의 기관사는 기적소리를 뽕뽕 울려주었다. 험상궂게 생긴 덩치 큰 흑인아저씨는 눈웃음을 지으며 "너 운동화가 진짜 멋진데!”라며 엄지척을 하고 지나갔고, 부유한 백인부부는 박물관에나 있을법한 멋진 올드카를 보며 감탄하는 아이에게 "차에 한번 타볼래? 엄마가 사진을 찍어주면 멋질거야"라며 기꺼이 차에서 내려주었다. 해변에서 지나가다가 아이가 강아지에 관심을 보이니 바로 멈춰서 함께 시간을 보내주고 사진도 찍어준다. 이 모든것은 물론 호의이기도 하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그들이 어린이에게 잘 해주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멋진 경험을 할 권리가 있고, 존중받을 권리가 당연히 있으므로 이러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이는 날아갈 듯이 기쁘고, 나는 내 아이가 누구를 행여 번거롭게 할까봐 전전긍긍 하다가 오히려 벙 찌게된다.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갓 1학년이 된 아이의 (온라인)수업시간이었다. 영어를 아직 익히지 못해 모든면에서 느리고 쳐지는 아이를 담임선생님은 한번도 답답해하거나, 무시하거나, 알아서 따라오라는 식으로 대강 넘어간 적이 없다. 영어로 글씨쓰는것이 서툴러 과제를 수행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정말 언제까지가 되었든 끝까지 기다려주신다. 아직 다 못한 친구의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도록, 과제를 끝낸 친구도 카메라 앞을 떠나지 않도록 주의를 주시기도 한다. 결국 과제를 마친 아이에게 "나는 너가 어려운 도전중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있어. 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해냈어. 너가 정말 자랑스러워, 정말 잘했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 아이가 특별해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단지 어린이라서, 배우는 기간이라서, 자라는 중이라서 자연스레 이해해주고 기다려주고 격려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 엄마로서 그런 장면들을 발견할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마치, 이 모든 사람들이 이 작은 인격체의 성장에 함께하는 것 처럼 든든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닐테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단도리를 해야하는 존재가 아니라, 아직 어리고 미숙한 그야말로 '어린이'로서 이러한 이해와 배려를 제공받으며 자라난다면 어떤 사람이 될까? 처음 미국에 올 땐 그저 영어를 잘하게 되겠구나, 라는 기대밖에 없었던 미숙한 엄마는 비로소 아이의 장래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는 없는것을 가지고 자라날 내 아이가 나는 솔직히 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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