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경찰들이 몰려온 날

어설퍼도, 미국살이.

by 나름

한가로운 토요일 점심이었다. 직장생활을 갓 시작했던 나는 주중의 피로를 씻어내는 달콤한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약간 이른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남편은 일주일간 쌓아뒀던 빨래를 건조기에서 꺼내 소파위에 늘어놓았고 정갈하게 개어놓는 중이었다. 우리 아들은 토마스기차 장난감을 꺼내어 거실 바닥에 기찻길을 깔고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그날 날씨는 햇살이 찬란히 부서지는 아름다운 오렌지카운티의 평소날씨 그 자체였다. 모든것이 완벽했다, 내 아이폰이 오작동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이폰4부터 쭉 아이폰만을 써왔던 나의 기억속에, 폰이 오작동을 일으킨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지금을 기준으로 오작동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근데 좀 많이 치명적인.)


카톡이 울려 확인하고 싶었는데, 왜인지 화면이 터치를 인식하지 못했다. 남편이 계속 불러대는 통에 "여보 잠시만!"을 외치며 차라리 폰을 껐다가 켜자고 마음먹었다. 아이폰의 양 싸이드에 있는 두 버튼을 꾸욱 눌렀는데, 아이폰끄기 슬라이드가 되지를 않았다. 아, 화면이 터치인식을 못하는데 이걸 어떻게 끈담, 더 길게 눌러보자, 긁적긁적 하고있는데 엥 이게 왠걸 "911에 전화하기"가 화면에 뜨는것이었다. 어어, 이거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내 마음의 다급함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폰이 911에 이미 전화를 걸고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전화 취소버튼은, 터치가 인식되지 않아 눌러지지도 않았다. 황당했다. 억겁같은 1~2초가 흐르고 결국, 누군가 Hello?라며 내가 결코 바라지 않던 응답을 해왔다. 여성이었고, 부드럽지만 강한 심지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너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지만, 내가 그 문제를 기어코 알아내서, 반드시 해결해주고야 말겠다는 그런 의지가 느껴지는.


미국에 온지 일년도 안된 나는 말 그대로 펄쩍 뛰었다. 아이폰이 오작동해서 전화가 갔는데, 너를 번거롭게 해서 정말 미안해, 끊을께, 좋은하루 보내, 라고 영어로 말할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되어있었다. 영어를 좀 더 매끄럽게 구사하는 남편에게 내 아이폰을 거의 던지다시피 넘겨주었다. 남편은 나의 다급한 입모양을 읽어가며 전화속 여성분에게 "지금 아이폰이 오작동을 해서 원치않는 전화가 갔고, 정말 미안하고, 우리집에는 아무일이 없으니 전화를 끊고싶다고" 전했다. 그 당시에는 갑자기 벌어진 말도 안되는 상황에 허둥댄것인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건 정말 크나큰 실수였다. 911은 걸려온 전화번호의 주인이 여자라는것을 이미 알고있었다. 그리고, 여자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웬 남자가 "아무문제 없어, 끊을께"라고 말하는것이 911에게 "신고자가 큰 위험에 처했다"는 신호일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전혀 알지못했다.


남편의 얼굴표정을 보니 상황이 원치않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작은 한숨을 내쉰 남편은 나에게 폰을 다시 돌려주며, "번호의 주인과 통화하지 않고서는 전화를 끊을 수 없대" 라고 조그맣게 말했다. 나는 후~ 깊은 심호흡을 한 뒤 전화를 받았다. 폰이 오작동을 일으켰다고, 나는 아무일 없다는 설명에도 911의 여성은 단호했다. "너의 안전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경찰이 10분내로 갈거야." 라는 통지에 나는 말그대로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전화를 어떻게 끊었는지도 모르겠다.


약 5분정도 지났을까,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엄청난 체격의 경찰관들이었다. 집안을 수색해야한다고 말했고, 우리는 현관문을 크게 열어주었다. 서너명의 경찰들이 다소 경직된 얼굴로 조심스럽게 집안으로 들어가 수색을 시작했다. 하, 이게 먼일이여, 이마를 짚고있던 내 어깨를 누군가 톡톡 건드렸다. 뒤돌아보니, 또 경찰관들이 여러명 서있었다.


집 밖으로 잠시 나와보라는 말에 얼른 쓰레빠를 신고 현관문으로 열발짝 정도 걸어나왔을때, 그들 중 한명이 한국말로 이렇게 말하는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을정도로 놀라서 토씨하나 틀리지않고 기억난다. "부인, 지금 부인은 안전합니다. 아무것도 걱정마시고 무슨일이 있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저희가 부인을 도와드리겠습니다." 911은 내가 한국사람인것을 확인하고는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경찰관을 함께 출동시켰던 것이다.


만약 내가 정말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상황이었다면 눈물나게 고마웠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눈물나게, 정말 너무 눈물나게 부끄럽고 죄송하고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난 정말 진심을 최대한 담아, 나의 입술만을 쳐다보고있는 경찰관들에게, 나의 폰이 오작동했고 우리집은 아무일 없다고 다시한번 말씀드렸다. 정말 여러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이런곳에 쓰게 해서 너무너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경찰관들의 답변을 들으려는 찰나, 집 수색을 마친 경찰관들이 현관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들어갈 때와는 달리 밝은 표정에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당연하다, 부엌에 뚝배기에서는 된장찌개가 보글거리고 있었다. 거실 한켠에서는 남편이 개키던 빨래들이 쌓여있었고, 우리 아들은 "와우, 폴리스가 우리집에 들어왔어~~!!!"라며 신이나서 소파위를 점프하며 까르르 웃어댔다. 샅샅이 뒤져봐야 나오는건 가정폭력의 증거가 아니라, 나의 게으름의 증거들ㅠㅠ 뿐이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무얼 느끼고있는지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삼키며 경찰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그들은 한결 가벼운 말투로 마지막인사를 건네며 주차장방향으로 사라졌다.


내 인생에, 가장 긴 5분이었다.


그날 저녁, 이 동네에서만 30년 넘게 살았다는 옆집 스티브 아저씨의 입을 통해 경찰차가 총 7대가 출동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되었다. 내가 몰랐던 더 많은 인원이 뒷마당쪽에서 총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고, 은퇴한 노인들이 주로 모여사는 평화로운 커뮤니티에 아주그냥 크나큰 구경거리였다고 말이다. 사건사고가 잦은 지역을 지나갈때면 경찰차가 출동한 것을 가끔 볼 수 있는데, 경찰차가 세대이상 출동한것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 때문에 일곱대가 왔었다니, 내가 도대체 어떤 심각한 실수를 저지른 것인가 다시한번 머리가 하얘졌다. 그리고 혹시모를 가정폭력의 가능성에 911과 경찰이 보여준 대처는 정말 단전에서부터 뿜어져나오는 감탄을 금할길이 없었다. 아저씨가 "나는 너네집 아무문제 없는줄 알고 있었다구~" 수다를 떠는 소리는 귓바퀴를 돌아 허공으로 흩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뭘 어쨌냐고?

아이폰을 열어서 Emergency SOS 기능을 꺼버렸다. 내 인생에 다시는 이런 번거롭고 번거롭게 해드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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