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ood의 시대, 아들 도시락싸기

어설퍼도 미국살이

by 나름

미국 켈리포니아에 이사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 고딩아들 둘 키우는 친구가 이런말을 했었다. “아니 애들 학교밥이 공짜인데, 너무 맛이없다고 난리여서 내가 지금까지도 아들놈들 도시락을 싸고있잖아.” 아이구 아들들이 유난이라 힘드시겠네, 그런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며칠 뒤 내 아들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엄마, 학교밥이 너무 맛이 없어서 도저히 못먹겠어요. 도시락 좀 싸주세요.”


나는 아들에게 물어봤다. 학교밥 안먹는 애들은 뭘 가져와서 먹니? 그랬더니, 대답이 기가 막혔다. 오늘 누구는 초코칩쿠키 두개, 누구는 골든피쉬크래커 한봉지, 누구는 애플소스에 당근을 찍어먹었대나, 그리고 누구는 마트에서 파는 “런처블”이란 것을 맨날 가져와서 먹는데 정말 맛있어보인단다. 그래서 바로 집근처 수퍼마켓에 가서 그 런처블이라는 것을 사왔다. 그리고 매일 아이의 책가방에 하나씩 넣어주었다. 처음 한주동안은 아이가 만족스럽게 먹는 듯 했는데, 금요일 쯤 되자 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엄마, 도시락 싸주세요.” 그렇게 나의 도시락싸기 일상이 시작되었다.

이런것들을 마트에서 키즈 도시락으로 절찬 판매중


도시락을 싸주기로 약속을 하고보니, 무얼 싸주느냐가 문제였다. 계획같은거 못하는 나는 매일아침 나의 냉장고가 허락하는 메뉴를 얼레벌레 싸주었다. 샌드위치를 싸는날이 대부분이었고, 늦잠자서 그것도 할 시간이 없으면 걍 땅콩버터와 딸기쨈을 바른 빵을 넣어주었다. 냉동실에 만두가 있으면 에어프라이어에 돌려서 싸주었고, 트레이더조에서 가져온 냉동 볶음밥이 있으면 그걸 마이야르 반응이 충만해질 때까지 팬에 볶아 넣어주었다. 주먹밥도, 정말 가끔씩은 잡채도, 돈까쓰도 냉장고에 있으면 한번 싸주고, 그렇게 도시락싸는 일상은 수년간 계속되었다. 한번은 계란볶음밥에 깍두기를 넣어주는 무신경하다 못해 정말 너무한 도시락도 싸보낸적도 있다. 나중에야 깨닫고 너무 걱정했는데, 아이가 친구들에게 별소리를 안들었다고 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평소에 내가 너무 좋아해서 직접 해먹기시작한 “김밥”도 아이의 점심 도시락메뉴로 점점 자리잡기 시작했다. 처음에 김밥을 싸는것은 큰 일이었으나, 하도 많이 만들어먹다 보니, 결국 30분이면 대강이지만 뚝딱 아이 도시락정도는 김밥으로 싸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단촛물을 써본적이 없어서, 무조건 참기름을 사용했다. 내가 듣기로 미국사람들은 참기름의 향을 싫어한다는데, 그 향이 스컹크의 지독한 냄새와 비슷하다나 뭐라나. 하지만 나는 다른 방법 없었다, 참기름 팍팍 넣어 밥을 양념하고, 김밥에도 참기름을 열심히 맛사지해서 깨까지 뿌려 마무리하곤 했다.


아이에게 굳이 오늘의 도시락이 어떻냐고 물어보진 않았다. 그저 도시락통이 비어있으면 맛있었나보다, 덜 비어있으면 입에 안맞았나보다, 하면서 팔로업을 해나갔다. 잘먹는 메뉴는 더 자주, 잘 남겨오는 메뉴는 좀 덜 싸줬다. 점점 샌드위치의 빈도가 낮아지고, 김밥도시락의 빈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일주일에 아무리 못해도 한두번은 김밥을 꼭 싸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김밥을 싸준 아이의 도시락통이 완전히 비어서 돌아온 오후, 아이가 하교하자마자 배가고프다며 먹을것을 찾는게 아닌가. “너 도시락통 텅텅 비었던데, 벌써 배가고파?” 그러자 돌아온 놀라운 답변. “엄마, 나 김밥 싸가면 애들이 하나만 먹고싶다고 하도 졸라대서 나는 몇개 못먹어…” 허. 그때부터 김밥도시락의 양을 두배로 늘리게 되었다. 친구들도 충분히 나눠주고, 너도 충분히 먹으라고.


김밥도시락을 싸준 날이면, 아이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오늘은 누가 줄을서서 김밥을 받아갔느냐고, 그러면 듣는 아이들의 이름은, 동양인 서양인 할 것 없고,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었으며, 아이와 평소에 놀던아이 놀지않던아이 할 것 없었다. 어느날은 자기한테 평소 친절하지 않았던 한 친구가 김밥을 요청하기에 냉정하게 거절했다는 슬쩍 통쾌한 후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면 이쯤에서, 나의 요리솜씨가 대단한가 착각할 수도 있으니, 다시금 여기 애들이 점심으로 무얼 먹는지 상기해보자. 초코칩쿠키 두개, 골든피쉬크래커 한봉투, 런처블. 내가 솜씨좋아서가 아니다, 그냥 음식의 카테고리가 너무 다른거다.


여기까지는 켈리포니아에 살 때의 경험이고, 올 여름 조지아로 이사를 온 지금은 어떤지도 보자. 어느새 아이는 6학년 중학생이 되었고, 이곳 조지아 체로키카운티는 동양사람 구경하기가 정말 힘든곳이다. 켈리에서 다니던 학교보다 반은 두 배로 많은데, 반에 동양사람은 얘 하나, 학년에 한국사람은 얘 하나인 그런 곳이다. 켈리에서는 아이학교 전체에 어두운피부 친구가 단 한명이었는데, 여기는 전체학생의 절반이 어두운 피부빛깔을 가진 곳이다. 역시, 흑인인구가 가장 많은 조지아주, 여기서도 나는 싸던대로 도시락을 싸주고 있다. 여기서는 어떻냐고? 켈리에선 줄서서 얻어먹던 김밥, 여기서는 친구들이 자기음식, 자기 간식 혹은 자기 용돈을 아이에게 쥐어줘가며 얻어먹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야, 김밥은 내가 싸는데, 그 돈은 나한테 줘야하는거 아니니?) 돈도, 한두푼이 아니라 오딸라를 주고, 무려 오딸라를 주고 김밥 한알을 친구가 사먹었다는 말에 “야, 돈은 좀 그렇다. 친구의 음식이랑 교환하는 정도로만 해.”라고 아이에게 조언해주어야 했었다.


심지어 김밥도시락이 한번 나올때가 되었는데 좀 늦어지면, 이제는 친구들이 아이에게 채근을 한다고 한다. "너네엄마가 김밥은 언제쯤 싸주실 수 있대냐?” 그런데 김밥만이 아니다. 나는 가끔 김자반을 넣어 작게 뭉친 밥에 김치/멸치/견과볶음을 넣어준 주먹밥도 싸주는데, 그것도 인기리에 팔려나간다는 것이다. “여기 애들이, 멸치를 먹어? 김치를 먹어?? 괜찮대???” 그럼 아이는 뭘 그런걸 묻냐는 표정으로, 어, 되게 맛있대, 한마디 했다. 야, 그게? 라고 반문하니, 아이는 정말 이런것까지 말해줘야되나 하는 심드렁한 눈빛으로, 엄마, 나 지금 우리학교에서 가장 좋은점심 싸오는 애로 유명해, 한마디 했다. 엄마가 싸주는거 다들 되게 맛있대.


아침마다 도시락싼다고 허우적대는 엄마를 아이가 기쁘게 해주려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절친 엄마에게서 이런문자를 받기전까진 말이다. 애들 주말에 만날일정 조율하다가, 그 말을 이렇게 전해들을줄이야.

그 말이 진짜였다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학기가 시작된지 한두달쯤 되면 열리는 학부모컨퍼런스(학부모와 선생님의 공식 1:1 상담시간)에서 담임선생님은 우리아이의 학업성취도에 대한 이야기는 “He is smart and clever.” 단 한마디 뿐, 온통 아이가 도시락으로 가져오는 어메이징한 푸드들에 대한 찬양이었다. 김밥을 정말 너무너무 하나만 먹어보고 싶었는데, 자기가 선생이라서 참았다, 걔가 잡채를 가져온 날은 내가 정말 참지못하고 한 5초동안 그 향긋한 참기름냄새를 킁카킁카 하고나서야 그 테이블을 떠날 수 있었다, 걔가 가져오는 점심은 항상 어나더레벨이고 모든아이들이 부러워한다, 같은 소리를 들으러 내가 차려입고 선생님을 만나고 왔다.


친구네와 담임선생님은 히스패닉도 아니고 그야말로 미국 동부출신의 말도 겁나 빠르고 완전 시크하신 찐 백인분들이시다. …바야흐로 케이푸드의 시대이다. 그 혜택을 받아 고민없이 도시락을 싸서 행복한 엄마이고, 당당하게 도시락을 여는 뿌듯한 아들이다. 행복하다고 해야겠지? 아직 6년을 더 도시락싸야한다, 힘내자.

아침에 오분만에 떡볶이해서 보온병에 담아내는 스킬 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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