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강아지를 입양하다

어설퍼도, 미국살이.

by 나름

그날은 정말, 한마디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날이었다.


원래는 해마다 겨울이면 함께 놀러가곤 했던 아이 친구네랑 함께 눈썰매를 타러 가기로 약속이 있었다. 이번에는 빅베어에서 제대로 된 눈썰매를 타기로 했다. 하지만 빅베어 근처도 가기 전부터 길이 심각하게 막히기 시작했고, 내비게이션으로 시간을 가늠해 보니 산 아래에 도착해서부터는 거의 주차장이었다. 썰매장에 도착할 때쯤 시간은 거의 해 질 녘이라니, 아무래도 빅베어는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플랜 b로, 마운틴 발디에 가기로 했다. 조금만 트래킹을 하면 눈을 밟을 수 있었던 지지난해의 겨울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핸드폰이 안 터지는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를 찾지 못하고 한 시간을 허비해 버렸으며 어렵사리 만나서 올라간 마운틴 발디에는 눈이 다 녹고 없었다.


그래서 플랜 c를 급히 마련했다. 산에서 가까운 Upland city hall앞에서 그날 플리마켓이 열린다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각자의 차에 올라타 업랜드 시청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을 해보니, 시간은 두시였고 플리마켓은 파장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고서는, 아, 오늘은 아닌갑소, 다음에 다시 만납시다. 그러고는 미련 없이 헤어지게 되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그 어떤것도 누군가가 조금도 허락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헤어진 후 우리 가족은 일단 화장실을 찾아 시청 옆 도서관에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보니 벽 한쪽에 웬 강아지들과 고양이들의 사진이 잔뜩 붙어있었다. 이게 뭐여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근처에 있는 shelter에서 입양을 기다리는 동물들의 사진이었다. 아이고, 오늘 아무것도 몬했는데, 강아지 고양이들 얼굴이나 보고 가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차를 몰아, 3분 거리에 있는 쉘터에 도착을 했다.


우리의 인적사항을 체크인노트에 작성한 뒤 입장했다. 고양이구역과 강아지구역을 두 바퀴를 돌아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동물냄새가 코를 찔렀고, 그리고 지루했다. 케이지에 갇힌 동물을 보는것이 뭐 그리 감흥이 있겠는가. 거의 모든 구석들을 다 살펴보았지만 크게 인상적인 부분은 없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돌아보고 갈까?” 그러고는 대형견 견사를 슬슬 지나가고 있었다. 개들은 우리를 보고는 한 번만 자기를 봐달라는 듯, 자기를 데려가달라는 듯, 대부분 짖어대고 낑낑거렸다. 그런데 아들녀석이 한 견사 앞에 서서 강아지 한 마리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어떤 개가 있길래,,,? 하고 들여다보니, 소형견사에 넣기에는 크고 대형견사에 있기에는 한눈에 작은;;; 애매한 크기의 갈색 강아지였다. 그런데 그 강아지는 다른 강아지들과 매우 달랐다.


일단, 우리를 본체만체 했다. 정말 심드렁하다 못해 우리가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듯 행동했다. 눈길도 주지 않았고, 짖거나 낑 소리 한번을 내지않았다. 견사마다 실내쪽과 실외쪽이 있었는데, 무관심한 태도로 실외로 휙 나가버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이가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 강아지를 보고 있었다. 나도 아이 옆에서 강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이상하게 귀여워 보였다. 다시 실내로 들어온 강아지는 여전한 태도였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보고 있었다. 조금 후 여보가 곁에 와서 함께 강아지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아지는 여전히 고자세였다. 짐짓 관심 없는 태도로 다시 실외로 나갔고, 별 할일도 없으면서 어슬렁대다가 다시 들어왔다. 우리는 계속 자리를 떠나지 않고 강아지를 지켜봤다. 또다시 강아지가 실외로 나갔고, 다시 들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강아지가 크게 미소 짓고 있었다. 어라? 여보 얘가 이빨을 드러냈어, 뭐지? 아니야, 강아지가 웃는 거야, 부정교합이라 그래 여보. 그리고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강아지가, 벌렁 바닥에 누워서 배를 보이고 낑낑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 나는 솔직히 매우 감탄했다. 이 강아지는 나름의 전략을 가지고 자신의 태도를 조절했던 것이다. 혹은 우리를 시험해 봤던 것이다. 자기를 꺼내줄 만큼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인지, 정확히 확인한 후에 신호를 보내온 것이다. 너는 전략가구나, 내가 졌다, 싶었다.


이쯤 되니 우리는 그냥 이 강아지를 지나칠 수 없는 심정이 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견사열쇠를 관리하는 직원이 이미 퇴근한 다음이라, 다음날 오후로 플레이데이트 약속을 잡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우리는 오전에 일정을 마치고는 점심을 먹자마자 바로 Upland로 차를 몰았다. 한시간이 십분같았다. 다시 만난 그 강아지의 이름은 클레어였고, 길에서 구조되어 쉘터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는 플레이데이트를 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작은 룸에서 그 강아지를 처음 직접 만났다. 강아지의 바디랭귀지를 조금 아는 여보는, 강아지가 매우 긴장한 상태임에도 스트레스를 견뎌내고 우리에게 나이스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클레어는 나와 여보보다는 아이에게 마음을 다해 애정을 보여주었다. 달려가 꼬리를 흔들어대고, 얼굴에 엄청난 키스를 퍼부어댔다. 정말, 너무, 너무나 사랑을 퍼부었다. 아이는 속절없이 바닥에 쓰러져 그 엄청난 키스를 받으며 곤란해하기도, 행복해하기도 했다. 말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정말 필사적이었기 때문에. 그마저도 너의 전략이었을까.


아이고, 얘는 우리가 데려가야 되나 보다, 하며 뒤를 돌아보니 여보는 이미 오피스데스크에 가서 강아지 입양신청서에 싸인을 휘갈기고 있었다. “왜 나랑 상의 없이?”같은 말은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저런 아이를 두고 관심 없어요... 하고 가버리는 것은 양심을 거스르는 일이 되고 말았다.


클레어는 아직 중성화수술을 받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수술을 받고 회복을 한 다음에야 입양처로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업랜드는 주중에 다녀올 거리가 아니었던지라, 클레어를 다음 주말에 데려나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견사에 붙어있는 클레어의 딱지에는 “입양됨”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이제, 클레어는 우리강아지가 된 것이다. 플레이데이트가 끝난고 다시 견사에 넣어진 녀석은 창살에 매달려 절망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아이고, 강아지는 일도 모르는 내가 봐도, 저 눈빛이 뭘 말하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좋은시간 보내놓고 왜 자기를 안데려가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

아니, 우리, 좋았던거 아니었어...? 나만 그런거야...? 라고 말하는듯


걱정 마, 우리는 다음 주에 너를 다시 데리러 올 거야. 그때까지 수술 잘 받고, 주사도 잘 맞고, 잘 쉬고 있어. 다음 주에 보자.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강아지의 이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쿡싸람인 우리에게 클레어라는 이름은 미드 여주인공에나 어울리는 이름인지라, 강아지다운 어떤 다른이름이 필요했다. 우리는 녀석의 이름을 “모카”라고 다시 지었다. 매력적인 갈색털에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어떤 물품들이 필요한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Mocha라고 이름을 새긴 목걸이도 만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모카를 데려오는 날, 우리가 쉘터에 들어섰을 때 모카는 견사에 없었다. 자원봉사자가 데리고 산책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우리는 모카가 나타날 때까지 로비에서 기다렸다. 이윽고 한 자원봉사자가 모카를 데리고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아들녀석이 모카에게 다가서려고 하니 자원봉사자가 아이를 막아섰다. “이 강아지는 어린이들에게 친절하지 않아요, 으르렁거려요. 그래서 어린이가 있는 집에는 입양 보내지 않기로 했어요.”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이미 이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얘는 우리 아이를 알아요.” 자원봉사자가 뭔가를 더 말하려고 입을 떼려는 순간, 모카가 아이를 발견하고는 마구 점프해서 얼굴에 키스를 날리기 시작했다. 일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자원봉사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강아지는, 어린이들만 보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려서 아이있는 집에 보내면 안 되는 강아지로 이미 낙인이 찍혀있었어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래요!!” 모카는 이미 우리의 가족이 되었노라고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한 시간이 넘는 길을 달려서 집으로 들어온 그날 저녁, 모카는 매우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소파에 누워 쉬었다. 이것이 모카가 우리 집에 들어오게 된 이야기이다. 지금도 모카는 우리 집의 당당한 식구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낯선 이의 발걸음이 들리면 경계하며 짖고, 우리가족의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꼬리를 흔든다.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듣기 위해 신경을 집중하고,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기 위해 매우 고심하고 있다. 매우 애쓰고있음을 표정으로 알아볼 수 있다. 너무 사랑스럽다. 그래서 우리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모카를 하울링 하게 만드는 방법도 우리가 터득했다. 모카가 들어오고 나서 전에 없던 제한도 생겨났지만 (이를테면 긴 여행은 꿈도 못 꾼다던지) 모카가 없는 우리 가족은 이제는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나, 원래 강아지 무서워하던 사람인데... 녹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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